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만 타면 매진 행렬…회원 몰래 기업과 손잡은 커뮤니티 수두룩
상업화에 있어 철저한 청정구역을 표방했던 다음 카페 ‘여성시대’가 상업화 논란에 휩싸였다. 20대 이상 여성 회원들이 모인 거대 커뮤니티인 여성시대는 2016년 12월 기준으로 회원 수 68만 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수많은 회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꾸준히 ‘다음 우수 카페’로 지정되기도 한 이 커뮤니티는 단순한 홍보 게시물을 올리는 것도 강제 탈퇴 사유가 될 정도로 홍보나 상업화에 민감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지난 2013년에도 구 운영진이 상업화를 시도했다가 회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기에 이번 상업화에 회원들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21일 대대적인 상업화 전환 예고 이후 메인 화면에 광고 배너를 걸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여성시대’. 커뮤니티 메인 화면 캡처
1차 상업화 이후 교체됐던 운영진은 4년 동안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다가 지난 2월 21일 갑작스레 “카페를 개편하겠다”며 몇몇 기업의 이벤트 홍보 게시판을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상업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크게 반발한 회원들은 여성시대를 떠나 새로운 파생 카페를 개설하고 운영진들을 규탄하는 단체 행동에 나섰다. 여성시대 상업화를 반대하는 회원들이 만든 파생 카페에는 현재 19만 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 파생 카페마저도 “홍보업체 직원이 관리하는 카페”라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1명의 운영자가 회원 19만 명의 관리를 모두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생 카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측은 “상식적으로 회원 수가 1000명 남짓인 소규모 커뮤니티도 운영진들이 상주하면서 관리하기 어려운 판에 십수만 명의 회원을 운영자 1명이 관리하겠다고 자신하는 것은 믿기 어렵다”라며 “아마 홍보업체가 아이디 1개를 공용으로 사용하면서 카페를 운영하며 이 파생 카페 역시 천천히 상업화를 하려는 목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커뮤니티 내에서 이 주장 역시 상당한 신빙성을 토대로 지지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 홍보대행업체나 기업들은 수백~수천 명 상당의 회원 수만 보유하고 있을 뿐 활동이 저조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싼 가격에 매매해서 홍보용 웹사이트로 운영해 왔다. 회원들은 전혀 활동하지 않고 운영자만 홍보 게시물을 올리며 포털사이트 검색에 이름을 올리는 데에 그치는 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매매를 하더라도 회원 수와 활동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홍보 역시 커뮤니티 내에서 이뤄지도록 관리하는 것.
정상적인 매매를 위해서는 원 운영진들로부터 운영권을 양도받아야 한다. A라는 운영자가 B라는 홍보업체에게 운영권을 양도하면서 운영자가 B로 바뀌고 이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원들은 업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체가 아예 운영진의 아이디(계정) 자체를 구입해서 운영진이 바뀌지 않은 척 은밀하게 운영하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이를 통해 가랑비에 옷 젖듯이 홍보 글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천천히 상업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개인정보 거래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음이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직접 매매 금지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아이디를 사고판다는 증거 없이 정황만을 가지고 제재를 가할 수 없기 때문에 운영진 개인정보가 포함된 커뮤니티 매매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에게 있어 가장 큰 ‘노다지’는 단연 여초 커뮤니티다. 홍보 효과가 큰 성형외과, 다이어트 식품, 화장품 등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생활 정보를 가장한 홍보를 통해서도 단시간에 큰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초 커뮤니티는 노골적인 업체 홍보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후기’나 ‘정보 공유’를 통한 간접적인 홍보에는 관대하다. 업체들은 이 맹점을 노려서 커뮤니티 내에 심어둔 회원을 이용, 자연스러운 후기나 정보 공유 글을 올린 뒤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기도 했다. 커뮤니티 내에서 유행하는 정보 글에 민감한 회원들이 후기 글만 보고 너도 나도 구매하기 때문이다.
연령대가 어린 회원들이 다수였던 ‘쭉빵카페’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업화가 이뤄졌다. 카페 메인 화면 캡처
이번에 상업화로 문제가 된 여성시대는 회원 수만으로 놓고 본다면 10~20대 여성 대상 커뮤니티인 ‘쭉빵 카페’(2017년 2월 기준 160만 명)에 밀리지만, 상업화 이전부터 단단한 결집력을 통한 집단행동과 높은 구매력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여성시대에서 한 번 입소문을 탄 제품들은 ‘대란’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재고가 동나는 것도 눈 깜빡할 새였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이 커뮤니티에서 한 중소기업의 치즈스틱이 맛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글을 본 회원들이 전부 구입하는 바람에 그날 하루 동안 주문 건수만 약 4000여 건으로 집계됐다. 판매된 치즈스틱의 양이 2t이 넘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이처럼 회원들의 집단 구매력이 높다보니 외부에서 커뮤니티 매매에 대한 요구가 들어오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여기에 지난해 연말부터 SNS를 통해 돌았던 찌라시가 공개되면서 여성시대의 매매와 상업화에 기업이 관여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찌라시를 통해 돌았던 내용은 “화장품 사업가가 모 여성카페를 15억 원에 매매했는데, 매매 사실을 회원들이 알면 카페가 와해될 것을 우려해 주인장(운영자)이 맡아서 운영하고 소유는 사업가가 갖는 것으로 계약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커뮤니티 상업화를 회원들에게 알리고 진행할 것인지, 은밀하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었다는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다. 거금을 주고 매매했음에도 공개적으로 홍보 글이나 광고를 할 수 없어 재미를 보지 못한 사업가가 직접 상업화를 진행한 것이 회원들 사이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여성시대 상업화 사태의 전말이다.
아직까지 증거가 없는 풍문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커뮤니티 내에서는 갑작스러운 상업화 전환에 비해 마치 이전부터 계획한 것처럼 체계적으로 진행 중인 커뮤니티 내 기업 홍보 이벤트 등에 비춰 “이미 이전에 기업 측에 여성시대 운영권이 넘어간 것은 맞고 적절한 시기를 보다가 공개적으로 상업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 상업화를 거부한 회원들이 대거 옮겨간 파생 카페 역시도 운영진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지속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 커뮤니티 내 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파생 카페마저도 상업화될 것을 우려한 회원들이 또 다른 파생 카페를 만들면서 여성시대는 현재 3개 이상의 파생 카페들로 쪼개져 운영되고 있다.
회원 수 20만 명 이상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 부운영자를 맡았던 한 30대 여성은 이번 여성시대 상업화 사태에 대해 “당연한 수순이 늦어졌을 뿐”이라고 평했다. 이 운영자는 2008년 처음 인터넷 카페 매매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던 ‘네이버 카페 CM동 매매 사건’을 언급하며 “운영진들이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돈도 벌지 못하는 대형 커뮤니티를 생업까지 미루고 운영해야 할 메리트가 있겠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소하게 몇 백 명 정도가 아니라 몇 십만 명이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대기업 수준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정상적으로 상업화가 진행된다면 광고 배너 하나를 거는데 몇 천만 원씩도 받아낼 수 있는 게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라며 “아마 여성시대나 쭉빵처럼 대놓고 상업화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이미 알음알음 기업들과 손을 잡은 커뮤니티들은 많다. 빠르든 늦든 커뮤니티의 상업화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