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막아 출산율 높이자”…80조 쏟아붓고도 길 못 찾고 ‘맴맴’
지난 1월 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임신중단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성단체 회원들이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다양한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들은 저출산의 원인을 취업난과 집값 폭등 등으로 손꼽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떨어진 듯한 출산 정책들이 나오고 있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14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80조 원을 투입했음에도 초저출산 시대를 야기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행자부는 결혼·임신·출산 관련 통계 및 지원서비스 정보를 모은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이름의 웹페이지를 공개했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243개의 전국 시군 지자체의 출산통계와 출산정책 등을 국민들이 쉽게 찾아 이용하게끔 하기 위한 서비스로 만들어졌다. 출산지도 웹페이지에 접속하면 전국 243개 지자체의 가임기여성인구수와 모(母)의 평균 출산연령을 비롯해 결혼·임신·출산 통계치의 최근 10년간 변화와 흐름을 통계와 그래프로 조회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생긴 당일 바로 없어졌다. 조회할 수 있는 지표 중 지자체별 가임기 여성이 얼마나 거주하는지를 볼 수 있는 ‘가임기 여성 수’ 항목이 문제가 됐던 것. “여성을 출산 도구로 여긴 것“ ”출산의 책이미을 부부가 아닌 여성에게 다 떠넘기고 있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지며면서 이날 오후 급하게 웹페이지를 닫았다.
하루 만에 문을 닫은 출산지도는 졸속행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예산이 책정되거나 미리 계획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에 따르면 출산지도는 지난해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위에서 보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또 지난해 8월 ‘출산율 회복을 위한 보완대책’을 위한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렸고 이후 행자부, 복지부 등 정부부처에서 TF를 꾸려 출산율 정책을 마련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행자부에서도 지자체와 연관지어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아 저출산지원단이라는 이름으로 TF를 꾸리게 됐다. 출산지도가 공개된 것은 지난해 12월이지만 이미 그전인 8월부터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제작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원래 출산지도는 지자체끼리 출산 정책에 대한 자율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모든 지자체의 출산율 순위와 출산지원 정책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또 출산 정책이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국가시책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2016년도 뉴-베이비붐 조성을 위한 우수시책 경진대회’를 시행해 일부 지자체에 21억 원 상당의 특교세를 지원했다. 특히 출산율이 낮아지거나 정책효과가 미흡한 지자체에 대해서는 컨설팅을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는데 지자체별 출산 경쟁 방법 등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또 우수시책으로 평가된 출산축하물품 지원책도 출산을 계획하는 것에 기여도가 적다는 평가도 있었다.
출산지도가 하루 만에 사라졌지만 행자부에서는 이름을 바꾸고 데이터를 추가하는 등의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행자부 관계자는 “국민들 스스로가 시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출산 정책을 살펴보라는 취지에서 만든 것인데 지난 하반기에 시간에 쫓겨 만들어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문제가 됐던 가임기 여성수 항목에 대해서는 다시 이름을 바꿔 포함시킬 것이고 기존 지표가 한정적이었다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출산 이후에 필요한 어린이집 문제와 양육을 위한 다양한 지표를 추가해 출산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형태로 개선할 것이다. 출산지도라는 이름도 새롭게 바꿀 것이고, 상반기 안에 완성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13차 인구포럼 발제 내용 일부.
지난 2월 2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이 15회 인구포럼에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 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을 혼인율과 유배우자 출산율로 분해해 살펴보면 혼인율 하락이 출산율 하락에 더 크게 기여한다”며 “혼인율을 올리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원 위원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휴학하는 학생들에게 채용 시 불이익을 주는 것의 효과를 강조했고, 빨리 짝을 찾을 수 있도록 가상현실을 이용해 배우자를 탐색하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온라인 게시판에는 ‘원 위원의 파면을 원한다’는 항의의 글이 빗발쳤고 지난 26일 원 위원은 인구영향연구센터장 보직에서 물러났다. 원 위원은 “모형 분석과 해석에 매몰되어, 결혼은 존중되어야 하는 개인의 선택이며 많은 분들이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였다”며 “일방적인 접근방법과 개인의 선택을 침해하는 제언은 매우 부적절하였음을 인정한다”는 사과의 글을 남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원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인구영향연구센터에서 사회보험연구실 연금연구센터로 이동돼 있었다.
일부 국민들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대상으로 국민소송제를 제기했다. 국민소송제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예산이 법에 어긋나게 사용된 경우 이를 납세자에게 환수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무조정실에 소속돼 있고, 매달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원 프로그램으로 280억 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