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주주가 계열사 법인…2대 주주 지위만으로 그룹 지배 가능
지난 6일 이른바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재계 총수들 9명 중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최고령이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자연스럽게 떠오른 인물이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다. 현대차그룹은 삼성그룹에 이은 재계 2위의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타 대기업에 비해 승계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2월 오너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보호예수 기간이 종료되면 지배구조 개편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향후 전개될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를 짚어봤다.
한때 삼성이 순환출자의 대명사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인 순환출자 지배구조 형태를 띠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덩치가 큰 현대자동차의 최대주주는 현대모비스로 20.78%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는 기아자동차로 16.8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로 33.88%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오너로 불리는 정몽구 회장은 어떻게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1대 주주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계열사인 법인이므로 정 회장 단독 또는 가족이 2대 주주의 지위만으로도 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 5.17%, 현대모비스 6.9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가 아닌 개인으로서는 최대주주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 2.28%, 기아차 1.74%를 보유하고 있다.
① 시나리오1: 상속세를 납부하고 정몽구 회장 지분 물려받기
현대차 승계작업의 최초 시나리오는 현대글로비스의 가치를 키우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이 큰 현대글로비스의 가치를 키운 뒤 이를 정몽구 회장 지분을 상속하는 데 필요한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이다. 이는 아무런 지배구조의 변동 없이 정 회장 지분을 정 부회장이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별도의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② 시나리오2: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주식 맞바꾸기
둘째는 현대글로비스 주식과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주식과 맞바꾸는 것이다. 2015년 1월까지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31.88%, 정몽구 회장은 11.51%를 보유하고 있었다. 둘이 합쳐 43.39%였다. 애초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이 많은 기업에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주식가치를 키운 뒤 이를 팔아 현대모비스 주식을 매입하려고 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흐름 속에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특수관계인 지분 30%가 넘는 기업은 국내 계열사 간 거래금액이 매출액의 12%를 넘으면 과징금을 물어야 했다. 현재 현대글로비스의 계열사 비중은 18%로 추정(삼성증권 리포트)되는데, 현대차는 지분을 30%로 줄이는 것을 택했다. 이를 위해 정의선 부회장은 2015년 2월 현대글로비스 지분 13.39%를 매도했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주식 교환은 지금도 여전히 증권가에서 유효한 시나리오로 꼽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김서연 애널리스트가 11월 28일 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중간 점검-분할 시나리오 검토’에 따르면, 이 방법의 장점은 순환출자 해소라는 명확한 명분이 있고,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확대가 가능하다.
그러나 수천억 원대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삼성증권 임은영·박은경 애널리스트가 11월 30일 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3.0-다가온 선택의 시간’에 따르면, 이 방법의 경우 정의선 부회장은 3730억 원, 정몽구 회장은 2860억 원, 기아차 등 계열사가 6980억 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③ 시나리오3: 현대모비스만을 인적분할
현대모비스만을 인적분할 하는 것은 현대모비스를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리는 방안이다.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한 뒤 정 부회장은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주회사 지분을 매입해 소유권을 강화하게 된다.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현대글로비스 등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서 충당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김서연 애널리스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나리오가 완결된 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지주회사 지분 60% 이상 확보, 현대모비스 지주회사는 현대차 지분을 28.3%와 현대모비스 사업회사 지분을 26.7%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대모비스 지주회사의 보유 지분가치가 자산의 50%를 초과하므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중심의 지주체제로 전환된다. 오너일가 지배력 강화 논란이 제기될 수 있지만, 현대모비스의 자사주가 2.8%에 불과해 ‘자사주의 마법’으로 인한 비난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④ 시나리오4: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를 합병
또 다른 시나리오인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를 각각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각 사 지주회사 3개를 하나의 지주회사로 합치는 것이다.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사업회사는 분할된 지주회사 주식을 정의선 부회장에게 매각할 수 있게 되고, 이 대금으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는 3개 계열사가 각각 인적분할과 타사와의 합병에 대한 주주총회를 개최해야 한다. 1개 회사마다 2번씩, 총 6회의 주총을 거쳐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김서연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이 시나리오에 대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사 분할합병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이상적’이라는 말은 정의선 부회장에 가장 유리한 방식이라는 뜻인데, 반대급부로 사회적 저항이 가장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윤태호·김서연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은 오너와 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주주총회에서 실질적인 표 대결을 벌인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개편에는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반면 삼성증권 임은영·박은경 애널리스트는 3사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합병 시나리오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시나리오”라며 “계열사의 비용지출이 최소화되고, 최종 지주사에 대한 정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22.9%에 이른다. 소액주주 관점에서도 자산가치 부각으로 주가상승이 예상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우종국 비즈한국 기자 xyz@bizhankook.com
※ 위 기사는 축약으로 원문은 비즈한국 홈페이지 ‘촉박해진 정의선 승계 시나리오, 어떤 카드 쓸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