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강 변호사가 왜 갑작스럽게 물러났을까. 자진 사퇴일까 아니면 경질일까.
비밀은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게 마련인 것처럼 강 변호사의 경질 배경도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강 변호사 최측근들은 경질 배경을 최근 정부·여당이 벌이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각종 개혁입법 추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기국회를 앞둔 지난달 5일 “국가보안법은 위헌이다 아니다 해석이 갈릴 수는 있지만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인 이 법을 폐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면서 폐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 변호사는 과거 민변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국보법의 문제점을 강한 톤으로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초 장관으로 취임한 뒤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도 “기존 국보법을 대체할 새로운 법 체계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이 진심으로 이번 정기국회때 국보법 폐지을 바랐다면 국보법 개폐 문제의 주무부처인 법무장관에 강 변호사를 계속 유임시키지 않았을까.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진정으로 국보법 폐지를 원했기 때문에 오히려 거꾸로 강 변호사를 법무장관에서 경질시켰다고 강 변호사 측근들은 설명하고 있다.
한 인사는 “강 변호사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국보법 폐지가 추진되면 그 자체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보법을 폐지해도 안보에 문제점은 없는지, 국보법을 폐지해도 형법으로 이를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모든 관심이 강 변호사의 ‘색깔론’ 등 부차적인 문제로 관심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지난해 9월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입국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송 교수가 설사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북한에서 고위인사들이 오가는 마당에 처벌할 수 있겠느냐”면서 소신을 밝혔었다. 이후 강 변호사의 송 교수 관련 발언은 정치권의 정쟁의 대상이 됐고, 강 변호사는 결국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송 교수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해야만 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한 듯 강 변호사가 장관직에서 경질되기 직전 여권 내부에서는 강 변호사 경질 의견이 갈수록 힘을 얻어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 변호사 후임 장관으로는 김승규 장관이 발탁됐다.
김 장관은 취임 때부터 여러차례 국보법 개폐 문제와 관련, “어느 나라나 안보형사법은 필요하다”는 말로 국보법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주무장관이 국보법의 존재 필요성을 지적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보법 개폐 문제의 주체는 현재 정부에서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법무부나 검찰을 상대로 한 국보법 폐지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노 대통령과 여당으로서는 진정으로 원했던 상황인 것이다.
한 측근은 “강 변호사가 물밑에서 준비했던 국보법 등 여러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고 성과를 거두는 것을 지켜보고픈 욕심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강 변호사 본인은 물론 우리 모두 가장 적절한 시점에서 장관직을 그만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강 변호사의 경질 배경을 국보법 개폐 문제로만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강 변호사의 측근 인사의 지적처럼 현재는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법무부발 불협화음은 없다는 점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