‘외풍’ 막고 ‘내분’ 재워야 ‘주연’된다
▲ 이명박 후보(오른쪽)가 지난 7일 박근혜 전 대표와 경선 후 첫 공개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은 회동결과를 언급하지 않아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최근 청와대가 자신의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해오고 지지율도 하락 조짐이 보이면서 ‘너무 느슨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에 직면해있다. 이에 이 후보 측에서는 선대위 구성을 앞당기고 추석 민심 잡기를 위한 전국 투어를 기획하는 등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명박 후보의 대권 드라마 주연되기 ‘대본’을 추적해본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지도 3주가 흘렀다. 이번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은 선거인단 투표율이 70%에 이르는 등 당원과 국민들이 큰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정권 교체 열망이 표출된 것이라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후보 입장에서도 대선 후보로 당선돼 당권을 장악하는 등 차기 유력한 대선 주자로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국민들의 ‘큰’ 기대에 비해 정작 이 후보가 경선 승리 뒤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별로 없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지난달 20일 후보로 선출된 후 3주 가까이 행사와 ‘말’은 있었지만 구체적 국정운영이나 국민화합 방안, 당내 개혁 등의 방법 등에 있어서 구체성이 결여돼 공허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벤트와 이미지에 의존한 채 ‘연출에 의한 사진찍기’에 그치고 있다”고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 관계자도 “경선에 승리하고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미래 비전을 담은 구체적인 구상 몇 개를 내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각종 현안에서 원론적인 언급만 할 뿐 국민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비난’은 훨씬 노골적이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래 준비된 지도자가 아니라 대권 욕심만 있었기 때문에 후보에 당선되고도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본선이 걱정될 뿐이다”라고 혹평을 했다.
그런데 예전 캠프 관계자들도 이 후보가 경선 승리 뒤 이렇다할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대체로 수긍하는 표정이다. 이 후보 측 인사들은 “당초 기대와 달리 경선에서 1.5%포인트 차이로 신승하다 보니 ‘경선 이후’의 압승 전략 밑그림이 흔들렸다. 그리고 캠프 조기 해체로 보좌기능이 없다시피하면서 사실상 이 후보 혼자 움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후보 측은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도약대로 뛰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콘텐츠도 없고 준비도 안 된 것 같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먼저 이 후보의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경선 승리 뒤 그가 잠시 주춤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를 잘 아는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겪은 네거티브 공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더라. 그래서 경선에서 승리한 뒤 정치에 의욕을 잃은 것처럼 후유증을 겪었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에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하자’는 심정도 작용한 것 같다. 또한 경선이 끝나자마자 구체적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10명이 넘는 범여권 후보는 물론 박근혜 전 대표 측으로부터도 공격이 예상되다보니 조심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대선준비팀도 꾸려지고 선대위 구성도 마치게 되면 본격적인 레이스에 들어갈 것이다. 이제부터 이 후보 특유의 추진력과 ‘창조적인’ 정치력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 후보가 측근들에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기쁨도 감춰야 하고, 하고 싶은 말도 자제해야 한다”는 ‘신중 모드’를 강조, 본인도 조심스런 행보를 보인 측면도 있다. 또한 “당과 충분한 협의 후 정책과 공약을 내놓으려는 특유의 완벽주의가 겹쳐지면서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안한 것처럼 됐다”는 해명도 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의 당선 뒤 행보가 정밀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그와 경선에서 맞붙은 홍준표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난 뒤에는 본인은 국가의 미래 제시와 비전 제시와 희망 제시만 하면서 국가 지도자로 나갈 준비를 했어야 옳았고, 박근혜 전 대표와는 앙금이 있다든지 경선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경선이 계속되는 것처럼 갈등의 양상으로 비쳐지는 그런 행보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주춤 행보’는 지지율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중앙일보의 <조인스 풍향계>는 한나라당 경선 승리 직후 급등했던 이명박 대선 후보 지지율이 2주 연속 하락하면서 40%대로 다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 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율은 48.8%로 경선 승리 직후인 지난달 22일의 55.1%와 지난달 29일의 53.3%에 이어 2주 연속 하락한 수치라고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도 경선 뒤 2주간의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가 49.4%를 기록해 전주대비 1.4%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경선 이후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불협화음이 계속되며 2주 연속 하락세를 보인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경선 후 박근혜 계와의 갈등에 따른 박근혜 지지층의 이탈 및 버시바우 미국 대사와의 만남에서 ‘친북좌파’ 발언을 한 것에 대한 40대의 반발 등이 악재로 작용한 것 같다”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고소는 이 후보에게 ‘양날의 칼’과 같다. 먼저 청와대의 전면전은 그를 더욱 강력한 대권 주자로 담금질 시켜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이 후보를 압박하면 할수록 ‘야당후보 탄압’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그리고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의 집권을 저지하려는 노 대통령의 마지막 저항이라는 점이 부각되면 이 후보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 거기에 ‘야당후보 탄압’이라는 여론이 형성될 경우 부동층이 이 후보 지지로 쏠리면서 지지율이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고소가 이 후보에게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 검찰 수사가 시작된다면 이 후보로서는 뜻밖의 곤경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고급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청와대가 이 후보에 대한 새로운 의혹을 흘리며 계속 그를 압박한다면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친이 의원들도 “경선 뒤 또 다시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릴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이제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이 후보를 공격할 것을 예상해보니 답답해진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후보 보좌진들도 “이번 고소 사건이 청와대를 필두로 한 여권의 대대적인 네거티브 공세 신호탄이 된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도 계속 이 후보 측의 주름살이 늘어나게 만들고 있다. 사실 이 후보 측은 경선 전 압승이 예상되는 분위기에서는 “경선 뒤 대대적인 당 개혁을 명분으로 한나라당의 주류를 영남 위주에서 수도권 위주로 재편할 계획까지도 구상했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에 충만해있었다. 하지만 경선에서 예상 밖으로 힘겹게 이기자 박 전 대표와의 공존 없이는 대선 승리도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 후보는 지난 9월 7일 박근혜 전 대표와 경선 뒤 첫 공개 회동을 가지며 ‘화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정권교체를 위해 도와달라”는 당부의 말을, 박 전 대표는 “정권을 되찾아달라”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약 30분간 단독회동을 가졌다. 이때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회에 오랫동안 출입한 한 기자는 이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정치하면 ‘선수’ 아닌가. 몇 마디 정도 나누면 끝난다. 그런데 30분 동안 얘기를 나눈 것을 보면 선대위 구성 인선과 대선 뒤의 공천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의논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로서는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워 대선에서의 협조를 강하게 요청했을 것이고, 박 전 대표로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대선 승리 뒤에도 계속 인정해달라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양쪽의 일방적인 바람일 뿐이다. 두 사람이 회동 결과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두 사람은 어느 한쪽의 정치 생명이 완전히 끝나지 않는 한 계속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후보 측은 박 전 대표와의 화합을 강조하면서도 경선 뒤 계속 국민들의 관심이 그에게 쏠리는 것에 대해서는 마뜩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후보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로서는 박 전 대표가 계속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 달갑지 않다. 박 전 대표는 ‘아름다운 경선’을 한 것을 내세워 계속 대선 드라마에 등장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 후보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대선 때까지 조용하게 뒤에서 돕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카메라 뒤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이 후보 측이 생각하는 전략이라면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이 후보가 청와대와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대선 구도는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후보는 그런 외생적 변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것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내생적 힘에서 찾고 있다. 역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선 100일을 앞두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경제 이미지 부각에 나선다.
그는 최근 “여의도에 있어보니까 모든 일이 정치가 관심이고 화제가 전부 그것인데, 한 걸음만 밖으로 나가면 국민들은 전혀 딴판인 것 같다”며 민생과 경제에 올인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후보는 오는 9월 10일부터 추석연휴까지 2주 동안 전국의 산업현장과 서민 삶의 현장, 농어촌지역을 누비며 민생과 경제문제를 점검하고 1주일에 두 번씩 경선과정에서 제시한 정책들을 보다 구체화한 정책메시지를 발표하기로 했다. “현장에 가장 강하다”는 장점을 확실히 부각시키겠다는 게 보좌진들의 설명이다.
경선 승리 뒤 이 후보는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 대선 드라마의 주연으로 나서기 위해 본격적인 워밍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가 자신을 고소하며 대선에 끼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박근혜 전 대표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등 그에게 쏟아질 스포트라이트가 여전히 분산되고 있다. 앞으로 두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가 대선 드라마의 주연이 될지, 조연으로 그쳐 낙마할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