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사업부문 분할…그룹 지배구조 개편 로드맵에 발맞추기
구체적으로는 삼성물산을 일반 지주사와 금융사로, 삼성생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각각 분할한 뒤 삼성물산 금융사와 삼성생명 투자회사를 합쳐 금융지주회사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법의 핵심은 합병 투자회사가 보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험업법 적용을 받지 않아 최대 걸림돌인 삼성화재 지분 매입 제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내비치면서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삼성생명의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삼성서초타운. 박은숙 기자.
지난 11월 말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검토 계획이 발표되자 금융권의 시선은 일제히 삼성생명으로 쏠렸다.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은 삼성생명의 후속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행보는 이번 발표가 있기 전 이미 시작됐다. 삼성생명은 지난 11월 중순 이사회를 열어 삼성증권 자사주 835만 9040주(10.94%)를 2900억 원에 매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의 삼성증권 지분율은 19.16%에서 30.1%로 높아졌고, 이는 지분율 30% 이상(비상장사는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금융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켰다는 의미다.
삼성생명은 지난 3년 간 계열사 지분을 모아왔다. 그 결과 삼성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했고, 삼성카드와 삼성증권 지분도 30% 이상 확보했다. 이 모든 작업은 결국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목표일 수밖에 없는 만큼 삼성전자의 계획과 맞물려 과거보다 훨씬 속도를 낼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전망이다.
삼성생명의 이 결정은 증권가를 중심으로 조만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뒤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고, 삼성전자는 며칠 뒤 지주회사 전환 검토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소문을 사실로 확인시켜줬다.
삼성전자의 이 발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삼성생명의 후속 조치에 관심이 쏠리게 했다.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장기과제로 설정한 만큼 당장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도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대안이 무엇일지 다양한 추측을 낳았다.
금융권에서 내놓은 가장 일반적인 예상은 삼성생명이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아직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삼성생명도 조기에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금융지주사 전환을 공식 선언하기 전까지 이에 필요한 작업은 대부분 처리해 놓을 것이며, 비금융 계열사 지분 처리가 그 핵심 과제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 지분은 만만치 않다. 우선 삼성전자 지분을 7.55%나 갖고 있으며, 호텔신라(7.30%)·에스원(5.34%)·삼성중공업(3.38%) 등의 주식도 보유 중이다. 장부 가격으로만 따져도 무려 18조 원에 가까운 가치를 가졌으며, 이 가운데 삼성전자 지분평가액이 17조 5000억 원에 달한다.
막대한 물량인 이 지분들을 일부 혹은 전부 매각하면 삼성생명은 보험업법상 계열사 투자한도제한을 벗어날 수 있다. 삼성생명의 투자한도는 현재 3000억 원 미만인 상황인데,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두기 위해 필요한 추가 지분 18%가량을 매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따라서 다른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팔아 이 한도를 확보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가기 위해 필요한 삼성화재 지분은 시가로 따지며 2조 원에 달한다”며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면 보험사 계열사 투자한도 규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삼성화재 지분 매입에 필요한 자금도 마련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을 공식화하면서 삼성그룹이나 삼성화재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며 “여러 문제가 남았으나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배제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삼성생명이 실제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지주사 전환은 법률 검토와 서류 작업에만 몇 년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인 데다 각 해당 정부기관과 의견조율, 인허가 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작업이 회사 분할을 통해 진행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삼성생명을 투자 부문(가칭 삼성생명홀딩스)과 사업 부문(가칭 삼성생명)으로 분할하는 방안이다. 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자산운용·삼성카드 등 그룹 금융계열사는 ‘삼성생명홀딩스’ 계열사로 편입시키고,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생명 존속법인이 소유하는 식이다. 이후 삼성전자 지분을 줄이고 삼성생명홀딩스 자회사 지분을 매입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함께 삼성물산을 같은 방식으로 분할해 삼성생명과 합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삼성물산 역시 인적분할을 통해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나누고, 투자회사를 삼성생명홀딩스와 합병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합병투자회사는 보험사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업법의 투자한도에서 벗어나 삼성화재 지분 매입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보험업계는 삼성생명의 인적분할이 지배구조개편의 시작일 뿐 실제 지주사 전환에는 최소 3~4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보험사의 고위 관계자는 “삼성생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면 보험업법의 규제를 피해 삼성화재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시작되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