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0시 소등, 연차 10일 의무…직원 반응은 ‘반반’
2015년 12월 과로로 자살한 다카하시 마쓰리.
덴쓰는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다. 그러나 살인적인 업무량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는 기업 중 하나였다. 1991년에는 입사 2년차 직원이 과로로 자살하고, 2013년에도 30세 남자직원이 과로로 병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회사는 2014년과 2015년 노동기준 감독서(監督署)로부터 “노사협약 한도를 넘는 시간외 근무를 시키지 말라”는 시정권고를 받았지만, 또 다시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카하시가 사망한 지 1년. 딸을 잃은 모친의 수기가 인터넷에 공개돼, 다시금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카하시의 어머니인 유키미 씨는 “그날부터 내 시간은 멈췄고 미래도, 희망도 잃어버렸다”며 “나의 진짜 소원은 딸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라고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의 노동 방식은 변해야 한다. 일 때문에 사람이 불행해지거나 목숨을 잃는 사태가 빚어져서는 안 된다. 기업은 보여 주기식이 아니라 정말로 개혁을 해 달라”고 호소했다.
과로사 파문에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덴쓰는 부랴부랴 “근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아예 철야를 할 수 없도록 오후 10시 이후엔 본사 건물 전체를 소등하고, 초과근무 상한선인 70시간을 5시간 단축한다”고 밝혔다. 또 연간 10일 유급휴가 의무화 계획 등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개선 방안에 대해 덴쓰 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쓰가 직원들을 혹사시키는 ‘블랙기업’에 선정됐다.
한쪽에서는 “자유 시간이 늘어나게 됐다” “젊은 직원들의 의견이 존중되는 분위기로 바뀔 듯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쩌라는 건가. 이제 집으로 일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과로 및 장시간 근무는 비단 덴쓰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초과근무를 당연시하는 기업 풍토가 만연해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특유의 고용시스템인 종신고용제와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직원들이 정년까지 고용되는 대신, 회사를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풍토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문화는 고도성장기 때는 부작용이 크지 않았지만,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종신고용제가 일본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데다 창의적이고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와 역행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하는 방식 개혁’이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먼저 일본 정부는 ‘과로사 방지대책추진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여기서 ‘과로사(過勞死)’란 장시간 근무에 의한 뇌혈관질환 및 심장질환 사망, 그리고 자살도 포함된다. 이 법에 따르면 “시간외 근무시간이 한 달에 8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과로사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해마다 과로사 상황 및 정책도 의회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지난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과로사 백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약 1만 개 사업장과 근로자 2만 명을 대상으로 근로실태를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기업의 22.7%에서 근로자가 월 8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 20시간 야근을 한 근로자는 잔업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를 느끼는 비율이 배 이상 높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월 평균 추가근무가 45시간 이상”이라고 대답한 업종은 운수·우편업(14.0%), 숙박·음식 서비스업(3.7%), 도매·소매업(3.4%)로 확인됐다. 이보다 장시간 근무하는 직원들, 즉 과로사 기준인 “월 평균 80시간 이상 추가근무”하고 있는 업종은 정보·통신업(44.4%), 학술연구·기술 서비스업(40.5%), 운수·우편업(38.4%)으로 조사됐다.
<요리우리신문>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장시간 노동 방지대책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사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켰을 경우 기업명을 공개하는 기준을 월 100시간 이상에서 80시간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과로사하거나 과로로 인해 자살이 확인된 기업명도 공표 대상에 추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시오자키 야스히사 후생노동상은 “덴쓰의 신입사원 다카하시 씨가 사망한 지 1년이 됐다”며 “앞으로 이런 사태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시간 노동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대책 강구도 주목할 만하다. 기업들이 가장 많이 실천하고 있는 것은 ‘잔업사전 신고제’. 직원이 야근을 할 경우 관리자에게 미리 보고를 하고, 허가가 떨어지면 잔업을 하는 구조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쿄 도시마구 구청은 오후 7시 이후 시간외 근무를 원칙적으로 금지키로 하고, 매일 밤 7시 청사 내 불을 일제히 끄기로 했다. 만일 그 시간 이후에도 근무를 원하는 직원이 있다면 관리부서의 허가를 받은 후 근무를 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을 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자유를 부여하는 플렉스타임(Flex time) 제도를 도입한 기업도 많다. 반면, 독특하게 새벽근무 촉진제로 눈길을 끈 기업도 있다. 이토추상사는 오후 8시 이후의 잔업을 금지하는 동시에, 오전 5시~9시 사이의 근무에는 시간 외 수당을 종래보다 인상해 지급하고 있다. 단, 앞서 도입했던 플렉스타임 제도는 폐지했다. 대부분의 사원들이 늦게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야근을 근절하고 과로사를 막기 위한 일본의 노력들. 과연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