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홈페이지 시안’ 등 중요 사안 최 씨가 컨펌…안종범 수석도 회의 참여
지난해 4월 20일에는 재단 직원이 최순실 씨에게 재단 홈페이지 시안을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현재 재단 홈페이지 디자인은 최종 결정했던 시안에서 몇 차례 더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 최순실은 국정농단 사태의 시발점이 된 K스포츠재단과의 관련성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청문회, 특검 수사 등을 통해 최 씨가 K스포츠재단에 깊숙이 관련돼 있음을 짐작케 하는 물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K스포즈재단 직원들의 내부 이메일에서도 최 씨가 재단 운영 과정에 적극 개입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메일을 제공한 전직 재단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최 씨가 재단과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볼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당시 (최 씨 승인 없이)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최 씨 측근이) ‘회장님(최순실)이 이거 하라고 하십니다’ 하면 그때야 일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메일을 살펴보면 직원들은 재단 내에서 아무런 직책도 맡고 있지 않았던 최 씨를 ‘회장님’이라고 지칭하며 깍듯하게 예우했다. 직원들은 재단 중요 자료들을 최 씨에게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직원들이 재단 내 직책이 없던 최 씨를 왜 회장님이라고 불렀는지 그 배경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입사할 때 최 씨가 면접을 봤고, 최 씨를 통해 모든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회장님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이메일에 따르면 재단 직원들은 언제나 최 씨에게 보고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한 직원이 보낸 이메일에는 최 씨가 받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재단 사무총장은 참조자였다. 통상 직급이 가장 높은 사람을 받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그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을 참조자로 한다. 당시 재단 이사장은 비상임직이라 사실상 사무총장이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 재단 직원들은 그런 사무총장보다 최 씨가 재단 내에서 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해 4월 20일에는 재단 직원이 최 씨에게 재단 홈페이지 시안을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재단은 지난해 1월 18일 설립됐는데 당시 뒤늦게 홈페이지 구축 작업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이 재단 직원은 이메일을 통해 “회장님, 재단 홈페이지 시안 보내 드립니다. 컨펌 주시면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재단 홈페이지 디자인을 최 씨가 최종적으로 결정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재단 홈페이지 디자인 시안은 총 4가지였는데 최 씨가 이 중 어떤 디자인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재단 홈페이지 디자인은 최 씨가 최종 결정했던 시안에서 몇 차례 더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재단 내부 회의록을 보면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단 회의에 당연한 듯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회의록에는 재단 직원들이 포스코 측과의 미팅 결과를 안 전 수석에게 보고한 내용 등이 담겨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재단 인사는 “포스코 사장과 미팅에서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와 체육은 관심 밖이라는 듯한 태도를 느꼈고, 배드민턴단 창단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본인의 관심사인 바둑을 주제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말을 듣고 안 전 수석은 “포스코 회장에게 얘기한 내용이 사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즉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특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포스코는 최 씨로부터 46억 원이 드는 배드민턴팀 창단을 요구받았으나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 대신 16억 원 규모의 펜싱팀을 창단하려 했지만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며 계획이 취소됐다.
또 회의록 말미에는 이중근 부영 회장이 “최선을 다해서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현재 저희가 다소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하는 듯한 발언도 적혀있었다. 이 회의록의 내용은 이미 한 차례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회의록이 조작됐거나 누군가 임의로 작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부영 측은 회의록에 나타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재단 관계자들은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 이란 순방 당시 태권도 공연단 동영상 등을 이메일로 전달하기도 했다.
전직 재단 관계자는 “재단을 나오면서 이메일을 모두 지웠다. 남아있는 몇 건을 발견해 <일요신문> 측에 제공하게 되었다”면서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이메일을 복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계정이라 복구가 힘들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 씨가 수사를 대비해 해외 이메일 계정을 쓰게 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쓰던 계정”이라며 “국내 이메일 계정을 썼다면 내용을 복구해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됐을 텐데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