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신랑과 미얀마 신부의 ‘국경 너머의 사랑’
인도 국경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린 미얀마 신부 산과 한국인 신랑 은.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어진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아주 먼 훗날에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살아가며 우리도 두 길을 다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길을 택해서 가다보면 늘 아쉬움과 미련이 남습니다. 긴 시간의 버스 안에서 저도 지난 삶들을 돌이켜봅니다. 젊은 시절 저는 노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여행도 했고 그 나라 역사, 철학, 예술에 관해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 지금 미얀마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은 ‘가지 않은 길’이 돼버렸습니다. 지금 이 길을 택한 이유가 있고 후회는 없지만 싯귀처럼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 주민 잔치를 위해 준비한 가마솥들(위). 소와 돼지를 몇 마리 잡았다. 300명의 마을 주민 전체가 한국인 청년과 마을 처녀의 결혼을 축하하고 식사를 했다.
인도 국경과 가까운 떼꾸루이(Teeklui)란 마을에 오늘 결혼식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입니다. 한국인 청년과 이 마을 처녀가 부족 전통의 혼례를 치릅니다. 제가 연재편지 50번에 소개한 청년들입니다. 그 후 이 청년들은 저희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에선 외국인과의 결혼이 처음이라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너무 먼 곳이라 한국의 가족들은 올 수가 없습니다. 신랑친구와 저와 통역이 대신합니다. 이 부족의 혼인절차는 까다롭습니다. 우선 아침부터 먼 친인척까지 신부의 집에 모입니다. 양가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개됩니다. 결혼에 문제가 없는지 모두 묻고 대답해야만 합니다. 신랑이 준비한 선물 하나하나가 모두 전달됩니다. 신부 부모님께는 이불을 선물합니다. 이 지방이 춥기 때문에 생긴 관습입니다. 그리고 양가를 대표한 어른이 서로의 가문이 하나가 되고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아주 긴 설명입니다. 이윽고 신부 측에서 제공하는 뜨거운 우유가 나옵니다. 이 우유를 한사람도 빠짐없이 마셔야 혼인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약혼 때도 대문을 들어서서 우유가 차려져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연한 우유는 승낙을 뜻하는 거 같은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린 한 잔을 더 마셨습니다. 신랑 측 가문과 이유들을 설명할 길이 없어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먼 나라에서 먼 길을 왔다’고 했습니다. 신부 측 사람들이 미소를 짓습니다. 서로의 나라의 관습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으므로 국경을 넘는 힘든 결혼을 잘 이겨낼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과정이 오전 내내 진행되었습니다. 오후에는 이 마을 산꼭대기에 있는 교회에서 현대식 결혼예식이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크리스천입니다. 이 마을은 약 100년 전 미국 선교사가 들어온 곳이라 첩첩산중에 자그만 교회가 있습니다.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안뜰에선 여러 가마솥에 잔치를 준비하는 음식이 만들어집니다. 장작불이 타오르며 마을은 연기가 자욱합니다. 약 300명의 마을 주민 전체가 먹을 식사입니다. 소와 돼지를 몇 마리 잡았습니다. 예식 끝에 신랑 측 감사인사를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통역이 가능하면 길게 하라고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시간도 많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길 좋아한답니다. 외국인과의 결혼이니 듣고 싶은 얘기가 많을 거라며. 그래서 제가 앞으로 나가 말합니다.
아스라이 보이는 길을 따라 산을 넘으면 인도 미조람 마을이다. 지금도 농산물을 팔러 국경을 넘곤 한다.
이제 인도 국경 산꼭대기 마을의 축제가 끝나고 돌아갈 시간입니다. 또 30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합니다. 신랑 은은 오는 시간도 가는 시간도 가볍게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 긴 시간도 그대를 향해 달려온, 그대에게 가는 여행인 까닭입니다. 우리 삶의 긴 시간도 언젠가는 돌고 돌아 바로 옆, 그대에게 가는 여행일지도 모릅니다. 국경지대에서 사람간의 국경을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며칠을 보내며 국경을 허무는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올 때와는 달리 돌아가는 그 긴 시간이 가볍게만 느껴집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