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기 ‘연발’ 돌 들어내기 ‘깜빡’…세 명이 릴레이로 한 판 ‘꿀잼’
‘추억은 나눌수록 돌아온다!’라는 모토 아래 벌써 10회째를 맞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애틋해지는 ‘청춘’을 공유한 친구. 이들과 바둑판으로 하나가 되는 대회. 고교동문전은 그렇게 10년간 추억을 쌓아왔다.
특히 10회째를 맞은 올해는 각종 해프닝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가 끊이지 않았는데 명문 경기고가 정상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고교바둑 최강 중 하나로 꼽히면서도 매번 불운에 울어야 했던 경기고의 우승 스토리와 함께 고교동문전을 쫓아가봤다.
고교동문전 결승 최종국 최후의 대결. 경기고 김세현 선수(오른쪽)가 서울고 김형균의 추격을 따돌리고 경기고 우승을 결정지었다.
‘고교동문전’은 의류 수출 전문업체 ‘한세실업’이 후원하는 대회다. ‘YES24’와 ‘한세실업’은 같은 계열의 회사다. 비슷한 것으로 ‘대학동문전’도 있다. 한세실업의 김동녕 회장(72)은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했고 경기고 기우회 회장을 역임한 바도 있다. 후배들이 바둑대회를 만들어줄 것을 건의하자 고교동문전과 대학동문전으로 화답했다.
최근 각 고교와 대학의 재학생, 졸업생들의 바둑대회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동문 바둑대회의 열풍이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장안의 화제를 모으는 대회다. 아닌게 아니라 각 고등학교 동창회 총무들이 고교동문전에 출전할 선수를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YES24.COM배 고교동문전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만 30세 이상이어야만 한다. 프로기사 출신이거나 연구생을 생활을 했다면 만 40세를 넘어야 한다. 10회 대회에는 고교동문 기우회 5인 이상으로 구성된 팀으로 선수 나이는 1985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였다.
고교동문전의 가장 큰 특징은 릴레이 형식으로 대국을 펼친다는 점. 릴레이 대국은 세 명의 선수가 초반, 중반, 종반을 나누어 맡아 한 판의 대국을 벌이는 방식이다. 초반전 15분, 중반전 15분, 종반전 20분의 타임아웃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반 바둑 룰과는 사뭇 다른데 이것이 오히려 양념이 되어 구경꾼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그뿐이 아니다. 일반 기전은 돌을 무르거나, 제한시간을 넘겨 착점할 경우 가차 없이 실격 처리를 하지만, 고교동문전은 축구처럼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도입해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실제 이번 대회에서는 돌을 들어내지 않은 것(4개) 1회, 무르기 3회가 등장했지만 모두 옐로카드를 받는 선에서 제재가 끝났다. 단 옐로카드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니고 벌점 5집은 물어야 한다. 또 팀당 25분씩 주어지는 제한시간도 25분을 모두 소비한 후 1분마다 5집을 공제해 최대 2회(10집)까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어차피 아마추어 바둑이 프로처럼 정확할 순 없으므로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해프닝은 쉼 없이 발생했다. 돌을 들어내야 함에도 가만히 있다가 벌점을 당하는가 하면 무르기 외에도 시간에 쫓겨 막판 역전극이 수없이 발생했다.
“아무래도 스튜디오 대국이 낯선 아마추어들이기 때문에 실수가 많이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서울 대신고의 H 선수다. 원래 유쾌하고 실력도 센 분인데 방송대국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실수가 자주 나온다. 예전에 쌍립을 끊겨 유명해졌는데 올해도 돌을 왔다 갔다 하다가 무르기 벌점 5집을 먹었고, 그 이후에는 아마추어 3~5급이라면 쉽게 볼 수 있는 회돌이축을 보지 못해 대망,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한철균 8단)
10년만에 숙원을 이룬 경기고 팀이 우승이 확정된 순간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세 번의 준우승을 딛고 숙원을 이룬 경기고였다. 경기고는 매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면서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팀. 이번에도 천신만고 끝에 결승에 올랐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전기 우승팀 서울고와 맞붙은 경기고는 피차 최강 진용으로 맞선 1경기를 내주면서 위기에 몰린다. 출전선수 5명이 골고루 나올 수밖에 없는 고교동문전의 룰로 인해 2진들이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2국. 서울과 경기는 서로 이길 찬스를 수없이 넘기며 관전객의 손에 땀을 쥐게 했고 결국 경기가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거머쥐면서 승부는 최종 3국으로 넘어갔다.
3국 역시 팽팽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여기서 경기고 신병식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경기고 에이스의 출전 조합은 원래 유종수-김세현-김원태의 라인업이 보통이었지만 이것을 유종수-김원태-김세현으로 신 감독이 바꿔버린 것. 젊은 피 김세현을 뒤에 두어 종반에 대비하겠다는 전략이었는데 이것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서울고 에이스 김형균을 상대한 김세현은 어려웠던 중앙을 잘 정리하며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 끝내기에서 시간 벌점 5점을 당하기도 했지만 김형균의 추격을 끝까지 막아내고 경기고의 승리를 지켜냈다.
고교동문전의 해설자 한철균 8단은 “바둑신이 도와준 결과라고밖에는 경기고의 우승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결승전도 어려웠지만 앞서 열렸던 모든 대국에서 경기고에게 행운이 많이 따랐는데 그것이 끝까지 이어졌다. 특히 마지막 클로저로 김세현 아마7단을 투입한 것이 제대로 들어맞았다”고 경기고 우승을 분석했다.
한편 바둑TV 고교동문전 윤효상 PD는 “고교동문전은 프로기전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다. 앞으로 운영방식과 규정을 더 다듬어 팬들의 호응에 부응하겠다”고 밝혔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