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건 피의자 모두 재심서 ‘무죄’…사건 조작 당사자들 사과 한마디 없어
지난 17일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노경필)는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한 최씨가 청구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준영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와 최 씨를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열다섯 살. 지난 2000년 8월 10일, 한 택시기사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된 최 아무개 씨의 당시 나이였다. 최 씨는 ‘거짓말’을 했다. 혐의를 부인하다 항소심 재판에서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고, 용서해 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재판부는 그가 반성하고 있다며 1심 판결에서 5년을 감형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최 씨는 이제 서른한 살이다. 다 큰 어른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법정에서 고개를 숙였다. 재심 재판부가 선고를 내리기 전까지 무릎에 모은 손만 바라봤고, 옆자리에 앉은 변호인이 말을 걸어도 대답 없이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 결과보다 중요한 것
지난 11월 17일, 광주고등법원 형사1부는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직후 최 씨에게 내려진 3번의 판결을 모두 뒤집고 ‘살인범’이라는 족쇄를 풀었다.
하지만 선고가 끝난 뒤 법정 밖 분위기는 차가웠다. 재판부는 최 씨에게 “이번 판결이 새 삶을 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취지로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사건 관계자들과 방청객들 사이에선 “그동안 고통을 겪어온 피고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미성년자였던 최 씨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0년을 지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입증하기 위해 6년을 더 보냈다. 그가 다시 법정에 서서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데까지 무려 16년이 걸린 것. 여기에 앞서 열린 재심 청구 재판에선 강압수사로 허위 자백을 이끌어 낸 경찰, 혐의를 인정하라고 종용한 변호인, 범행을 4차례나 자백하고 뉘우친 진범을 검거하고도 무혐의로 풀어 준 검찰, 합리적 의심과 실체 규명 의지 없이 재판을 진행한 재판부 등이 벌인 일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재심 재판부는 법정에서 최 씨를 일으켜 세워 무죄를 선고하면서 별다른 선고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단지 “검찰이 확보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충분하지 않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재판부는 대신 “10여 년 전 이뤄진 재판에서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했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재심 청구인이 한 자백의 신빙성에 대해 의심하고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충분한 숙고가 필요했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재심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당시 수사 경찰관이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진 점에 대해서도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최 씨뿐만 아니라 살해당한 피해자의 유가족에 대한 언급 역시 없었다.
이는 지난 10월 28일 전주지법에서 열린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재심 무죄를 선고한 전주지법 제1형사부가 피고인들을 위로하고 ‘선배 재판부’의 과오를 반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재판부는 “17년간 크나큰 고통을 겪은 피고인들과 그 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설령 자백했더라도 법원으로서는 피고인들이 정신지체 등 자기 방어력이 취약한 약자들이라는 점을 살펴 자백 경위, 자백 내용의 객관적 합리성 등 자백진술의 가치를 판단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원은 앞으로 정신지체인 등 사회적 약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듭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삼례 3인조·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선고 직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례 3인조 사건과 함께 최 씨의 변론을 준비해온 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약촌 오거리 판결을 두고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무조건 고마워 할 일이 아니다. 비겁하고 상식 밖의 재판부”라며 “15세 어린 소년의 감옥살이와 그동안 겪어온 고통에 대한 배려 한마디 없이 어떻게 과거 재판부에 대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며 면죄부를 스스로 줄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이번 재심 재판의 본질은 경찰, 검찰, 법원이 ‘가짜 살인범’을 만든 데 있다”며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정의로워야 무죄 판결도 정의로워 진다”며 재판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우선이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씨 변론을 도운 장성근 변호사도 “이번 판결에 최 씨와 가족들의 고통이 충분히 전달됐을 것으로 기대했다. 재판부 판결에 속이 많이 상한다. 개운치가 않다”고 말했다.
#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 그들
삼례 3인조와 최 씨가 범인으로 몰렸던 두 사건은 공통점이 많다. 지적장애인과 미성년자가 용의자였으며 경찰의 폭행과 억압, 거짓 진술을 강요가 있었다. 검찰은 진범을 잡고도 무혐의로 풀어주거나 경찰의 강압수사를 묵인했다. 법원 역시 자백내용을 정확히 검증하지 않고 검찰의 의견에 따라 유죄 판결을 내렸다.
공통점은 또 있다. 삼례 3인조와 최 씨를 ‘살인범’으로 만든 사건 당사자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사과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누명을 쓴 이들은 재심 청구 과정서부터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사과 한마디,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듣고 싶다”고 밝혀왔다. 앞서의 박준영 변호사는 “후배들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침묵할 게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법치가 바로 선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법 정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삼례 3인조 사건의 경우, 무죄 선고는 내려진 이후 사건을 담당했던 전북경찰청과 전주지방검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유감’ 입장을 밝혔고, 약촌 오거리 사건을 담당한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은 선고 당일인 지난 18일 진범을 긴급체포하면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선 “고통스러운 시간과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간은 미루거나 피한다고 오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다가와야 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삼례 3인조와 최 씨를 ‘살인범’으로 만든 당사자들의 사과는 여전히 없다는 지적이다.
삼례 3인조와 약촌 오거리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경찰은 대부분 현직에 남아있다. 그동안 이들은 언론 인터뷰와 재판 과정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약촌 오거리 사건 재심 판결 이후 재차 연락을 시도했으나 외근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삼례 3인조 사건을 담당했던 최 아무개 검사는 현재 대형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최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역시 닿지 않았다. 약촌 오거리 사건 담당 검사와 진범을 풀어줬던 검사는 현재 부산지검에 재직 중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한 명은 고위 간부로 근무하고 있다. 앞서의 두 사건의 판결을 내렸거나, 재심을 기각한 판사들은 대부분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삼례 3인조와 사건의 ‘진범’ 관계를 보면 사과하지 않는 당사자들의 모습이 크게 대비된다. 이 사건의 진범 이 아무개 씨(48)는 지난 1월 말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하고 피해자의 묘소를 찾아가 참회했다. 이 씨는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죄를 인정하고 자백했지만, 검찰은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 당시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런 마음의 짐은 없었을 것이며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마음속에 얹고 살다 보니 죄책감으로 스스로 위축됐다”라고 고백했다. 이 씨는 ‘삼례 3인조’에게도 무릎을 꿇고 사죄했고, 3인조는 이 씨를 용서했다. 이 씨는 재심 과정에서 직접 증인석에 서는 등 삼례 3인조를 도왔다. 현재 이들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지난 12일엔 서울에 올라와 광화문 집회에 함께 참석하는 등 가깝게 지내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사법 개혁 앞장서는 박범계 의원도 삼례 사건 앞에선 해명에만 급급 사건 관계자들 가운데엔 현직 국회의원도 있다. 삼례 3인조의 배석판사를 맡은 판사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삼례 3인조의 무죄가 선고된 이후 사건 자료를 가지고 있던 박준영 변호사 등 사건 관계자들은 박 의원의 이름을 공개하면서 SNS에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관련 경찰과 검사, 판사 등 사과해야 할 사람은 많지만, 박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를 맡아 줄곧 ‘사법 개혁’을 주장해,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범계 의원은 지난 11월 6일 사과와 해명을 했지만, 논란만 남겼다. 박 의원은 공식 사이트나 박 의원 본인의 SNS 대신,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는 ‘다음 스토리펀딩’의 한 게시글에 댓글 형식으로 해명 글을 올린데다, 박 의원이 내용도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박범계 의원이 다음 스토리펀딩에 올린 삼례 3인조 사건에 대한 해명 글. 앞서의 글의 작성자 아이디는 ‘번개불’이었고 “박범계 의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됐다. 도입부엔 “오랜 옥살이 끝에 진실이 규명돼 누명을 벗게 된 점에 깊은 위로와 다행의 마음을 전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제대로 된 재판을 하지 못한 책임에 대한 내용 대신 자신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해명으로 채웠다. 특히 논란을 불러온 부분은 “다만 저는 이 사건 재판 당시 전주지법 형사단독 겸 영장전담이 주요 보직이었고 이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재판장이나 주심판사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재판기록을 전혀 보지도 못했고 재판에 대한 기억도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해명한 부분이다. 앞서 이 글을 올리기 전까지 박 의원은 자신은 배석판사로서 재판과 크게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해명해왔는데, 이번 글에서도 같은 취지로 설명한 것이다. 일부 법조계 관계자들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합의재판부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2명으로 이뤄지는데, 배석판사는 부장판사와 함께 사건기록을 보고 판결문 작성하는데 의견을 내기도 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판결문에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의 이름과 직인이 명시 된다. 배석판사 역시 판결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게시글에서 자신의 이름이 판결문에 올랐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재판에 관여할 수 없었다” “재판기록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시 재판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 박범게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게시글은 박 의원께서 직접 작성하신 게 맞다. 스토리펀딩에 삼례3인조 이야기가 올라와 있고, 펀딩 후원자들이 많이 방문하시는 것으로 판단해 공식 사이트 대신 그곳에 댓글 형식으로 글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향후 삼례 3인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직접 방문 계획에 대해선 “현재로선 추가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문] |
황상만 전 형사반장 “최 군 무죄 밝혀지고 저도 명예 회복해 기쁜 날” 약촌 오거리 사건으로 인생이 달라진 사람은 또 있다.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다. 황 전 반장은 이 사건의 진범을 체포했다는 이유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그는 “일반적인 인사이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웃었지만, 사실상 좌천과 다름없었다. 모든 수사업무에서 배제돼 오다 한 지구대로 발령이 났고 그곳에서 정년퇴직했다.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지난 2003년 약촌 오거리 사건의 진범을 체포했다가 지구대로 좌천성 인사발령을 받고 그곳에서 정년퇴임 했다. 황 전 반장은 당시 이 사건 수사를 “모두가 말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약촌 오거리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내용의 첩보를 입수했다”며 “이미 사건이 해결돼 범인이 교도소에 있어 의아했지만 조사해보니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끝냈고, 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는데 모든 걸 뒤집는 일이었다. 잘못한 사건 관계자들이 아니라 내가 다칠 것이라고 주변에서 뜯어 말렸다”고 덧붙였다. 황 전 반장은 직원들에게 최 씨 면회를 다녀와 “정말 억울한지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진범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먼저 진범을 숨겨줬던 친구를 통해 범행 도구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확보했다. 숨진 피해자의 부검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를 토대로 진범을 체포했다. 황 전 반장은 군산지청 검사에게 진범을 구속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검사는 묵묵부답이었다. 황 전 반장이 계속 영장 청구를 당부하고 추가 수사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도 요청했지만 검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진범은 황 전 반장에게 총 4차례 범행을 자백했고, 진범의 친구는 5차례 자백했다. 하지만 검사는 3년 간 사건을 묵혀두다 지난 2006년 두 명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진범과 친구는 말을 바꿔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이후 황 전 반장의 수사팀이 해체됐다. 수사비도 지급되지 않아 자비를 털어 수사를 이어갔다. 그러다 경찰서장이 돌연 교체 됐다. 동시에 황 전 반장도 지구대로 인사발령이 났다. 수차례 수사복귀를 요청했지만 정년퇴직할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 전 반장은 이번 약촌 오거리 재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고 박준영 변호사와 수사 자료를 함께 검토하는 등 도움을 줬다. 그는 지난 17일 “최 군의 무죄가 밝혀지고 저도 명예를 회복한 기쁜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말려도 진실을 찾기 위해 시작한 수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가짜 살인범을 만들고 진범을 풀어준 공권력은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특히 진범 재수사 과정에서는 당시 검찰이 살인사건을 3년 간 묵혀둔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