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장 선임 과정 누군가 최순실에 인사청탁 의혹…이광구 “난 절대 아니다”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사. 박정훈 기자.
특검이 확보한 자료에는 ‘우병우 민정수석 청탁용 인사파일’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경찰청장·우리은행장·KT&G 사장 후보 등 10여 명의 인사파일과 함께 ‘민정수석실로 보내라’는 최 씨의 자필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에 따르면 이 ‘우병우 파일’은 지난해 7월께 작성됐으며, 우리은행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력서에는 ‘검증 중’이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해당 자료는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특검에 제출했다고 알려졌는데, 최 씨가 자신의 가방에 이 자료를 넣고 다녔고, 장 씨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직원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센터 직원은 이달 초 사진이 담긴 외장하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은 이 자료를 근거로 고위직 인선 과정에서 최 씨가 추천한 후보가 민정수석실에 전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포스트잇 필체로 볼 때 일부는 최 씨의 친필이다”며 “실제로 우 전 수석이 인사에 반영했는지 확인 중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영화 성공에 이어 이광구 행장이 무난히 연임하면서 축제 분위기였던 우리은행은 이 일로 일순간에 불난 호떡집이 됐다. 우리은행은 월요일인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인사청탁 파일이 작성됐다는 지난해 7월은 행장 임기가 6개월 이상 남아 있는 시점이었다”면서 “(차기 행장을 노리던) 일부 내부 인사들이 비선 라인을 통해 인사청탁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러한 인사청탁 시도와는 무관하게 현직 은행장이 민간 주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민선 1기 행장으로 선임됐다”고 주장했다. 포스트잇에 등장하는 우리은행장은 현직 이 행장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행장은 2014년 취임 때 이미 인사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지난해 민정수석실에 또 다시 이력서를 제출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도 함께 내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명 자료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자꾸 (포스트잇에 등장하는 우리은행장이) 이 행장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 (자료를) 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민영화가 되기 전에는 예금보험공사의 지분이 51%로 국책은행처럼 운영됐다. 이 때문에 차기 은행장을 선출하는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올린 후보자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증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예보 지분 29.7%를 7개 과점주주들에게 4~8%씩 매각해 민영화에 성공하면서 은행장 선출에 정부의 검증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은행 다른 관계자는 “인사 명단에 있다는 세 사람 중 특검에서 이철성 경찰청장 이름만 공개한 것을 보면 우리은행은 현 CEO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광구 행장 본인도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강하게 반박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민영화가 된 이후 지난 1월 은행장을 선임할 때는 처음으로 정부 검증 절차 없이 인사가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사실 우리은행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그동안 한 발짝 비켜나 있었다. 덕분에 우리은행은 연루 은행들이 진땀을 빼고 있을 때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 행장은 지난 1월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후보자의 자질 논란 등과 같은 큰 장애물을 만나지 않고 민영화 성공의 공을 인정받아 무난히 연임됐다.
지난 1월 민영화 이후 연임에 성공한 이광구 우리은행장. 연합뉴스
이처럼 우리은행과 이광구 행장이 최순실 인사 개입설을 강력 부인하자 금융권의 관심은 최순실 씨와 연결돼 우 전 수석에게 청탁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권 일각에서는 A 씨가 청탁의 당사자라는 소문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A 씨는 이번 민선 우리은행장 공모 때 유력한 후보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지만 정작 은행장에 지원하지 않아 궁금증을 낳았던 인물이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A 씨는 은행장 공모 이전에도 최순실 씨 주변 핵심 인물과 가깝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다”면서도 “은행장 공모에 지원하면 강력한 다크호스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응모를 하지 않아 의아했는데 아마 인사 청탁을 시도했다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청탁이 무산된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A 씨는 이런 의혹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최순실 씨를 전혀 모르며 포스트잇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해 특검은 “명단만 있고 (로비) 정황은 없다”며 포스트잇에 등장하는 인물의 실명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이광구 행장 연임 확정 이후 금융지주 전환 등에 힘을 쏟으려던 우리은행은 이번 사안이 조속히 가라앉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광구 행장이 당사자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만큼 상황이 길어지면 은행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은행 또 다른 한 관계자는 “근거 없는 소문이 장기간 계속 확산되면 자칫 영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이번 의혹이 빨리 해소돼 당면한 과제들에 은행의 힘을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