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랩튼 기타 구해오라우!’ 공작원들 공수작전
지난해 5월 20일 에릭 크랩튼 공연 관람을 위해 영국을 찾은 김정철. 옆에는 그를 보좌하는 태영호 전 공사도 눈에 띈다. 사진출처=JNN 캡처
처음부터 김정철(36)이 김씨 일가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지켜본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철은 최소한 성품 면에선 모난 곳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학업 실력 역시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또한 주변에서 그는 의협심과 동정심이 많고 주변 친구들과도 진심으로 지냈던 ‘꽤 괜찮은 아이’로 회자된다. 이 때문에 김정철 주변에는 봉화조(중국의 태자당과 비교되는 북한 최고위층 2세들의 사조직) 핵심 멤버들과 스위스에서 유학 시기 친했던 친구들이 지금도 곁을 지키고 있다.
처음엔 아버지 김정일에게도 작게나마 호감을 샀다. 김정철 역시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최소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는 유력한 후계자 후보였다. 김정철은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시절 스위스에서 약 5년간 유학생활을 거쳤다. 후계자 후보 시절 김정철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특별속성교육을 받았으며 중앙당 조직지도부에서 경력을 쌓기도 했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애초 김정일도 후보자로서 김정철에게 세습을 타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에 그다지 욕심이 없었던 김정철은 단칼에 이를 거부했다. 김정철은 부친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북한)체제를 내가 맡을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을 대놓고 전했다고 한다. 이 말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김정일은 ‘마치 체제를 내가 어렵게 한 것’으로 해석해 노발대발했다는 후문이다.
일부 언론이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철은 마치 여성 같은 아련한 마음의 소유자로 회자된다. 지도자로서 김정철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점이지만 이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물론 김정은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더로서의 배짱이나 담력이 부족할지는 몰라도 그를 지켜본 주변에 의하면 김정은보다 더 주도면밀하고 차분하며 필요한 경우 진취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김정은보다 능력이 덜했다기보다는 김정일이 선호하는 리더로서의 타입과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은 해석이라고 보겠다.
더군다나 김정철은 앞서의 일화를 비춰볼 때, 김정일이 넘기겠다는 북한 1인 독재체제의 한계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이는 김정철의 선견지명에 대해 나름대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김정철 본인의 의도도 있겠지만, 김정일은 차남 김정철을 완전히 후계구도 경쟁에서 배제했다. 몇 차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여동생 김여정과 달리 지금까지 공식석상에선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 제3대왕 태종의 눈 밖에 나서 폐(廢)세자의 행보를 걸었던 양녕대군의 궤적과 참 묘하게 비슷하다. 양녕이 예술에 밝아 폐세자 이후 서예와 그림에 심취했던 여생을 보낸 것과 마찬가지로 김정철 역시 음악에 깊게 심취했다.
그런데 필자가 이와 관련해 입수한 정보와 자료를 놓고 볼 때 그 정도가 가히 심각한 수준이다. 어쩌면 권력구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김정철은 더더욱 깊숙하게 음악과 공연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은 듯했다. 김정철은 호위총국 내에 ‘새별’이란 밴드를 조직하는 한편 제수인 리설주가 몸담았던 모란봉악단에 직접 관여하며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러한 공연에 앞서 자기 사비를 들여 값비싼 악기들과 무대의상을 마련하는 등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철은 에릭 클랩튼 공연마다 마련된 각종 기념소품들을 광적으로 수집했다. 사진은 필자가 입수한 자료. 김정철이 2010년 5월 31일 해외 공작원에게 구입을 지시한 클랩튼 한정판 기타의 구매계획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김정철의 광(狂)끼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은 그의 우상으로 알려진 세계적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을 향한 팬심이다. 김정철이 클랩튼 공연장에서 포착된 것은 총 세 차례다. 2006년 6월 독일 공연장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정철은 2011년 2월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클랩튼 실황공연에서도 포착됐다. 가장 최근에 포착된 것은 2015년 5월 클랩튼의 고향 영국에서의 공연이었다. 심지어 2011년 싱가포르 공연일은 아버지 생일을 불과 하루 앞둔 시기였다. 클랩튼에 대한 그의 충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김정철의 모습이 포착된 경우일 뿐이다. 김정철의 지근거리에서 일을 보고 있는 내부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정철은 사실상 클랩튼의 연간 순회공연 스케줄을 완전히 꿰고 있으며 그의 뒤를 쫓고 있다는 후문이다.
부친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의 모친 고영희(이명 고용희, 본명 고영자)가 모두 예능에 조예가 있어서인지 김정철은 기타와 트럼펫 같은 악기를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연주한다고 한다. 이는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목격된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클랩튼에 푹 빠진 김정철은 현재까지도 클랩튼의 순회 공연장을 반복적으로 찾고 있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클랩튼은 공연을 할 때마다 주제를 달리 잡고 기념소품을 마련한다. 이러한 공연마다 이를 기념하는 한정판 악기, 티셔츠와 실황DVD 및 CD, 각종 로고와 클랩튼 사인이 새겨진 액세서리와 한정판 기념품들이 공연장 주변과 온라인을 통해 기획 판매된다.
김정철은 클랩튼의 공연 관람은 물론 이렇게 마련된 클랩튼 기념품들을 세세하게 거의 모두 챙긴다. 김정철을 담당하는 해외 주둔 공작원들은 김정철의 명령을 받아 이러한 기념품들을 확보하고 구입하는 것 자체가 주요 업무로 자리했다.
김정철은 에릭 크랩튼의 연간 공연 스케줄을 모두 꿰고 있다. 사진은 필자가 입수한 김정철의 노르웨이 공연 관람 티켓.
필자는 이러한 업무와 관련된 증거 자료를 입수하기도 했다. 2010년 5월 31일 김정철이 구입 명령을 내린 한 기타 모델과 관련해 담당 공작원은 구매확인서를 김정철에 송고했다. 김정철이 요구한 기타는 펜더사가 제작한 클랩튼 한정판 모델이었다. 앞서의 공작원은 수소문 끝에 미국 뉴욕의 한 기타 전문점에서 겨우 제품을 수배할 수 있었다.
2449달러(한화 약 286만 원)에 달하는 해당 모델의 기타가 북한에 건너오기까지는 운송 및 세관비로만 750유로(한화 약 94만 원)를 지불해야만 했다는 후문이다. 앞서의 기념품들도 구입 후 북한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상당한 운송 및 세관비가 들었다. 어떤 경우는 물건 값보다 세관비가 더 큰 경우도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필자는 또한 김정철이 예매한 과거 클랩튼 공연 좌석표 사본을 입수할 수 있었다. 해당 공연은 2011년 6월 6일 노르웨이 헬싱키 하르트발 경기장(Hartwall Areena)에서 진행됐다. 예매좌석은 총 12석이었다. 당시 이 공연에는 봉화조 소속의 친구 네 명이 동석했으며 자신이 조직한 밴드 멤버들과 경호원을 포함해 모두 12명이 공연을 관람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구 정반대편인 노르웨이까지 갔던 김정철이다. 클랩튼에 쏟는 김정철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