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어머니의 싸움… 타협의 길은 연임?
행추위 위원은 총 5명이다. 기획재정부(기재부), 해양수산부(해수부), 금융위원회(금융위)가 각각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2명은 중앙회에서 추천한다. 정부 측 위원이 3명, 중앙회 측 위원이 2명으로 언뜻 보면 정부의 입김이 더 강하다. 그러나 수협은행 관계자는 “수협은행 정관에 따르면 은행장은 추천위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선출된다”고 전했다. 즉 5명의 위원 중에서 4명 이상의 위원이 찬성해야 행장 선임이 가능하다. 정부 쪽이나 중앙회 쪽 중 어느 한 쪽이 거부하면 행장으로 선임될 수 없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Sh수협은행 본점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당초 수협은행장에 지원했던 사람은 강명석 수협은행 상임감사, 옛 조흥은행 출신 임원과 옛 외환은행 출신 임원 등 민간은행 출신 2명, 비금융권 인사 1명, 총 4명이었다. 이 중 눈에 띄는 인물로는 현 수협은행 상임감사이자 차기 은행장으로 유력했던 강 감사다.
수협노량진수산 대표이던 강 감사가 수협은행 상임감사로 선임된 것은 지난해 12월. 강 감사는 김임권 수협중앙회 회장의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수산경영학과 후배로 김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강 감사가 차기 수협은행장에 지원한 것은 은행에 중앙회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김 회장의 뜻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행추위는 강 감사를 비롯한 4명의 후보 중 누구도 최종 후보로 결정하지 못한 채 돌연 재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금융권에서는 행추위의 결정에 정부의 뜻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수협중앙회는 정부에 1조 1581억 원의 공적자금을 상환해야 하는 만큼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수협은행장 선임 문제에서는 이전부터 독자적인 권리를 요구해왔다. 해수부 관계자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만큼 수협은행 경영의 투명성이 필요하다”며 “자율적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건 수협의 입장일 뿐 정부는 수협에서 손을 뗄 수 없다”고 전했다. 반면 중앙회 관계자는 “빠르게 공적자금을 상환하려면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보내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그간 그런 인물을 보내줬는지 정부가 답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행추위의 ‘이상한’ 결정은 수협은행 내부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재공모에 들어간 이유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채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를 선임하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수협중앙회지부(수협노조·위원장 조성현)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행장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절차에 없던 재공모를 진행하는 이유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을 위한 형식적인 재공모라면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전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행장 공모에 지원한 후보들이 (행장으로서의) 여러 조건을 충족한다고 보기 어려웠다”며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재공모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김임권 회장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강 감사를 제외하면 수협 내부 인사 중 김 회장이 자신 있게 내놓을 카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까운 인물을 내세워 수협은행의 독립과 중앙회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계획이 틀어질 상황에 처했다. 강 감사의 재지원이 가능하지만 이미 한 번 탈락한 터라 재지원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수협중앙회는 수협은행장 선임에 있어서는 이전부터 독자적인 권리를 요구해 왔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수협중앙회 건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재공모에 어떤 후보가 등장할지는 알 수 없다. 이전 공모에 지원했던 후보들보다 뛰어난 능력의 후보가 지원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수협은행장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공모 때 지원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여러 전문경영인들과 접촉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정부 주도로 차기 행장을 선임하면 수협 내부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수협노조는 지난 2월 28일 “사적 친분으로 정부 인사까지 농단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전 국민의 분노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저항으로 이어진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또 다시 관치를 휘둘러 수협은행장에 낙하산 인사를 선임하려 시도한다면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일부에서는 이원태 현 은행장이 연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행장은 기재부와 예금보험공사(예보) 부사장을 거친 관료 출신이다. 비록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수협법 개정에 적극 나서는 등 수협은행의 독립 출범을 이끈 공로가 있다. 실적도 좋다. 수협은행의 지난해 1~3분기 당기순이익은 409억 원으로 2014년 1~3분기 294억 원, 2015년 1~3분기 345억 원에 이어 매년 증가했다. 2013년 수협은행장 취임 이후 꾸준히 실적 상승을 이끌어왔다.
이 행장은 지난 4년간 수협은행을 이끌면서 특별한 흠이 없었고 공로가 있었던 만큼 연임해도 무난한 경영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행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김 회장과 특별한 인연이 없어 ‘김 회장 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도 피할 수 있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김 회장 입장에서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정부 측과 끝내 타협하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제시할 수 있는 현실적 카드”라고 전했다. 이 행장의 임기는 오는 4월 12일까지이며 지난 행장 공모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회장이 주장하는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은 핑계일 뿐, 수협 내부 출신을 차기 행장으로 선임하는 게 그의 속마음으로 보인다. 관료 출신인 이 행장의 실적이 나쁘지 않은 걸 생각하면 관료 출신을 무조건 반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행추위 관계자는 “지금껏 수협은행장 자리에 내부 출신이 선임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부 출신을 선임하고 싶은 맘이 왜 없겠나”라며 “김 회장이야 전문경영인을 주장하고 그 경영인이 내부 출신일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걸 행추위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 재공모하게 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차기 수협은행장 지원은 오는 24일까지이며 일주일 후인 31일 행추위 면접이 진행된다. 수협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이 연임하려면 공모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지원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며 “재공모에서도 최종 후보를 결정하지 못할 경우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