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 스고이~” 드라마 주인공 따라잡기
라멘 체인점 ‘이치란’ 내부. 1997년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돼있는 좌석을 처음 선보였다.
1997년 일본 후쿠오카의 라멘 체인점 ‘이치란’은 독특한 좌석 배치로 소위 대박을 쳤다. 모든 자리가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 옆에 앉아 있는 손님은 물론 서빙해주는 종업원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가게 측 설명에 의하면 “혼자 라멘을 먹을 때 남의 눈치를 보느라 서둘러서 먹는 고객들의 고충에 주목한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거리낌 없이 방문 가능한 매장 분위기가 젊은 층을 가게로 끌어 모았다. 차별화된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이치란은 어느새 전국적으로 유명한 라멘 체인점이 됐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일본 어디서나 1인용 칸막이가 마련된 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양성과 이질성이 심화되므로 대인관계를 맺어가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가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대학식당의 모습은 큰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과 합석이 기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몇 년 사이 이런 상식이 깨지고 있다. 2012년 교토대학을 비롯해, 2013년에는 고베대학이 학생식당에 칸막이 좌석을 설치하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이와 관련 <산케이신문>은 “사이타마에 위치한 다이토문화대학의 경우 375석 가운데 72석이 1인용 좌석”이라고 전하며 “대학가 식당에 칸막이 좌석이 더욱 확산되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테이블 위에 앞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불투명 플라스틱판을 마련한 구조인데 “혼자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
일본의 닛신식품은 컵라면이 익는 동안 말걸어주는 웹사이트를 오픈했다.
이처럼 일본 젊은이들이 1인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함께보다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것. 집단문화에 지친 탓에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선택이다. 관련 설문조사를 살펴봐도 혼밥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 1월, 대학생 500명에게 “구내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91.5%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점심시간 중 개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직장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화려한 명품숍이 즐비한 도쿄 긴자거리. 이곳에도 2년 전쯤 나홀로족을 겨냥한 샤브샤브 전문점이 들어섰다. 일반적으로 샤브샤브는 여러 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냄비에 음식을 끓여먹지만, 이곳은 바(Bar) 형태로 좌석마다 1개씩 전용 냄비가 비치돼 있다.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도 매력적이다. 점심에는 1만 원으로 푸짐하게 샤브샤브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식사를 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그러나 자발적인 혼밥이라도 가끔은 외로울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일본의 라면회사인 닛신식품은 컵라면이 익는 동안 말을 걸어주는 웹사이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미남 배우가 나타나 라면이 익을 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비슷한 콘셉트의 웹서비스도 속속 등장해 혼자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함께 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나홀로족을 겨냥한 서비스는 비단 음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제이캐스트>에 따르면 “최근 도심에서 성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1인 전용 노래방”이다. 도쿄 중심부인 이다바시역에 있는 나홀로 노래방은 퇴근 후 들르는 직장인 손님들로 가득 찬다. 기존 노래방의 경우 혼자 넓은 방에 덩그러니 앉아 노래를 하는 반면, 이곳은 1인 개인룸으로 운영돼 좀 더 아늑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개의치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를 수 있어 스트레스가 풀린다.
한국의 ‘혼밥’에 해당하는 일본어를 꼽자면 ‘봇치메시(ボッチ飯·외톨이밥)’라는 표현이 있다. 봇치는 원래 고독, 외톨이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최근에는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가령 친구가 없거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혼자 밥을 먹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방영 당시 일본에선 주인공을 따라 맛집을 찾아다니며 고독을 즐기는 나홀로족이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2012년 일본 TV도쿄에서 방영된 <고독한 미식가>는 시즌 5까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중년 직장인 남성이 혼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스토리를 다룬 드라마로,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식당은 모두 실재하는 음식점. 드라마가 방영된 다음 날에는 식당 앞이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주인공을 따라 입소문 자자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고독을 즐기는 나홀로족도 늘어났다. 이들은 하루 종일 수고한 자신을 위해 만찬을 먹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이에 대해 20대의 한 여성은 “최근에도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해 호화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면서 “봇치메시라고 하면 언뜻 쓸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재충전의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혼밥 난이도(레벨7이 최고 난이도) 다음은 오리콘리서치가 일본의 20~40대 회사원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혼자 들어가기 껄끄러운 음식점을 뽑아달라”는 질문을 한 후, 답변을 통해 혼밥 난이도를 1부터 7까지 나눠봤다. #레벨1 (0~10%) <남성> 계산 후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카페 9.7%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점 5.0% 라멘, 규동(소고기덮밥) 체인점 4.3% 서서 먹는 소바(우동)가게 3.0% <여성> 구내식당 8.5% 계산 후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카페 5.5%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점 4.3% #레벨2 (11~20%) <남성> 바(BAR) 17.8% 회전초밥집 17.5% 패밀리레스토랑 16% <여성> 자리에서 주문하는 카페 13.7% #레벨3 (21~30%) <남성> 캐주얼 레스토랑 29.2% 이자카야(선술집) 29% <여성> 라멘, 규동(소고기덮밥) 체인점 29.8% 서서 먹는 소바(우동)가게 26.2% 패밀리레스토랑 21% #레벨4 (31~40%) <남성> 해당 답변 없음 <여성> 바(BAR) 38.5% #레벨5 (41~50%) <남성> 야키니쿠(혼자 고기 구워먹기) 41.5% 샤브샤브 41.2% <여성> 캐주얼 레스토랑 46.8% 회전초밥 41.8% #레벨6 (51~60%) <남성> 프랑스요리, 고급 레스토랑 50.7% <여성> 이자카야(선술집) 57.3% #레벨7 (61~100%) <남성> 해당 답변 없음 <여성> 프랑스요리, 고급 레스토랑 73.8% 샤브샤브 70% 야키니쿠(혼자 고기 구워먹기) 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