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신세계백화점 분리’···오빠 정용진 ‘스타필드’ 동생 정유경 ‘화장품’ 사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좌)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우).연합뉴스
[일요신문] “엄마 마음을 사로잡아라” 신세계그룹(회장 이명희)의 후계구도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해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동생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과의 경영분리를 통한 책임경영 체제를 도입했다. 이른바, ‘남매경영’ 후계구도인 셈이다. 하지만 양사의 최대지분을 모친인 이명희 회장이 쥐고 있어 신세계그룹의 후계를 위한 남매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하다. 이 회장의 선택에 따라 후계구도가 완전히 재편될 수 도 있는 만큼 올해 남매들의 행보에 관심을 쏠리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7 경제계 신년인사회’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동생(정유경 사장)도 맡은 분야, 잘하는 분야에서 책임을 갖고 해 보라는 이명희 회장(어머니)의 지시가 있었다”면서 “동생이 그 부분(신세계백화점)을 맡아서 해 주면 스타필드, 이마트 등 다른 계열사를 내가 챙길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남매 경영 구도를 시인한 셈이다.
올해 정용진 정유경 남매는 어느 때보다도 경영일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까닭이다.
정 부회장은 스타필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정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타필드 프로젝트’는 하남, 고양에 이어 안성, 청라에 스타필드를 새로 오픈하고 지난해 문을 연 스타필드 하남과 고양점에 새로운 전문점을 확대 입점할 방침이다. 또한, 지난해 말 신세계프라퍼티를 통해 코엑스몰을 인수한 뒤 곳곳에 스타필드 브랜드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건물 내외부 인테리어는 물론 영수증이나 카드단말기까지 신경 쓰며 코엑스몰의 ‘스타필드화’에 힘쓰고 있다. 정 부회장은 스타필드 코엑스몰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스타필드 하남을 통해 강남권에서 사업 확장을 노리고 있다. 이마트 계열 전문매장을 늘리는 계획도 이에 포함된다. 대내외적으로 이마트와 스타필드의 이미지 확장성에 초점을 맞춘 모양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연합뉴스
정 총괄사장도 이에 질세라 화장품사업 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정 총괄사장은 화장품 제조공장이 곧 완공되는데 발맞춰 백화점에 화장품편집샵을 열어 유통채널 확대에 힘쓸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정 총괄사장이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경기도 오산에 짓고 있는 1500톤(5천만 개가량)의 제품생산이 가능한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공장이 2월 완공된다.
신세계 자회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5년 연말 이탈리아의 화장품 제조업체 인터코스와 50대 50의 지분으로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를 설립해 화장품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판 세포라’를 노린 화장품 전문편집샵인 ‘시코르’를 론칭해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 문을 열었다. 신세계는 유통채널 다변화를 위한 조치로 ‘시코르’ 매장을 부산 센텀시티점과 강남점까지 확대하고 ‘유통강자’로 떠오른 드러그스토어 연관 사업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코르를 통한 유통망 확대와 오산 공장에서 자체브랜드를 직접 생산할 경우 제조사업과 유통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결국 정 부회장의 ‘스타필드’와 정 총괄사장의 ‘화장품’이 올해 전략사업으로 경영능력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연합뉴스
하지만, 이들 남매의 경영구상과 반대로 모친인 이명희 회장의 성에는 차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후계구도 테스트가 길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정 총괄사장의 경우, 이미 2012년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뷰티시장 진출에 공을 들여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다만, 지난해 말 비디비치가 면세점에 입점하면서, 처음으로 적자를 벗어나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과 시코르의 시너지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화장품 제조사업은 B2B(기업간 거래) 거래를 하는 만큼 유통망의 중요도가 낮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도 ‘스타필드화’에 걸림돌이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코엑스몰의 경우 리모델링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권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로 보인다.
무역협회가 2013년 3000억 원가량을 들인 대대적인 공사에도 불구하고 동선과 입점 브랜드의 가격대가 높아지는 등 코엑스몰 유동인구 자체가 크게 줄었다. 여기에 강남을 비롯해 경기 남부권에 롯데월드몰, 현대백화점 판교점, 스타필드 하남 등 대형 쇼핑몰들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정 부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신년인사회에서 “코엑스몰이 2019년이나 2020년이 되면 바뀌었다고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선 등을 개선하면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권을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당분간 코엑스몰 상권이 살아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한, 코엑스몰의 공실률 관리도 악재로 떠오른다.
매출은 줄었는데 임대료는 유지되면서 코엑스몰을 떠나는 임차인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실률은 5~6%에 이르며, 올해 재계약을 앞둔 매장만 100여 개에 이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스타필드 하남 오픈식에 참석해 개점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럼에도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사업 확장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신세계그룹이 정 부회장은 이마트,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라는 후계구도를 공식화한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그룹의 양대 축으로서 산하에 계열사들을 양분해 두고 있다. 이마트 밑에는 신세계푸드, 에브리데이리테일, 신세계조선호텔 등, 신세계 밑에는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DF 등이 있다. 스타필드를 통한 이마트 확장성과 화장품 사업을 통한 유통사업 확대 등이 이들에겐 경영 능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지적이다.
신세계, 이마트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이 회장이다. 이 회장이 두 사람에 보유 주식을 양분해서 증여할 수도 있지만, 경영 성과가 뚜렷한 이에게 몰아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 회장의 선택에 따라 후계구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경영권을 놓고 남매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