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 해외연수 받고 4년 더 일해라...퇴직금 포기 서약 종용하기도
지난 7일 오후 8시 10분쯤 청담동 자신의 미용실을 빠져나가는 정송주 원장과 남편 김대식 대표.
정송주 원장은 지난 1994년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던 토니앤가이를 한국에 들여왔다. 정 원장은 영국의 미용학교인 비달 사순 헤어 스쿨에서 훈련을 받은 후 런던에서 미용실을 운영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정 원장은 남편 김대식 씨와 함께 국내에서 압구정 1호점을 시작으로 청담점, 분당점 등 매장을 확장했다. 또 헤어디자이너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토니앤가이 아카데미’를 시작하기도 했다. 토니앤가이 아카데미는 지난 2006년에 처음 시작됐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장과 같이 국내에 토니앤가이를 정착시킨 김 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국 70만 미용인이 대접받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실상은 달랐다. 이들은 예전 직원들에게 ‘퇴사 이후 퇴직금이 없다는 내용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영업비밀보안서약서’를 작성하게 하는가하면 일부 헤어디자이너에게는 6주간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조건으로 4년의 의무복무기간을 지정하기도 했다.
정 원장 측은 지난 2011년 고용했던 헤어디자이너 A 씨에게 교육비 반환을 명분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A 씨가 영국 토니앤가이 아카데미에서 연수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A 씨가 정 원장과 작성한 계약서에 따르면 회사비용으로 본인에게 제공되는 해외교육을 이수할 경우, 교육 이수 후 귀국한 날로부터 4년 이상 회사에 성실히 근무하겠다는 조항이 있다.
또 ‘계약기간 중 해외연수를 이수한 경우, 의무복무 기간 만료일 이전에 퇴직하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할 시 퇴직 즉시 회사가 부담한 해외 및 국내 교육비 전액과 회사의 손해액 등을 본인이 변제해야 한다’는 내용도 기재돼 있었다.
정 원장 측은 당시 A 씨가 2008년 8월 영국으로 연수교육을 받은 이후 4년을 채우지 않고 2010년 8월 퇴사했기 때문에 계약에 따라 해외연수비, 국내교육비, 영업상 손실 등을 포함한 97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A 씨는 반소를 제기했다. 반소는 소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피고가 원고에게 새로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즉 A 씨가 정 원장 측에 새로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 씨는 반소 당시 연수 이후 근무에 따른 손해를 담보하기 위해 매월 10만 원씩 기본급에서 빼 정 원장 측에 맡겼던 보관금 260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또 A 씨는 2008년 8월 영국에서 불과 6주 동안 연수교육을 받았고 왕복항공료와 숙박비용을 자비로 부담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에서 받은 것은 생활비 명분으로 1일당 영국통화 10파운드를 지급받은 게 다였다. 10파운드는 원화로 1만 5000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법원에서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가 해외연수를 받고도 사회통념에 비추어 정당한 사유 없이 또는 그의 과실에 기해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못한 때에는 해외연수비 등의 반환 의무를 진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의 과실에 기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원고 측에게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의무복무 기간 내에 무단 퇴사했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정 원장 측의 본소 청구는 기각됐다.
정 원장 측이 A 씨에게 해외연수 당시 1일 10파운드를 지급한 외에 별다른 금전적 지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6주의 34배에 달하는 4년의 의무복무기간을 부과하고 해외연수비용 외에 국내연수비용 및 회사의 손해액을 전부 변제하도록 하는 점은 민법 제103조, 근로기준법 제20조에 위반해 무효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오히려 A 씨가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2010년 8월경 정 원장 측은 A 씨를 포함한 근로자들에게 ‘영업비밀보안서약서’라는 서류를 작성하도록 요구했다. 이 문서에는 성과급에 퇴직금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퇴사 후에 퇴직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고 이에 서명을 해 제출하게 한 것. 재판부는 이 같은 상황은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당하게 면탈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이 문서에 대해 인센티브를 성과급으로 받은 적도 없고 퇴직금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위 서약서를 서명, 제출할 수 없다고 정 원장 측에 알렸고 이후 정 원장 측에 의해 근로계약관계가 종료됐다. 사실상 A 씨는 해고를 통보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 토니앤가이에서는 정 원장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미용실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고 정 원장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지난 2011년 토니앤가이는 또 다른 유명 미용실로 이직한 헤어디자이너를 상대로 경업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적도 있었다. 경업금지는 경쟁업종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이다. 사측은 당시 “2006년부터 해마다 3~4차례 영국 본사 미용팀을 초빙해 교육을 실시했고 본사로 해외 연수를 보내기도 했다”며 “이 헤어디자이너는 또 퇴직 후 1년간 우리의 동의 없이 본점 반경 2㎞ 내에서 미용업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직원에게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미용실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운 만큼, 일정기간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재판부는 유사 소송에서 “업주와 미용사 사이에 경영금지 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율과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판결해 미용실 업주가 패소한 바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