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변심 ‘박’의 뒷짐 그 뒤로 김경준 먹구름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왼쪽)의 무소속 출마설이 급부상해 이명박 후보 측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왼쪽은 지난 10월 25일 독도의 날 선포식에 참석한 이 전 총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먼저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 이회창 전 총재 주변에서는 계속 무소속 대선 출마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갈 길 바쁜 이 후보의 뒷덜미를 잡는 형국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전히 이 후보와는 ‘먼 곳’에 떨어진 채 이렇다 할 지원사격을 해주지 않고 있어 찜찜한 구석이 있다. ‘담장’ 넘어 사정도 좋지 않다. BBK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 씨의 귀국이 확실시되면서 대선의 뇌관으로 부상 중이다.
이 후보 측에서는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두고 보라”며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의욕을 무겁게 짓누르는 이 후보 주변의 내우외환을 집중 점검해보았다.
최근 이명박 후보 측의 분위기를 보면 자신감과 위기감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후보 측은 본격적인 국정감사가 실시됐지만 아직 이렇다 할 범여권의 ‘한방’이 나오지 않자 ‘역시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며 의자 뒤로 몸을 느긋이 기대고 있다. 여기에 여론조사도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다. 지난 10월 22일을 전후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최고 58.4%에서 최저 49.6%까지의 편차를 보이며 2위 정동영 후보와는 30~40%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후보의 ‘철옹성’ 지지율도 내부 갈등 때문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먼저 이 후보 측을 ‘속병’ 나게 하는 것은 최근 이회창 전 총재가 보여준 일련의 ‘정치적’ 행보 때문이다. 이 후보 측은 이 전 총재의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그의 출마설이 나도는 것 자체가 전통적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결집에 이완을 초래하고, 이 후보를 계속 ‘불안한 주자’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부정적 측면 때문에 이 전 총재의 행보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 눈치다.
예전에 이 전 총재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 전 총재 측에 확인해본 결과 그가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도울 사람을 세팅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지금은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높지만 이명박 후보의 ‘부침’에 따라 얼마든지 여론은 바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가 일단 무소속으로 후보 등록을 한 뒤 이 후보의 지지율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나온다. ‘이 후보의 낙마’에 대비해야한다는 명분에 기초한 이 가설은 대선에 임박해서도 이 후보가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할 경우, 이 전 총재가 미련 없이 사퇴하고 이 후보를 적극 지원해 극적 효과를 더하게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전 총재의 출마설에 대한 이 후보 측의 분위기는 ‘별로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라는 분위기다. 사실 이런 소문이 퍼지자마자 캠프 소속 의원들이 기자들에게 확인 전화를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명분이 없다’라는 내부 결론이 내려진 뒤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이 후보 측은 당 원로들이 개인자격으로 이 전 총재를 예방하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자연스러운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전 총재의 애매모호한 최근 행보에 대한 불만 섞인 표정도 엿보인다. “이 전 총재의 노욕이 당을 망치고 있다”는 날카로운 비판도 나온다. 일부 관계자들은 “일단 언론에서도 부정적인 보도를 많이 내놓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어정쩡한 ‘스탠스’도 이 후보에게 찜찜한 구석으로 다가온다. 당 일각에서는 이 후보 측이 어떻게 해서든 박 전 대표의 ‘큰’ 도움 없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 내년 총선에서 그 여세를 몰아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움직임을 간파한 박 전 대표 측 일부 인사들도 굳이 도움을 줄 필요 없이 “우리끼리 뭉쳐야 산다”며 대선 뒤 총선을 준비하자는 쪽으로 전략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이 대선 뒤 총선을 겨냥한 ‘박근혜 신당 창당론’이다. 여기에는 이 후보가 박 전 대표의 별다른 도움 없이 당선되고, 이후 조기 전당대회를 추진하게 되면서 대구 경북이 지역구인 박 전 대표와 강재섭 대표 측과 대립해 영남 보수 성향 의원들을 대거 물갈이 할 것이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 후보 측에서 떨어져 나온 세력이 결국 이회창 전 총재 세력 등과 합해서 ‘박근혜 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게 현재 나오는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한나라당이 그동안 보여준 특유의 응집력을 볼 때 현실성이 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불가능한 상상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후보의 지지율이 대선 전 급격하게 떨어져 그의 힘이 빠지게 된다면 그 공백을 박근혜-이회창 연합세력이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독자 창당론에 대해 “신당을 만드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지지율 때문에 자신감을 보이던 이 후보 측은 일단 집안단속부터 확실히 정리해둘 필요성이 있다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독주체제에서 협력체제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 이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지난 10월 26일 당초 일정이 맞지 않아 임태희 비서실장을 대신 보내기로 했으나 직접 참석해 분향하고 헌화했다. 이 후보가 후보 당선 후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후보는 애초 충청 방문 일정 때문에 국립현충원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잠깐이라도 추도를 하고 가는 게 좋겠다’는 측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교통편을 KTX에서 승합차 편으로 바꾸는 등 일정을 조정해 짬을 냈다는 후문이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범여권이 정비되고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면 이 후보가 현재처럼 간다는 보장이 없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박 전 대표가 이 후보의 힘이 떨어질 때쯤 나타나 손을 내밀게 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회창 전 총재가 이 후보에게 말 못할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양측의 관계 복원이 이루어지면 이 후보를 회의적으로 여기는 일부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감 기간 중 터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의 향응 사건 연루도 이 후보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 사건을 처음 보고받고 일부 연루자에 대해 매우 화를 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이 후보의 반응에 대해 “강재섭 대표와 마찬가지로 연루 의혹을 엄중 조사해 일벌백계하라는 말씀이었지만 그 강도는 훨씬 높았다”고 전했다.
내부문제뿐만 아니라 ‘외풍’에도 철옹성 지지율이 흔들릴 조짐도 있다. 얼마 전부터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를 ‘백조’에 비유하는 농담이 오가기도 한다. ‘물 위에선 우아하게 떠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물 아래를 들여다보면 헤엄치기 위해 엄청 열심히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이 후보가 탄탄한 지지율 덕분에 무리수를 두지 않고 1위 주자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 범여권의 무수한 잔매에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그 후유증 때문에 후보가 ‘녹다운’되는 사태가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 특히 김경준 사건을 둘러싼 공격이 아픈 데를 더 아프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후보 측에서는 김경준 씨 귀국설과 관련해 겉으로는 차분한 모습이다. 한 의원은 “언제 들어오든 상관없다. 금융 사기꾼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이는 신당은 김 씨의 귀국이 대선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 후보 측이 물밑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겉으로는 “언제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도 물밑으로 김 씨의 송환 연기 신청을 내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후보 측은 김경준 씨 사건이 대권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보고 있을 정도로 이 문제를 민감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최근 의원들에게 ‘BBK사건에 대해서 공부하라’며 관련 자료를 배포하는 등 집안단속부터 확실하게 하고 있다. 특히 이 후보 측은 검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 씨는 귀국하면 공항에서 바로 검찰로 넘겨지고 구속되게 된다. 모든 상황을 검찰이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 때 도곡동 땅에 대한 검찰 발표 한 마디에 이 후보의 지지율이 추락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당 일각에서는 “정권 말기에다 대선이라는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검찰이 김경준 씨 사건을 대선 이후로 미루는 등의 ‘정치적’ 결단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현재 이 후보 측은 물밑에서 당과 캠프의 법률지원팀 등을 중심으로 검찰 출신 의원 등을 총동원해 검찰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향후 대응 전략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