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몰이 위해 떠먹여주는 ‘브로맨스’ 좋으면서 불편한 까닭
로맨틱 코미디의 여제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드라마 <도깨비>에는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차면서도 아픔을 품고 있고, 순수하지만 똑부러지는 캔디 스타일의 여주인공 지은탁(김고은 분)이다. 도깨비의 신부가 될 운명대로 남주인공인 도깨비 김신과의 로맨스도 회가 거듭되면서 짙어져 앞으로의 결말에 많은 팬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팬들의 마음에 더 크게 남는 게 남녀 커플의 러브라인보다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브로맨스(Bromance)’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서 이들 캐릭터가 보여주는 감정의 변화와 관계의 진전이 메인 커플 이상의 영향력을 뽐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브로맨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tvN 주말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사자(이동욱)와 도깨비(공유). 사진=tvN <도깨비> 공식 홈페이지
형제나 남성들 간의 친한 동성 친구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 브러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인 브로맨스는 남성 간의 우정 이상 사랑 미만 관계를 뜻한다. 동성 간 우정 이상의 관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우리나라에서 브로맨스가 안방극장의 셀링 포인트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KBS 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걸오(유아인 분)와 여림(송중기 분)의 관계가 여성 팬들의 큰 관심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들 ‘걸림커플’은 2010년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시청자들이 뽑은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브로맨스 열풍에 힘입어 방송 3사의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에 드라마 남성 출연진들로만 구성된 커플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만 하더라도 상반기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와 진구, 같은 방송사의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박보검과 곽동연, OCN 드라마 <38사기동대>의 마동석과 서인국 등이 이끌어낸 브로맨스가 주목을 받았다. 아예 드라마 방영 전부터 브로맨스 이름표를 달고 홍보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최근 KBS 2TV 드라마 <화랑>과 MBC의 새 수목드라마 <미씽나인> 등이 브로맨스를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처럼 메인 남녀 커플보다 곁다리로 삽입되는 남남(男男) 커플에 여심이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브로맨스 코드는 한국 드라마에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브로맨스 열풍의 한 구석에는 불편한 시선이 존재한다. 결국 상업적으로 경쟁하듯이 홍보하고 있는 드라마의 브로맨스 요소가 애초부터 동성애적 코드를 소비하고자 하는 시청자들을 향한 의도적인 삽입이 아니냐는 것.
브로맨스를 향한 불편한 시선은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동성애 코드가 현실에서는 금기시돼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수면 위로 올리기 조심스러운 주제를 단지 팔린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이런 상업적 브로맨스에 기본 토대가 되는 동성애의 존재는 작품 속에서 완벽하게 배제된다는 점 역시 비판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된다.
드라마에서 ‘팔리는 브로맨스’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남성 등장인물이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여야만 한다. 그런데 서로가 완벽한 이성애자인 이들 사이에는 단순한 브로맨스를 넘어서 이성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움과 애정을 오고가는 감정선이 그려진다. 다투고 갈등을 빚으면서도 결국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관계에서 여성을 남성으로 바꾸고 스킨십을 삭제하면 ‘팔리는 브로맨스’가 된다.
그러나 팔리는 브로맨스 속에서도 극중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과 ‘정상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보장된 상태다. 이 때문에 아무리 남자들이 완벽한 ‘케미’를 보여줘도 동성애 조장으로 비판을 받을 이유도 없고, 도리어 화제몰이와 흥행의 요소가 된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에서 브로맨스 요소는 민감한 이슈와 관련돼 있으면서도 사회적 비판은 피하고, 화제성은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손꼽히고 있다. 너도나도 브로맨스를 드라마 홍보의 최전선에 넣고, 시청자들에게 매 화마다 ‘남남 케미’를 떠먹여 주는 이유가 여기서 기인한다.
이에 대해 한 드라마 제작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서 브로맨스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제작진들이 의도적으로 남성 등장인물들 사이에 그런 코드를 삽입해 지속적인 화제성과 고정 시청자들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드라마의 브로맨스가 남성 등장인물들의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관계성을 보여주는 것보다 극중 요소로 가볍게 소비되는 데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는 데에는 이런 탓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