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지병 악화설 돌자 현대차 “사실무근”…‘이건희 사망설’ 유포자 고발당해
최순실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
대기업 집단도 마찬가지다. 기업 총수 혹은 최고경영자의 건강 정보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주가 등 시장 흐름에 영향을 주고, 후계구도 같은 다양한 논쟁거리를 유발한다. 때문에 국내 재벌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 기업은 총수 혹은 최고경영자의 건강 상태를 비밀에 부쳐왔다. 초국적기업 애플까지도 생전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을 정도다. 단, 잡스는 본인의 건강 악화를 인정하고 스스로 경영에서 손을 뗐다.
국내 대기업 중 오너의 건강 문제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곳은 롯데다. 올해 나이 만 95세로 고령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성년후견 개시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의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판단과 함께 신 총괄회장의 법정대리인으로 사단법인 선을 지정했다. 반면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아버지 정신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대변인인 홍순언 에그피알 대표는 “고령인 탓에 기억력이 일부 떨어진 것은 있지만 의사소통 및 거동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조금씩 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 측은 “신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언급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재계에선 몇 해 전부터 신 총괄회장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임원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방금 들었던 내용을 다시 묻는다든지 오래전 마무리된 그룹 현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묻는 일이 왕왕 있었다는 것. 그러나 롯데는 당시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 임직원으로서 모시는 오너의 건강 상태 언급은 분명 금기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로 투병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건강 상태도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CJ 측은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경영 일선에 복귀할 상태는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폐암 수술을 받은 손경식 CJ 회장도 한때 ‘건강 악화설’에 휘말렸지만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최순실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우려를 잠재웠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일요신문 DB.
그러나 현대차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청문회 당일에만 심리적인 압박감이 있어 이른 귀가를 한 것”이라며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시무식 불참 이유는 각 계열사별 자율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현대차 측은 정 회장의 출근 여부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이를 근거로 업계 일각에선 “정 회장의 지병이 더 악화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지만 재계 다른 관계자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건강이상설을 제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것”이라며 “청문회에서 온 국민이 지켜본 그대로 아니냐. 또 그날 ‘건강이 안 좋다’고 일찍 귀가했는데 시무식에 ‘괜찮다’고 나오는 것도 모양이 좀 이상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조양호 한진 회장 역시 청문회 이후 외부 접촉을 자제해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 2월 3일 그룹 임원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논란을 불식시켰다. 한진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딸의 구속,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직 사퇴, 한진해운 문제 등이 겹치면서 조 회장이 순간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이 나빠졌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현재는 괜찮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때때로 기업 총수들의 건강 정보는 재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과장 또는 왜곡된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한 대기업 총수가 검찰 수사를 우려해 각종 진단서를 발급받았다’는 소문은 당시 서먹한 관계에 있던 또 다른 대기업이 퍼뜨린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한 중견건설사는 ‘회장이 치매를 앓고 있는데 경영에 나선 아들이 상속 문제 등을 우려해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소문에 연루된 기업들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뛴다. 오너의 건강 상태가 그만큼 민감한 이슈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에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휠체어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지만 삼성 측은 공식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요신문 DB.
삼성은 지난해 6월 소위 ‘이건희 사망설’을 유포한 네티즌들을 형사고발했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삼성 회장은 3년 가까이 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몇몇 언론에선 ‘이 회장이 휠체어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지만 삼성 측은 공식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일각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해 이 회장이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하지만 삼성 측은 “그야말로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 회장의 건강은 호전되지도 악화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건강 상태는 삼성전자 주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건희 사망설’에 삼성전자 주가가 출렁인 것도 한 예다. 이는 기업 총수의 건강을 단순한 ‘사적 영역’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과 제도로 임기가 제한된 대통령이나 최고경영자와 달리 사실상 종신 임기인 대기업 오너 총수는 ‘권력’ 교체가 거의 없다. 만약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오너 총수가 있다면 경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지만 기업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각 오너 총수의 정확한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재계 관계자들은 “우리가 오너 가족도 아닌데 건강 상태를 직접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