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법조인맥 총동원 ‘뇌물죄 공방’ 대처 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당초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앞두고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 사건 핵심 인물들을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와 대기업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자리에서 특검 고위 관계자는 ‘수사에 협조하면 이 부회장을 불구속 수사할 수 있다’는 의견을 삼성 쪽 인사들에 전달했다. 한 임원은 이를 믿고 특검에 일부 진술과 함께 자료를 전달했다.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과 관련된 증거로 알려졌다. 삼성은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사안’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비공개 접촉을 마친 특검은 기다렸다는 듯 삼성을 겨냥해 맹공을 퍼부었다. 공식·비공식 루트로 이 부회장의 사건 개입을 암시하는 여러 정황들이 언론 지면에 오르내렸다. 최근 소환된 한 임원은 특검의 이 같은 여론전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조사 과정에서 ‘사전 접촉’에 관한 내용을 조서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특검이 수집한 일부 증거에 대해 ‘위법성’을 따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 도중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최준필 기자.
그러나 정유라를 알게 된 시점과 관련해선 기존 진술을 일부 뒤집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2014년 9월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삼성이 대한승마협회를 후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며, 실제 2015년 3월 박상진 사장은 대한승마협회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박 사장이 승마협회 업무를 인계받은 시점(2015년 3월)과 이 부회장이 정유라를 알게 됐다고 말한 시점(2016년 2월)은 무려 11개월 차이가 있다. 특검은 승마협회가 삼성물산 합병이 결정되기 전인 2015년 6월께 정유라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작성한 것을 결정적인 증거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승마협회를 후원하게 된 계기와 관련해 최지성 실장과 장충기 차장, 박상진 사장의 말이 서로 조금씩 달랐고, 이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이 정유라 지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즉 삼성의 가장 약한 고리를 특검이 들춰낸 셈이다.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이 9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실제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출연 사건을 수사하며 삼성을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결론내린 바 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박영수 특별검사와 삼성 변호인단의 남다른 친분을 언급하며 특검 내에서 이 부회장 신병 처리와 관련해 여러 ‘이견’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 특검은 임명 직후인 지난해 12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성역 없이 수사할 것”이란 입장을 전한 바 있다.
특검의 조직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사정기관 안팎에선 삼성을 돕는 ‘내부자’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른바 삼성의 ‘법조계 인맥’이 원활한 수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검찰 특수본이 삼성 미래전략실을 압수수색했을 때 수사관들이 미래전략실 VDI(가상 데스크톱)를 열려 하자 검찰 수뇌부가 현장에 전화를 걸어 압수수색 인력을 철수시킨 적이 있다”며 “VDI에 민감한 정보가 많은데 압수수색이 무산되면서 남은 증거는 모두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특검은 삼성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이 부회장의 신병 처리가 결정나는 대로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와 별개로 법조계 인맥을 활용해 특검 안팎과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론전 등 어떤 식으로라도 반격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