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역 희비 갈린 두 엠마…스톤 ‘웃고’ 왓슨 ‘울고’
‘별들의 도시’인 LA를 배경으로 하는 <라라랜드>는 배우와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각각의 꿈을 좇아 달리는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사랑에 빠지고, 결국 각자의 꿈을 이뤄나간다. 비록 그 결말은 조금은 슬프지만 말이다.
사실 제작 초반만 해도 아무도 이 영화가 이 정도로 성공을 거둘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처음 다미엔 차젤레 감독(31)이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들을 찾아다녔을 때만 해도 그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렵게 투자 받은 금액이라고 해봤자 100만 달러(약 11억 원)가 전부였다.
그렇게 영화 제작을 포기해야 했던 차젤레 감독의 꿈이 이뤄졌던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였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행운을 놓친 배우들
처음 감독이 여주인공 미아 역에 내정했던 엠마 왓슨은 영화 ‘미녀와 야수’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출연을 고사했다.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 컷.
처음 감독이 내정했던 배우들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헤로인인 엠마 왓슨과 <위플래쉬>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마일즈 텔러였다. 하지만 둘은 이런 저런 이유로 출연을 고사했었다. 왓슨의 경우에는 디즈니랜드의 영화 <미녀야 야수>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텔러는 출연료 협상이 결렬되면서 출연을 포기했었다. 처음 텔러가 제안받은 출연료는 330만 달러(약 38억 원)였지만, 텔러는 이보다 높은 600만 달러(약 69억 원)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왓슨과 관련해서는 최근 또 다른 소문도 불거진 상태. 왓슨이 출연을 고사했던 이유가 스케줄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영화 리허설 장소 등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등 일방적인 제안을 해왔다는 것. 이에 다른 한편으로는 왓슨이 ‘인생작’을 놓친 분풀이를 매니저에게 하고 있다는 소문도 불거진 상태다. 하지만 왓슨 측은 이런 소문을 일절 부인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차젤레 감독이 스톤을 캐스팅한 이유도 밝혀졌다. 2014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카바레>에 출연할 당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스톤의 모습을 눈여겨 봤던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100명이 군무를 펼친 오프닝. 섭씨 43도의 찜통 더위 속에서 완성한 장면이다.
#오프닝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
<라라랜드>는 오프닝 장면부터 압도적이다. 과감하고 색다른 이 장면은 시작부터 <라라랜드>를 마법처럼 만든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꽉 막힌 LA의 고가도로 위에서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 갇힌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다. 이윽고 하나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갑자기 자동차 위로 뛰어 올라 발을 구르거나 회전을 하거나 재주를 넘으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매우 인상 깊은 이 군무 장면에 출연한 무용수들은 모두 100여 명이었다. 철저한 계획과 연습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 장면은 먼저 미니어처 자동차와 포스트잇을 이용한 사전 준비 작업을 거쳤다. 안무가인 맨디 무어의 지도 하에 2015년 처음 리허설을 시작했으며, 그 후 무용수들이 제작사 건물의 주차장에서 틈틈이 안무 동작을 익혔다.
본 촬영은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가장 큰 관건은 섭씨 43도에 육박하는 찜통 더위였다. 얼마나 무더운지 무용수들은 촬영 당일 여벌의 의상을 준비해야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될 경우를 대비해 촬영 중간에 옷을 갈아 입어야 했던 것.
또한 촬영이 진행된 고가도로가 3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던 까닭에 안전의 문제도 있었다. 너무 높은 데다 바람도 강하게 불었던 까닭이다. 이에 미술 총감독인 데이빗 와스코는 “누군가 도로 아래로 떨어질까 무서웠다”라고 털어 놓았다.
또한 크레인을 동원한 고공 촬영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안무 감독이었던 무어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했다. 이에 무어는 자동차 아래에 숨은 상태에서 무용수들에게 안무 지시를 내렸다.
#수영장 파티 장면의 비밀
오프닝에 이어 영화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수영장 파티 장면이다. 미아와 친구들이 어울려서 참석한 이 수영장 파티에서는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 40여 명. 옷을 입은 채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마치 물 속에 뛰어든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이도록 촬영됐으며,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 장면은 1997년 영화 <부기 나이트>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장면이 상공에서 촬영됐지만, 헬리콥터나 드론은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이 장면들은 스태프들이 건물 2층에 올라가서 촬영한 것들이었다.
미아의 아름다운 의상들은 디자이너 메리 조프레즈가 고전 여배우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엠마 스톤의 고전적인 의상
미아의 고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의상은 디자이너인 메리 조프레즈가 맡았다. 언덕에서 탭댄스를 출 때 입었던 노란색의 원피스와 수영장 파티에서 입고 등장하는 파란색 원피스가 대표적이다. 고전적인 느낌의 이 원피스들은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먼, 캐서린 헵번 등의 고전 여배우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의상들이었다.
특히 노란색 원피스는 원래 리허설용으로 제작된 것이었지만 스톤이 이 원피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결국 본 촬영 때도 입게 됐다. 하늘거리는 폴레에스테르 원단을 사용했으며, 초록색 꽃무늬는 손으로 직접 그려 넣은 것이었다.
이밖에도 미아의 의상들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이 많았다. 가령 미아가 세바스찬과 공식적인 첫 번째 데이트를 할 때 입었던 에메랄드빛의 초록색 원피스는 1954년 영화 <스타 탄생> 속 주디 갈렌드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었다. 또한 미아가 카페에서 일할 때 입었던 발목 길이의 검정색 바지는 1957년 작인 <퍼니 페이스>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고 등장했던 바지를 모방한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영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검정색 원피스는 캐나다 디자이너인 제이슨 우의 의상이었으며, 가격은 1900달러(약 220만 원)였다. 그렇다고 미아가 꼭 고가 의상만 입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미아는 스파 브랜드인 H&M의 6달러(약 7000원) 짜리 상의를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반면 고슬링은 이보다 훨씬 적은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그가 영화 속에서 입고 나온 셔츠는 모두 다섯 벌에 불과했다. 또한 바지는 두 벌, 코트는 세 벌이 전부였다. 단, 모든 의상은 춤출 때 편하도록 맞춤 제작된 것이었다. 가령 바지는 신축성이 좋은 울 소재로 만들었으며, 코트는 어깨 부분이 다른 코트보다 더 여유있게 제작됐다.
#라이언 고슬링의 재즈 피아노 실력
고슬링이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본 관객들은 아마 대부분 그저 흉내만 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흉내를 낸다고 해도 실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슬링은 배우이지 피아노 연주자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고슬링은 영화 속에서 진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것도 능숙한 솜씨로.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 고슬링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 3개월 동안 집중 레슨을 받았다. 매일 두 시간씩 일주일에 6일을 연습했으며, 그 결과 준프로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게 됐다. 사정이 이러니 미리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피아노 연주 대역들 역시 모두 필요가 없어졌었다.
물론 고슬링이 피아노를 완전히 초보 수준에서 배운 것은 아니었다. 이는 이미 어느 정도 연주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 2009년, 음악가인 친구와 함께 음반을 녹음한 경험이 있었던 것. 당시 고슬링은 ‘데드맨스 본즈’라는 밴드에서 피아노를 담당했으며, 당시 음반 녹음을 위해서 피아노 외에도 기타, 베이스 등을 조금씩 배웠었다.
단, 음향효과적인 측면에서 영화 속의 피아노 음악은 재즈 연주자인 랜디 커버가 사전에 녹음한 곡이 사용됐다. 고슬링은 촬영장에서 이 음악 위에 얹어서 연주를 하는 식으로 촬영에 임했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가운데)은 하버드대 재학 시절 처음 ‘라라랜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라이언 고슬링은 대역을 쓰지 않고 실제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천재 감독과 저예산
‘할리우드의 천재 감독’이라고 불리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원래 꿈은 재즈 드러머였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에 한계를 느끼고는 방향을 선회해 하버드대 영화연출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처음 <라라랜드>의 아이디어를 구상한 것도 하버드대 재학 시절이었다. 하버드대 동창이자 <라라랜드>의 음악을 작곡한 저스틴 허위츠와 함께 작품을 구상했던 차젤레 감독은 곧 할리우드로 건너가 제작자를 물색했다. 하지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손을 내민다 해도 최대 100만 달러가 고작이었으며, 제작자들은 시나리오의 많은 부분을 수정하길 요구했다. 가령 주인공인 세바스찬이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록 가수여야 한다는 등과 같은 식이었다.
이에 차젤레 감독은 결국 제작을 포기했다. <라라랜드>가 다시 부활한 것은 지난 2014년이었다.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가 성공을 거두면서 찬사를 받자 제작자들이 차젤레 감독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던 것. 결국 투자 금액도 3000만 달러(약 350억 원)로 상향 조정됐으며, 이는 2004년작인 <노트북>,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투자 금액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덕분에 촬영 장소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제약이 줄어들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으로 꼽히는 그리피스 천문대에서의 댄스 장면 역시 이 덕분에 탄생됐다. 천문대 건물을 통째로 빌리는 데만 하루에 1만 3000달러(약 1400만 원)가 소요됐으며, 천문대 안에 호화로운 세트를 설치하는 데만 수억 원이 들었다.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한 탭탠스 장면을 담기 위해 스태프들은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석양과의 싸움
보랏빛 석양을 배경으로 할리우드 언덕에서 촬영된 커플의 아름다운 탭댄스 장면은 <라라랜드>의 상징과도 같다. 커플 뒤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과 어슴푸레한 하늘빛은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배경을 담기 위해서 스태프들은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매일 저녁 하늘이 아름다운 노을로 물들어지는 시간은 단 30분. 이 짧은 시간 안에 촬영을 원테이크(끊지 않고 한 번에 이어서 촬영)로 마쳐야 했기 때문에 이는 실로 ‘석양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스톤과 고슬링은 이틀에 걸쳐 5회씩 원테이크로 촬영에 임했다. 차젤레 감독은 “6분 동안의 이 탭댄스 장면은 원테이크 방식으로 촬영했다. 한 번 촬영이 끝나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서 땀을 닦고 다시 촬영을 시작하는 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엠마 스톤의 노래 라이브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에서 부른 곡인 ‘오디션’은 100% 라이브였다. 다른 노래들은 동작이 크기 때문에 녹음실에서 따로 녹음을 한 후 립싱크를 해야 했지만, 이 곡만큼은 라이브로 카메라 앞에서 싱글 테이크로 촬영됐다. 작곡가인 저스틴 허위츠가 옆방에서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있었고, 스톤은 눈에 띄지 않게 이어피스를 착용한 채 노래를 불렀다.
#1950년대 스타일의 촬영 기법
확실하게 복고적인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서 차젤레 감독은 시네마스코프 기법을 택했다. 시네마스코프란 1950~1967년 유행했던 영화 상영 비율로, 2.35:1 혹은 2.55:1 비율의 초대형 와이드 스크린 방식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TV 브라운관처럼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율이었지만 영화사들은 TV와의 경쟁을 위해 와이드 스크린 방식을 도입했었다.
50년대 고전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던 이 기법은 배우들이 마치 연극 무대 위에서 카메라를 보고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좌우로 화면이 넓기 때문에 보다 시원한 시야를 제공한다.
고전 영화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은 <라라랜드>에 대해 차젤레 감독은 “시네마스코프에 담아 보낸 LA를 향한 연애편지”라고 묘사한 바 있다.
또한 <라라랜드>는 100% 컬러 영화로 촬영되긴 했지만 몇몇 색조를 디지털로 강조해 밝게 보이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 역시 흑백 영화에 색을 덧칠해 컬러 영화로 만들었던 1950년대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었다.
#2개월 동안의 안무 연습
스톤과 고슬링은 각자 따로 2개월 동안 안무 연습을 했다. 스톤의 경우에는 어릴 때 발레를 배웠기 때문에 탭댄스와 사교댄스를 배우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 고슬링은 춤을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
이런 까닭에 스톤의 춤 동작은 자연스러웠지만, 고슬링은 감독에게 “긴팔다리 원숭이 같다”며 스스로의 실력에 만족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고슬링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내 뜻대로 내 몸을 움직이는 게 정말 힘들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두 배우의 궁합은 최고였던 모양. 안무 감독이었던 맨디 무어는 “둘의 케미는 시작부터 폭발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스톤과 고슬링은 2011년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서 이미 한 차례 남녀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다.
#천문대의 댄스 장면
미아와 세바스찬은 첫 번째 공식 데이트를 하던 날 밤 그리피스 천문대를 찾아 밤하늘을 배경으로 왈츠를 춘다. 이 장면은 마치 꿈나라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힌다. 하늘 위에서 춤을 추지만 원래 이 장면은 처음에는 수중 촬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중 촬영을 위해 스톤과 고슬링은 옷 속에 숨긴 하네스로 몸을 고정했으며, 하네스에 몸을 의지한 채 몸을 뒤로 젖히거나 공중 돌기를 하면서 춤을 췄다. 이 장면은 그린 스크린 앞에서 촬영됐으며, 나중에 밤하늘, 구름, 별 등은 따로 추가됐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또 다른 동화 같은 장면들의 소품들은 모두 마분지를 일일이 잘라 만든 것들이었다. 가령 오렌지 과수원이나 놀이공원 등의 소품들은 미술 담당 스태프들이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 넣어 완성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