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안종범 등의 2차 공판에서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기금을 낸 대기업 임원들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이날 검찰은 앞서 제기한 공소사실에 맞춰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설립 기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강요나 압박이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를 내놨다.
검찰은 오전 KT그릅 희망나눔재단 이사장의 진술조서 공개에 이어 김 아무개 삼성 미래전략실 전무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삼성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총 204억 원을 출연했다.
조서를 보면 김 전무는 “우리(삼성)는 재단 설립을 주도하거나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설립 목적이나 취지에 관심도 없었다.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을 통해 청와대로부터 지시받은 돈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김 전무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시했고,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걸 (윗선에) 보고드렸기 때문에 별다른 반대는 없었고 빨리 추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 전무는 박찬호 전경련 전무에게서 기금 출연 독촉 전화를 받았다. 이때 박 전무가 “경제수석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대통령께서 재단 설립이 왜 이리 더디냐고 질책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 기간에 문화재단 간 MOU를 맺기로 했는데 마땅한 재단이 없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 2015년 10월 30일 리커창 총리의 방한에 맞춰 재단 설립을 서둘렀다는 검찰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박 전무는 지난 2015년 10월 24일부터 각 대기업 임원들에게 앞서와 같은 취지로 전화를 돌렸고, 이틀 뒤인 26일 기금이 대부분 모였다.
김 전무는 “만약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얘기했다면 전경련에서 크게 의미 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업들로서는 경제 수석이란 자리가 국가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위치라 지시를 거부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혁주 LG 유플러스 부사장도 검찰에서 “대기업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경제 수석”이라며 “다른 수석이 이야기했다면 이 정도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박영순 SK 전무도 “청와대가 관심 갖고 하는 일에 출연하지 않거나 반대하면 향후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른다고 판단했다”며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렇게 설립 목적에 대한 설명이나 사업계획서를 받는 등의 사전 검토조차 없이 단기간 증액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우 연말 이웃돕기 성금에 배정된 돈을 빼 케이스포츠 재단 출연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현대자동차 그룹은 재단 출연금으로 배정된 돈도 없고 급히 만들 방법도 없어 연말 소외아동돕기 성금으로 배정된 9억여 원을 케이스포츠재단 설립 기금으로 냈다”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