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 삼킨 세 업체 파헤쳐보니 ‘어! 한 뿌리였네’
지난 연말, 신용카드사와 캐피탈사 등을 대표하는 여신협회는 60억 원대 비리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2010년 개인정보 해외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시작된 포스(POS) 가맹점 단말기 보안 강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직원과 사업진행 업체가 유착해 돈을 빼돌린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여신협회는 POS 단말기 보안강화사업을 위해 업계에서 80억 원의 자금을 모았고 사업자로 큐테크플러스(큐테크)라는 업체를 선정했다. 그런데 전문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 업체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허술한 업무처리 능력을 잇달아 노출했다.
여신금융협회가 잇단 비리의혹에 휘말렸다. 박정훈 기자
금융권에 따르면 큐테크는 당초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방식으로 POS 단말기의 보안을 강화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큐테크의 소프트웨어는 POS 단말기 운영 체제에 맞지 않아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소프트웨어 방식을 포기하고 하드웨어를 바꾸는 방식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하드웨어 방식은 고객 정보를 암호화할 수 있는 칩을 단말기에 장착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문제가 생겼고, 급기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바꾸는 방식으로 한 차례 더 계획이 변경됐다.
문제는 6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업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신협회는 이 기간 동안 무려 62억 원에 달하는 사업대금을 지급해왔다. 게다가 오랜 시간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데도 여신협회는 사업자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방치하다시피했다.
이유는 결국 내부 유착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여신협회 부장급 간부 A 씨는 POS 단말기 보안강화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장으로 일할 당시 큐테크에 사업비를 조기에 지급하고 사후관리를 허술하게 하는 등 유착이 의심되는 행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신협회는 뒤늦게 큐테크를 사기혐의로 고소하고 현재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금융권은 여신협회의 내부통제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아 왔다.
여신협회의 수상쩍은 행보는 새해가 되면서 조금씩 그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여신협회는 2014년 전표 수거를 담당할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정보텍을 사업자로 선정했는데, 큐테크 대표가 당시 선정업체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신협회와 큐테크가 ‘특수관계’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이뿐 아니다. 큐테크는 최근 여신협회가 진행한 각종 사업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2015년 7월에 진행된 1000억 원대의 IC카드 단말기 교체 사업 선정자로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가 선정됐는데,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는 사단법인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큐테크의 자회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신용카드 개인정보유출 사태와 관련해 2014년 3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개인정보 유출 종합방지대책’을 발표했다. 그 중에는 신용카드사의 소멸포인트 1000억 원의 재원으로 영세자영업자 IC카드단말기 전환기금을 조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여신협회는 5월 말 ‘영세가맹점 IC단말기 전환지원사업 입찰공고’를 냈고, 금융결제원, 한국스마트카드,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 3사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업계에서는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가 사업자에 포함된 것에 대해 뒷말이 무성했다. 사업규모가 영세한 데다 사업수행 능력이 검증되지 않아 나머지 2개 사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업체가 어떻게 사업자에 선정될 수 있느냐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실제로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는 당시 자체 신용카드 밴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작은 업체였다. 여신협회는 이를 알면서도 신용카드 밴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조건을 달아 사업체로 선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심사위원으로 소상공인연합회 임원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소상공인연합회는 IC단말기 교체 대상인 영세자영업자들의 단체로, 심사위원 참여는 불공정성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IC카드 단말기 교체사업과 관련해 당시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가 소상공인연합회의 이사회에 참석해 사업설명회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문은 더 커지고 있다. 어떻게 외부업체가 이사회에 참석해 사업설명회까지 개최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또 의혹의 당사자들인 한국정보텍,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 큐테크는 같은 장소에 주소지를 두고 법인등기상 임원도 동일인이 중복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몸’인 이들이 여신협회의 각종 이권사업에 매번 등장해 사업권을 따낸 셈이다.
금감원은 최근 POS사업 비리와 관련해 여신협회의 다른 사업들을 두루 점검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들 업체들은 사업권만 따냈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큐테크가 맡은 POS 단말기 보안강화 사업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유야무야됐고, 급기야 기금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또 큐테크가 개발했다는 단말기는 실제 사용할 수 없는 불량 제품으로 드러났다.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가 사업을 맡은 전표 공동매입 사업도 중단돼 있다.
IC단말기 사업 성과 역시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8년 7월까지 67만 대를 교체한다던 영세가맹점 단말기는 아직 2만 대도 교체되지 않았다.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는 사업자로 선정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이후에야 단말기 교체를 시작했고, 계약금으로 받은 10억 원에 대한 보증보험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융권의 관심은 이제 이들 업체와 여신협회가 어느 선까지 유착돼 있었는지에 쏠리고 있다.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보는 셈이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1억~2억 원짜리도 아니고 최소 수십억에서 100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에 실무자가 전권을 행사했을 리 없지 않겠느냐”면서 “소위 ‘윗선’이 개입했을 정황이 짙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