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기업 총수들 탈퇴 공언…해체까진 몰라도 위상 추락 불가피
사기업 회원사들은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는 분위기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지난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의원들의 거듭된 질의에 “앞으로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 저희는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과 함께 국회 증인석에 배석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역시 전경련 탈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의사는 있다”고 답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는 질문에 이 부회장, 손경식 CJ 회장과 함께 손을 들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구본무 LG 회장도 “(전경련이) 기업 간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했지만 곧 탈퇴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국내 4대 기업 모두 같은 날 탈퇴를 공언한 셈이 됐다.
만약 이들 4개 회원사가 ‘약속’을 이행한다면 전경련은 전례 없는 재정난을 겪게 된다. 2016년 8월 기준 633개의 회원사를 둔 전경련은 매년 400억~500억 원 규모의 회비 수입을 얻는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4개 그룹이 부담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은 2013년과 2014년 각각 80억 원, 12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장부상 부채가 3300억 원(부채비율 약 1400%)에 달하는 등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4대 그룹이 전경련에서 이탈한다면 단체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앞서 전경련은 이승철 상근부회장 주도로 청와대와 공모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때문에 전경련은 ‘재계의 대변자’가 아닌 ‘정권의 하수인’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야권은 ‘전경련 해체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고, 친재벌 성향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내에서도 ‘전경련 해체론’이 대두했다. 지난 10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전경련은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게 맞다”며 “정부가 전경련을 (국정 파트너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의 ‘유물’인 경제재건촉진회를 모태로 한 전경련은 ‘재계단체의 맏형’ 또는 ‘정경유착의 온상’이란 엇갈린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로 창립 55주년을 맞은 전경련은 지난 8월 ‘시론’에서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중심에 전경련이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어버이연합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실제 전경련 최대 회원사인 삼성은 조심스레 탈퇴를 고민하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수차례 탈퇴를 공언했기 때문에 그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만간 탈퇴 시점과 방법 등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경련 해체에 대해선 삼성이 가타부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전경련으로서는 회원사들이 납득할 만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재계 총수들이 손을 들고 있다. (손든 사람 순서대로 왼쪽부터)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16.12.06. 사진공동취재단
전경련은 지난 7일 이승철 부회장 주재로 ‘전경련 개혁안’과 관련한 긴급회의를 열고, 조직 개편 등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원사들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단계”라며 “전경련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듣고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경련은 자발적인 해체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그 대안으로는 지난 6일 청문회에서 구본무 회장이 제안한 미국 해리티지재단과 같은 정책연구기관(싱크탱크)으로 전환이 검토되고 있다. 사단법인 형태인 전경련은 민법에 따라 총사원(회원사)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해산할 수 있다. 공익에 반하는 사업을 벌였을 경우 정부가 강제해산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회원사들 역시 전경련 해체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청문회에 출석한 9명의 총수 가운데 허창수 전경련(GS) 회장, 정몽구 회장, 구본무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등은 전경련 해체에 각각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 입장에서) 전경련의 필요성과 순기능이 있다”며 전경련 해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재계 관계자도 많다.
회원 탈퇴 의사를 표명했던 현대차와 LG도 즉각적인 탈퇴에 대해선 확답을 하지 않는다. 전경련 개혁과 관련해 목소리를 냈던 LG 관계자는 “(총수가) 전경련 역할의 쇄신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평소 소견을 피력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지 않았던 SK와 CJ에서도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CJ 관계자는 “손경식 회장 개인 의견”이라고 말했으며 SK 관계자는 “(총수가) 환골탈태라는 표현을 썼듯이 지금의 전경련은 개혁할 부분이 있다“며 ”공중분해시키자는 것은 아니며 즉각적인 탈퇴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다만 전경련이 현재의 위상 그대로 존립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허창수 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로 종료되지만 차기 회장 후보군은 각 총수가 난색을 표하고 있는 까닭에 안갯속이다. 3연임한 허 회장은 진작에 더 이상 전경련 회장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더욱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과연 어느 대기업 총수가 전경련 회장을 맡겠다고 나설지 의문이다. 지난 11월 예정된 전경련 회장단 회의도 취소돼 회장 구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선 대한상공회의소와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상이한 조직과 자산을 가진 두 조직의 융합이 쉽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전경련 소유 자산의 조기 매각을 통해 구조조정 작업이 이뤄져야만 전경련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