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반대 여론 67%…시·도교육감 “즉각 철폐” 주장…교육부 “계획대로 추진”
교육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무관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박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에서 물러나면서 정상적인 진행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배포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연합뉴스
지난 13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학교 현장 배포를 기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총리는 이날 국정 역사교과서 시행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역사교과서는 올바른 역사교육이 목적이므로 정치적 상황과 전혀 무관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행 유예, 국·검정 혼용 등 다른 대안에 대해선 “검토한 바 없다”며 교육부의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이 부총리는 “12월말까지 시간이 있고 확정한 방안이 없다”고 밝혀 내년 3월 시행 이외의 대안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이처럼 교육부는 박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무관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박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에서 물러나면서 정상적인 진행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이후 국정화에 대한 여론지지는 급격히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지난 2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물은 결과 17%가 ‘찬성’한 반면 67%는 ‘반대’했고 15%는 입장을 유보했다. 이는 교육부의 국정화 방침 발표가 있던 지난해 10월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찬·반이 42%로 동일했던 것과 극명히 대비되는 결과로 1년 사이 반대 의견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전국 시·도교육청은 일선학교에 국정교과서 배포를 거부하며 교육부와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13일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이 전국 시도 교육청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경북교육청 한 곳이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에 찬성했고 대구, 대전, 울산 교육청은 판단을 유보했다. 나머지 76%에 달하는 13개 교육청은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박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즉각 폐기’를 외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3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조 교육감은 “박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된 국민들의 분노 요인은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정유라의 교육농단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국정교과서에 대한 분노도 클 것”이라며 “그 분노의 집합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된 것이고 국정교과서 또한 탄핵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동력을 상실한 것”이라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가 탄핵에 이르게 된 몇 가지 중요한 정책들에 대해선 강행하기보다는 오히려 국정전환에 대한 성찰적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9일 성명서를 통해 “박근혜 교과서로 불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계획 자체를 즉시 폐기해야 한다”며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 철회를 강력히 주장했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도 박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자신의 SNS에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박정희 우상화로 얼룩진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로 촛불의 힘을 재결집시켜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탄핵된 대통령이 추진한 가짜 역사를 가르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도교육청뿐 아니라 교육계와 시민단체들도 국정교과서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보수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지난달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편향된 교과서”라 비판했다. 교총 관계자는 “18만 전 회원을 대상으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평가와 국정화에 대한 의견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교사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이를 정부에 요구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485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지난 9일 탄핵안 가결 후 “국정교과서 정책을 즉각 폐기하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정교과서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박근혜 정부를 향한 여론 악화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무조건적 반대를 외치는 상황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성향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국정이냐 검정이냐 방법론을 떠나 국정교과서 내용에 대해선 기존 좌편향 교과서보다 낫고 개선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다”며 “객관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박정희 교과서’나 ‘최순실 교과서’로 몰고 가며 교육 문제까지 정쟁화해 근거 없이 선동·비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국 1600여개 사립 중·고교 교장들의 모임인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는 지난 7일 국정 역사교과서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국정 역사교과서가 과거의 검정교과서에서 나타났던 좌편향적 시각의 기술들을 걷어내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는 한편 “국정교과서는 ‘펼쳐 볼 필요도 없다’며 무조건 반대하는 편협한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분한 마음으로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전 고위 관계자는 “국정 역사교과서는 어디까지나 기존 검정교과서의 좌편향적인 표현을 바로잡고 학생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한 취지로 만든 것”이라며 “물론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볼 것도 없다’, ‘무조건 폐기돼야 한다’는 식의 반대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총리가 밝힌 대로 12월 말까지는 의견수렴을 거쳐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라며 “개인적인 생각은 지금 상황에서 내년 3월 당장 국정 역사교과서를 현장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1년 정도 적용시기를 유예한 뒤 국정 역사교과서와 검정 교과서를 혼용해서 쓰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