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신화 몰락에 실적·이미지 추락…중국 공략도 사드 보복으로 난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분신’과도 같은 네이처리퍼블릭의 지분(73.01%, 560만 5920주)뿐이다. 지난해 6월 21일 정 전 대표는 검찰 기소를 앞두고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정 전 대표의 빈 자리는 과거 더페이스샵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창호 대표(현 부사장)가 꿰찼다가 현재는 아모레퍼시픽 출신 호종환 대표가 맡고 있다.
김창호 전 대표는 정 전 대표가 보유한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매각의 ‘특명’을 받았지만 마땅한 인수의향자를 찾지 못했다. 일부 중국 투자자가 관심을 보였지만 가격을 놓고 입장 차가 커 네이처리퍼블릭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인 호 대표는 해외영업 전문가로서 추락한 네이처리퍼블릭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대주주의) 지분 매각과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추진된 것이 없으며 특별한 입장을 밝힐 것이 없다”고 했다.
2009년 더페이스샵 지분을 매각하면서 화장품업계를 떠난 정 전 대표는 불과 1년 만인 2010년 네이처리퍼블릭을 통해 복귀했다. 외형상으로는 신생 업체인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100%를 인수하는 방식이었지만 업계 일각에선 애초부터 정 전 대표가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인수를 염두에 두고 회사 설립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정 전 대표가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넘길 때만 해도 중저가 화장품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당시 정 전 대표는 업체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 내 입점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 공시지가 자리인 명동에 명동월드점을 오픈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정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지하철 점포 확대에 애착을 가졌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설립된 2009년은 화장품업체 간 점포 확장이 불붙을 때다. 서울도시철도공사 부대사업처 관계자는 “화장품업체 간 입점 경쟁은 2013년무렵 정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만 15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상하이 오각장 완다광장점
그러나 지하철 상권은 중저가 화장품업체 간 출혈 경쟁이 심해지면서 현재는 수익성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업황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주력한 가맹사업에서도 뚜렷한 모멘텀은 없는 상황이다. 한국거래조정원에 따르면 2013년 250개였던 가맹점은 2014년 309개로 늘어나는 듯하더니 2015년 310개로 성장이 멈췄다. 다만 같은 기간 직영점은 268개, 347개, 468개로 늘어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네이처리퍼블릭의 경영실적은 직영점 확대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처리퍼블릭은 2016년 3분기까지 누적 1976억여 원의 매출과 33억여 원의 영업적자를 나타냈는데 이는 전년 동기(2020억여 원의 매출, 139억여 원의 영업이익) 대비 부진한 결과다. 이 기간 네이처리퍼블릭이 지급한 임차료는 2015년 111억 원에서 2016년 171억 원으로 늘었다. 즉 점포 수가 확대된 만큼 관리비 지출이 늘었지만 매출은 오히려 감소된 셈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최근 내수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해 해외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2014년 홍콩, 2015년 카자흐스탄에 이어 2016년에는 캐나다와 러시아에도 각각 신규 매장을 론칭했다. 이 가운데 네이처리퍼블릭이 사세 확장의 ‘디딤돌’로 주목한 곳은 중국이다. 케이뷰티(K-Beauty)를 보급하겠다는 명목으로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는 현지 법인이 설립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에 따른 경제 보복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중국 공략은 당분간 난제로 남게 됐다. 중국은 한류의 대표 콘텐츠로 꼽히는 화장품에 대해 수입 금지 범위를 늘리고 있다.
지하철 상가 사업은 풍부한 유동 인구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서울 방배역의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더욱이 지난 3월 2일 중국 정부는 자국 여행사들을 상대로 ‘한국 방문을 포함한 관광 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라’는 방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즉 단체 관광객이 한국에 입국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여파로 국내 화장품 업계 1~2위를 양분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주가는 3월 3일 각각 12.67%, 8.22%나 급락한 채 마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이번 조치가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대응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네이처리퍼블릭도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당초 중국인 관광객 증대에 따른 화장품 시장의 외형 확대를 기대했던 네이처리퍼블릭은 추가적인 매출 타격을 우려하게 됐다. 스테디셀러인 ‘수딩젤’, ‘워터리 크림’ 등이 있지만 전체 매출에서 비중은 각각 7~8%에 그친다.
한때 1조 원대 IPO(기업공개) 대어로 평가받던 네이처리퍼블릭의 가치는 현재 2000억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장외주식 거래 사이트인 프리스닥에 따르면 최고가가 17만 원에 달했던 네이처리퍼블릭의 주가는 현재 2만 3000원대로 추락했다. 장외주식 거래를 통해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300억 원어치를 7만 원대에 사들인 증권사들은 200억 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고 있는 상태다. 대신증권이 준비하던 네이처리퍼블릭 IPO는 정 전 대표의 구속 수감과 함께 사실상 중단됐다. 정 전 대표의 형기 만료도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사면초가에 놓인 네이처리퍼블릭이 비상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