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계열사 체불…‘발등에 불’ 투자자들은 알고 있다
이랜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그룹 주력 사업 부문인 패션은 물론 유통, 관광, 외식, 부동산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손을 댔다. 이 과정에서 중국 현지 유통 사업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지만 차입 경영의 어두운 이면이 함께 드러났다. 일요신문 DB
지난 12월 19일 고용노동부는 외식사업을 영위하는 이랜드 계열사 이랜드파크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랜드파크는 360개 매장에서 직원 4만 4360명의 임금 83억 7200여만 원을 체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12월 23일 이랜드파크의 임금 체불과 관련해 직원들의 행정소송 등을 대리하겠다고 밝혔으며, 같은 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다루겠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이랜드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이랜드파크 외식 사업 부문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고, 잘못된 부분은 즉각 개선하겠으며 늦어도 2017년 2월 안에는 미지급한 급여에 대해 전액 보상토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비난 여론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당장 이랜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기류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랜드 다른 계열사에서도 임금 체불이 있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랜드 지주사 이랜드월드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랜드월드는 2014년 배당금으로 1467억여 원의 수입을 올렸고, 2015년에도 731억여 원을 받았다. 같은 기간 이랜드월드의 미처분 이익잉여금은 각각 6349억여 원, 6659억여 원으로 나타났다. 즉 임금을 주지 못할 만큼 최악의 경영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또 2016년 3분기까지 이랜드월드는 배당금만으로 263억여 원을 수취했다. 사실상 가족회사인 이랜드월드는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과 그 부인인 곽숙재 여사가 48.64%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이는 이랜드월드가 보유한 자기주식 지분율인 44.71%보다 많다. 이에 대해 이랜드 측은 “엄연한 그룹 지주사로서 다른 계열사로부터 일부 배당을 받긴 했지만 회장 일가나 이랜드월드의 자산을 증식할 목적은 결코 없었다“며 ”배당금은 전액 그룹사에 재투자했다“고 해명했다.
이랜드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 상장을 추진하며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벌이고 있다. 뉴코아아울렛 등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약 2조 원)과 자산(약 2조 8000억 원)을 자랑한다. 최준필 기자.
이랜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그룹 주력 사업 부문인 패션은 물론 유통, 관광, 외식, 부동산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손을 댔다. 이 과정에서 중국 현지 유통 사업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지만 ‘차입 경영’의 어두운 이면이 함께 드러났다.
2015년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이랜드월드의 단기차입금 및 유동성 사채는 3조 2297억 원으로 나타났다. 2016년 3분기에는 3조 5729억 원으로 갚아야 할 돈이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이랜드월드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8104억 원에서 4242억 원으로 줄었다. 우리은행 등에서 이자율 0.7%~10.8%로 빌린 단기차입금만 2조 3000억 원에 달했다.
2015년 3분기 540억 원에 불과했던 단기금융대출도 2016년 3분기에는 3066억 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장기금융대출은 2237억 원에서 831억 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회사 덩치에 비해 낮은 기업 신용등급(BBB)이 기업 현금 흐름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는 2015년 2347억여 원의 이자를 지출했고, 2016년 3분기에도 1883억여 원을 냈다. 이랜드 관계자는 “신용등급 제한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었던 것이 유동성에 일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랜드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 상장을 추진하며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벌이고 있다. 뉴코아아울렛 등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약 2조 원)과 자산(약 2조 8000억 원)을 자랑한다. 앞서 이랜드는 ‘패스트트랙’ 방식의 상장 예비심사를 한국거래소에 청구하고, 2017년 상반기 내 상장을 완료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미 ‘알짜 브랜드’인 티니위니를 중국 업체에 넘겼고, 킴스클럽 매각이 무산된 상황이라 이랜드리테일 IPO는 이랜드가 재무구조 개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꼽힌다.
그러나 이랜드리테일 IPO 흥행 여부에 대해선 시장의 반응이 엇갈린다. 일부 증권사는 ‘2017년 상반기 IPO 대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두산밥캣 사례에서 보듯 실제 공모가가 낮아지면서 이랜드가 쥘 현금이 줄어들 수 있다. 앞서 두산은 두산밥캣 희망공모가로 4만 1000원~5만 원을 써냈지만 실제 공모가는 3만 원이었다.
또 그간 유통업계 ‘빅3’(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가 아울렛 등 할인형 쇼핑몰 설립에 미온적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도 공모가에 일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장 시기를 2~3년만 더 당겨서 중국 경기가 호황일 때 했다면 높은 가격을 받았을 텐데 아쉽다”며 “내수 침체 및 플랫폼 다양화 등 유통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이랜드리테일이) 제값을 받을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랜드가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자체 법인을 상장한 적 없다는 점과 과거 이랜드패션차이나홀딩스 등의 상장을 철회했던 전력은 시장의 의심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이랜드 다른 관계자는 “상장을 위해 주관사까지 선정한 만큼 철회는 없다”며 ”앞서 일부 우려가 제기된 ’상환전환우선주(RCPS) 문제‘는 투자자들과 협의를 마쳤고, 이번 IPO 목적이 반드시 단기적인 자금 조달에 있는 것도 아니다. 장기적인 자금 유입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앞서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경험한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로 금융권이 개입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영업이 잘 안 된다. 또 영업이 잘 안 되면 자산을 팔아서 금융비용을 갚아야 하는데 자산을 팔 때 제값을 받기 어렵다. 매수자 쪽에서 상황이 급박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금융권과 협의 없는 IPO만으로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이랜드 측은 ”부동산 회사 연계 상장 등 다양한 재무구조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유휴 부동산이 아직 많고, 주채무계열 집단에도 선정된 적 없기에 2017년 상반기 내에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반드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