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선 도로에 만취승객 방치한 택시기사 행동 ‘의아’
지난 1월 21일 수원에서 거주하는 김 씨는 친구들과 안산 일대에서 술자리를 가진 후 새벽 4시가 넘어 귀가를 위해 택시를 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가 탄 택시의 기사였던 이 씨는 새벽 4시 55분께 수인산업도로 반월육교 인근 도로변에서 술에 취한 김 씨를 10여 분간 폭행한 뒤 도로변에 방치한 채 떠났다. 피해자 유족이 제공한 CCTV를 보면 새벽 4시 55분에 택시가 CCTV가 설치돼 있던 장소에 도착하고, 4시 58분에 택시기사 이 씨가 내려 뒷좌석 문을 열고 승객 김 씨를 끌어내렸다.
피해자 유족이 제공한 cctv영상 캡처. 택시기사 이 씨가 피해자 김 씨를 폭행하고 있다.
김 씨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김 씨를 한쪽 벽으로 밀어붙였고 그렇게 CCTV 시야에서 사라졌다. 유가족은 이 씨가 현장에 CCTV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CCTV를 피해 김 씨를 벽쪽으로 민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이 씨는 혼자 택시로 돌아갔고 5시에 다시 피해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넘어뜨리는가 하면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후 김 씨가 다시 택시를 타려고 하자 이 씨는 김 씨의 휴대폰과 손으로 김 씨의 머리를 수차례 때렸고, 김 씨의 휴대폰을 던졌다. 이후 김 씨가 다시 택시를 타려고 하자 이 씨는 김 씨의 멱살을 잡고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혼자 택시를 타고 떠났다.
이후 도로 위를 헤매던 김 씨는 달리던 차량 세 대에 잇따라 치여 사망하게 된다. 5시 30분께 노 아무개 씨는 도로에서 운전하다가 김 씨를 치고 바로 신고를 했지만 김 씨를 사고 장소에 방치했다. 노 씨는 경찰 조사에서 “너무 당황해서 옮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조 아무개 씨와 정 아무개 씨가 운전하는 차량이 연이어 김 씨를 또다시 치게 됐고 이후 응급실에 실려 갔다. 구급대원은 신고를 받은 지 2분 만에 사고현장으로 출동했다. 김 씨는 병원으로 옮겨질 때까지도 호흡과 맥박은 있는 상태였지만 혈압이 많이 낮아 위험성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 씨는 사고를 당하고 네 시간 만에 사망했다.
김 씨를 친 두 번째와 세 번째 차주인 조 씨와 정 씨의 경우 김 씨를 친 후 자리를 떠나는 뺑소니를 저질렀다. 경찰은 방범용 CCTV 영상에 찍힌 차량 2만 대를 분석해 조 씨를 검거했고, 정 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뺑소니 사건 수사를 위해 경찰은 현장 인근에 설치된 사설 CCTV 영상을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택시기사 이 씨의 폭행 및 유기가 확인됐다. 이렇게 이틀 만에 피의자 4명이 형사입건됐다.
경찰 조사를 받던 택시기사 이 씨는 승객이었던 김 씨를 왜 폭행하고 내리게 했냐는 질문에 “김 씨가 만취한 상태로 택시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택시비가 없다고 해 화가 나서 폭행했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가 사망한 상태여서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는 범행동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택시기사 이 씨가 김 씨를 폭행, 유기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하고 있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인데 이전에 보강수사를 하고 있다”며 “택시기사의 계약상 의무에는 승객보호 의무가 있는데 승객을 강제 하차시키고 폭행하는 것은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또 사고가 났던 도로는 시속 100km 주행 구간으로 택시가 잡힐 수 없는 곳이다. 주간에도 잘 안다니는 곳인데 야간에 발견될 가능성은 더 낮다. 이런 곳에 유기했다는 것은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을 알고 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 유족은 “이 씨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평가가 없었다”며 “이 씨는 예전에 승객들에게 부당요금을 청구해 회사 방침으로 한 달 동안 근무정지 조치된 적이 있었고 사고가 있었던 날이 근무정지 조치가 끝나고 다시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의 소행을 물어보는 참고인 조사가 진행됐고, 이 씨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이어졌다. 참고인 자격으로 진술했던 택시기사들은 “술에 취한 사람이 기사에게 욕을 하고 요금을 내지 않는 경우에는 지구대나 파출소로 가서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며 “김 씨를 유기했던 곳은 편도 4차선으로 사람이 걸을 수 없을뿐더러 택시가 정차하기도 힘들다. 보통은 승객을 태운 채로 그 도로를 지나가지 목적지가 아닌 데도 사람을 내리게 하고 빈 차로 가는 곳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씨와 김 씨가 타고 있던 택시 내부에 사고 시간에 녹화된 블랙박스 내용이 없어 이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이 씨는 경찰 조사 때 “원래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다니지 않는데 그날 블랙박스가 있었던 것은 교대하는 기사가 미리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들은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을 이 씨가 임의로 삭제했다고 판단해 블랙박스 영상 복원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 씨가 블랙박스 칩 자체를 없앴을 경우에는 복원이 어려울 수 있다.
이 씨의 폭행 이후 김 씨를 친 세 대의 차량 중 어떤 차량이 결정적으로 김 씨의 사망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7~15일이 걸리는데 설 연휴가 끼여 분석이 조금 늦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씨의 유족은 세 번째 차량이 사망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세 번째 사고로 인해 김 씨가 복부를 크게 다쳤는데 사인이 비장 파열이기 때문이다.
어느 차량에 치여서 사망했는지 여부는 처벌 기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고는 뺑소니인데 사망 여부에 따라 처벌 기준이 달라진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에 따라 신고하지 않고 다친 피해자를 유기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사망한 피해자를 유기하거나 유기한 피해자가 사망하면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형에 처해진다. 김 씨의 부친은 “네 명의 가해자 중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방치하거나 가해하지 않았으면 아이는 살아 있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김 씨 부친 “술버릇 없는 아이인데…” <일요신문>은 사망한 김 씨의 부친을 만나 심경을 들어봤다. ―피해자 김 씨는 어떤 아들이었나.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이었다. 대학교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교수와 동료학생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오산시 새 마스코트인인 ‘까산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산시로부터 디자인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캐릭터 디자인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는 또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을 해 직장생활을 한 지 8개월째 되고 있었다. 사고가 있었던 날도 회사 일 때문에 늦게까지 일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장례식장에 온 지인이 이런 착한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알려야 한다며 언론사에 제보했고 늦게나마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피해자 김 씨가 학생 당시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했던 오산시 마스코트 ‘까산이’. “사고가 있었던 날 전화 통화를 했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기 전에 연락을 했는데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근 아들 SNS에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이 다 지워져 있길래 여자친구와 헤어졌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런 것 같았다. 술자리에서도 힘든 마음을 잊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사고가 난 후 기사가 아이 휴대폰을 던져버려서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한테 전화는 오지 않았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병원에 가고 나니 이미 사망해 있었다.” ―택시기사는 아들이 소란을 피우고 택시비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평소 아들이 술버릇이 갖고 있었는지. “아들은 평소에 가족과 술을 마실 때도 성격이 온순해서 술에 취하면 바로 잤다. 이날 같이 있었던 아들의 친구들 역시 아들의 술버릇을 그냥 자는 걸로 알고 있더라. 택시기사는 아들이 요금을 내지 않아서 내리게 했다고 했지만 택시비는 도착지에서 받는다. 사고가 있었던 자리는 3분의 1 거리밖에 가지 않은 곳이었는데 돈을 안냈다고 때리고 버리고 간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또 아들의 몸에서 카드 다섯 개가 나왔는데 다 결제가 가능한 것들이었지만 결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친구들과 1차 술값을 내 친구 한 명이 현금 5만 원을 줬는데 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가져간 게 아닐까 싶고 CCTV에도 그렇게 추정할 만한 장면이 찍혀 있다.” ―사인은 무엇인가. “비장 파열에 의한 복강 내 출혈이 사인으로 나왔다. 세 번째 차량이 아들을 친 것이 사망에 결정적으로 작용됐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 직업이 의사인데 CCTV 영상을 확인해보니 세 번째 차량이 지나가고 나서 아들의 배에 타이어 자국이 남았다. 타이어 자국이 남은 배 부위에 비장이 위치해 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