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거주’ 피선거권 조항 새 뇌관 부상…‘지지율 무너지는 순간 드롭’ 전망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방문했다. 임준선 기자
1월 12일 귀국과 동시에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 반기문 전 총장은 ‘1일 1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반 전 총장이 매일 구설에 오르는 것을 빗댄 말이다. 귀국 첫날 공항철도 승차권을 뽑기 위해 만 원권 두 장을 한꺼번에 무인 발매기에 넣는 모습을 보여 ‘서민 코스프레’라는 오명을 얻었다. 다음날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과정에선 미리 준비한 쪽지를 참고해 방명록을 쓰는 모습이 포착됐다. 14일엔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누워있는 노인에게 죽을 먹여 뭇매를 맞았다.
밖으로는 친인척 비리 의혹이 반 전 총장을 흔든다. 미국 정부는 반 전 총장 친동생인 반기상 씨를 체포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반 씨는 아들인 반주현 씨와 함께 1월 10일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조카 반 씨는 장기간 병역기피자로 지명수배가 돼 있는 상태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러한 내우외환은 반 전 총장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월 23일 발표한 1월 3주차 주간 집계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19.8%로 탄핵 정국인 지난해 12월 1주차 이후 6주 만에 처음으로 10%대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1월 16일~20일 5일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2520명을 대상으로 무선전화, 유선전화 혼용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이며, 응답률은 15.3%(총 통화시도 16459명 중 2520명 응답 완료)였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이런 가운데 반 전 총장 피선거권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공직선거법 제16조(피선거권)는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 거주기간으로 본다”고 돼 있다.
여기서 명시된 거주 규정을 두고 일각에선 반 전 총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을 문제 삼는다. 반 전 총장이 2006년 12월부터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근무해 약 10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규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사무총장직의 경우 선출직 및 상근직이라는 점에서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 거주기간으로 본다’는 단서 조항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뒤를 잇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는 1월 13일 반 전 총장이 피선거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권해석을 내렸다. 중앙선관위는 “반 전 총장에게 피선거권이 있다고 보고 있다. 5년 이상 거주한 사실이 있고 거주 요건을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뒤의 조항은 더 살펴 볼 필요도 없다”고 답했다. 반 전 총장이 과거 5년 이상 국내에서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전체 회의가 아닌 개별 실무자 선에서 작성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1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 피선거권과 관련한 유권해석은 중앙선관위원 전체회의를 열지 않고 실무자 선에서 결정해 총장 전결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기동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월 23일 “자격 무효 소송 걸린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또 다른 비극이 될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정확하고 공신력 있는 입장을 내놔야 한다. 반 전 총장 역시 법적 자격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동섭 국민의당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선관위는 편파, 졸속 해석으로 ‘선거개입위원회’가 되는 우를 범하려 하고 있다”면서 “선관위는 조속히 전체 회의를 열어 신중한 토론을 거쳐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석을 내놓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몇몇 헌법학자들도 거주 요건을 ‘5년 이상 연속한 경우’로 풀이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선관위가 신기한 해석을 하고 있다. 선관위는 그 조항에 ‘계속하여’가 없다는 이유로 그런 해석을 내놓았는데, ‘거주하고 있는’은 당연히 ‘현재진행형’을 뜻하는 것이어서 ‘계속하여’가 생략됐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선거 5년 전부터는 국내에 거주해서 이곳 사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타당하다”고 했다.
결국 반 전 총장은 피선거권을 둘러싼 소송에 휘말렸다. ‘역사바로세우기시민네트워크’ 등 일부 시민단체는 1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반 전 총장의 제19대 대통령선거 피선거권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올해 1월 12일까지 최근 10년 동안 국내에 전혀 거주하지 않았던 반 전 총장에게 2017년 대통령 선거 피선거권이 존재하지 않음을 소송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중앙선관위에서 분명히 ‘자격이 된다’ 이렇게 몇 번 유권 해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 문제를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유엔 총회가 결의한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도 반 전 총장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약정서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안해서는 안 되며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1월 13일 “유엔 총회 결의가 고스톱판의 룰만도 못하느냐. 유엔 사무총장 자리가 국제적 분쟁 조정과 국가 간 많은 역할을 이끌어내는 역할임으로 특정 국가의 지도자나 공직에 나가는 것을 금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약속이다. 이런 약속을 왜 아무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이처럼 연일 악재가 터져 나오자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이 과연 대권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지 회의적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과거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을 바탕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가 중도하차한 몇몇 정치인들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1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반 전 총장의) 불출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면서 “귀국 이후 국가 위기를 극복할 성찰과 대안 없이 이미지 행보로 많은 국민을 의아하게 했는데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미국 발 친인척 비리도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닌 만큼 이제는 반반보다 명확해졌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또한 “중도 하차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른 잠룡들은 대선에서 낙마하더라도 미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낙선하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지금 상황으로선 대선 준비가 안 돼 있어 경선 통과도 힘들 것 같다. 정책은 자신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것도 없다. 지지율이 무너지는 순간 드롭”이라고 주장했다.
반 전 총장 내부 기류 역시 심상치 않다. 반 전 총장의 핵심 측근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솔직히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합류하기로 했다가 번복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반 전 총장이 정치에 미숙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어 실망이 크다. 특히 계속되는 검증에 반 전 총장이 대처하는 태도를 보면서 버티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다. 반 전 총장 지지율이 빠지면서 더욱 그렇다”라고 털어놨다.
반 전 총장은 완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반 전 총장은 1월 24일 “그 말(중도 포기)은 제가 한 적이 하나도 없고 다른 분들이 그렇게 희망하는 것 같다. 제가 어려워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희망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저는 일단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심사숙고 고뇌해서 결심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반 전 총장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초반 지지율 상승 실패가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에 적신호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다른 정체 세력과 연대하지 않고서는 현재 국면을 돌파하기 어려워졌다. 제3지대 깃발을 꼽고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를 끌어들이는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선택은 보수 진영의 독자 후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정치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숙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 만약 중도 진영으로 몸을 옮겼는데도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대선 완주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