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α’ 가 필요한데… 끙
▲ 정가에서는 이 대통령이 국회 지배력 확보를 위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의 당 대 당 합당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 ||
이번 총선에서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직간접적 ‘타격’을 입었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소장파들에게 ‘용퇴 촉구’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경선 승리의 1등 공신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발목을 잡혀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겪었다. 이 대통령의 ‘제1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한나라당 공약에서 아예 배제됐고, 야당으로부터 집중 난타를 당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 때문에 총선 이후 한나라당을 직할 체제로 두고 안정된 국정운영을 펼쳐 나가려던 청와대의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섣불리 ‘MB맨’임을 강조하고 다니다가는 오히려 표를 깎아 먹을 것 같아 지역 발전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총선 유세가 한창이던 4월 초, 한나라당 영남권의 A 후보는 이렇게 호소했다. A 후보는 경선 때는 물론 대선 본선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 이 때문에 대선 직후까지만 해도 A 후보의 당선은 당연시됐다. 그러나 인수위의 설익은 정책발표와 내각 인선,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지역 민심은 급속 냉각됐고 선거 막판까지 A 후보는 상대와의 경합 속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수도권 B 후보도 상황은 마찬가지. 워낙 ‘MB맨’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B 후보 역시 선거 기간 동안 “이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득과 실을 운명처럼 지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A, B 후보처럼 소위 ‘맹돌이’라 불리는 이 대통령 측근 후보자들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이 대통령 ‘덕분에’ 공천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 운동과정에서 이 대통령 ‘때문에’ 지지율 하락을 맛본 인사들이다. 달리 보자면 청와대로서는 18대 총선을 통해 원내 진입에 성공한 ‘직할 부대’의 ‘충성도’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여기에 지난 공천 파동에서 나타난 것처럼 초·재선 급 신진 세력들이 이 대통령의 ‘강력한 우군’이 되기 어렵다는 당내 현실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 대통령이 마음 놓고 당을 맡길 만한 인물이 뚜렷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청와대의 고민이다.
MB와 대척점에 섰던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총선을 통해 오히려 정치인으로서의 상품 가치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는 물론 당외 친박계 후보자들, 당 지도부 인사들, 수도권 및 충청권 출마자들 모두 ‘박근혜 지원유세’에 목매는 모습이 연일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중계됐다. 박 전 대표의 대구 달성군 지역 유세에 한나라당 후보와 친박계 무소속 후보가 나란히 동행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청와대 입장에서 다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을 ‘위탁’하기에는 ‘찜찜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당 지도부를 성토한 것은 사실상 청와대를 향해 포문을 연 것이라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권 핵심부에선 여러 가지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정몽준 최고위원은 당내 기반이 아직 취약하다는 점에서, 강재섭 대표는 독자적으로 ‘용꿈’을 꿀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이상득 부의장은 당내 권력투쟁의 중심인물이 돼버렸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당권을 맡기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워 보인다. 특히 역풍이 거센 한반도 대운하를 놓고 당론이 분열될 가능성이 높아 ‘믿을 만한’ 당권주자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 이회창 | ||
그러나 여당은 7월 11일 전당대회를 아직 100일이나 앞둔 현 시점부터 이미 소용돌이칠 기미가 농후하다. 뚜렷한 강자가 보이지 않으면서 계파분화가 가속화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역대 정권에서 늘 벌어졌듯 ‘2인자’에 대한 소장파의 반란이 시작될 수도 있다. 마치 YS(김영삼 전 대통령)정권 시절 김현철,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시절 김홍업, 노무현 정권 시절 이광재·안희정 씨에 대한 당내 반발이 있었던 것처럼 당내 소장파들은 ‘민심 이반’을 명분으로 이상득 부의장을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총선 과정에서 이 부의장의 ‘용퇴’를 촉구했던 수도권 출마자 55명이 “일단 총선이 끝난 뒤 다시 보자”고 운을 떼어놓은 부분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화약고로 평가된다. 이 경우 이 대통령으로서는 친형의 진퇴를 놓고 또 다시 당내 소장파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 총선 당시에야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요구한 ‘동반 불출마’ 카드를 이 대통령이 단칼에 무력화시켰지만 총선 이후의 상황은 총선 전과는 판이하다. 당시에는 ‘선거’라는 눈앞의 큰 관문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당대회까지 1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별 다른 정치 이벤트가 없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이 대통령이 장기적으로 ‘당 외부’에서 해법을 찾는 수순으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의석 과반 획득을 넘어 국회 각 상임위에서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서는 ‘한나라당+α’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영입대상으로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1순위로 거론된다. 한나라당과 보수 지향성이 비슷한 자유선진당 인사들의 성향상 ‘각개격파’를 시도할 경우 영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아직 이르긴 하지만 내각제를 연결고리로 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의 당 대 당 합당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이는 집권 중반 이후 정국 돌파를 위해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을 시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상상이 가는 그림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이 대통령은 아직 집권 초반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지지율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하락 추이가 가파르다. 또 대외 경제 여건상 이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 회복 속도도 국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청와대가 특단의 ‘정국돌파용 카드’에 눈을 돌릴 여건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