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에 따른 ‘립 서비스’는 이제 그만
수소문해 찾은 최 전 장관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아내 명의의 아파트에 거주했다. 집에 찾아가자 한 이웃은 “12월부터 태국으로 여행가서 2월 3일에 돌아온다”고 일렀다. 2월 4일에 최 전 장관의 집을 다시 방문했다. 최 전 장관은 나와 보지 않고 사위를 거쳐 “여독으로 자야 한다. 언론과 만나지 않겠다”고 전해 왔다. 집 앞에서 2시간을 버티고 사위에게 부탁해 들은 대답은 “그런 일 없었다”는 간단한 한마디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이제껏 입을 연 적이 없었다. 전두환 옛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1988년 ‘5공 청문회’ 때 전두환 옛 대통령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뤄진 ‘자위권 발동‘이었다. 지시 내린 적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당연히 발포 역시 명령 내린 적 없다고 부인해 왔다.
36년 만에 헬기 사격 지시자를 증언한 한 군인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드디어 울려 퍼졌다. 증언자는 헬기를 몰아 비행한 사람 이름과 소속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자기 명의 집에 남이 살도록 놔두고 세를 주지도 않은 채 부인 명의의 집에 살며 태국으로 한달 넘게 여행을 다녀온 헬기 사격 지시 장본인도 찾았다. 목격자, 지시자, 실행자가 모두 나왔다. 이제 서로의 만남만 주선하면 된다.
하지만 발포 명령자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진실이 드러나면 호남 표심 얻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사라질 수도 있는 탓이다. 오죽하면 “여당이 헤맬 때 늘 부는 바람이 북풍이라면 야당이 표심 얻을 때 일으키는 바람이 5·18 광주발 남풍”이란 말이 생겼겠나. 이제까지 정치권이 보여준 전례를 미뤄보면 사실 정치권은 전국민적 기쁨과 아픔에 별 관심이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편승해서 지지율만 올리면 그만이었다.
난 가끔 국회의원실의 전화를 받는다. 내가 쓴 고발성 기사를 보고 “기사에 나온 사람을 혹시 만나볼 수 있냐”고 물어온다. 제보자를 데리고 국회에 가면 극진히 반겨주며 민원을 귀담아 들어준다. 문재인 옛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옛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지난달 23일 전일빌딩 헬기 사격 문제가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음 정부는 광주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입맞춰 말했다. 아직까지 날 찾는 둘의 전화는 없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