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위기는 곧 형의 기회? 종업원지주회 설득 주력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의 충돌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불거져 나왔다.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다. 현재 롯데홀딩스의 주요 주주는 광윤사(28.14%), 종업원지주회(27.75%), 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LSI)(10.7%) 등이다. 이밖에 미도리상사, 패미리 등 일본 롯데 계열사 5곳이 보유한 롯데홀딩스 지분도 20.1%에 달한다. 다만 LSI는 의결권이 없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이 가진 롯데홀딩스 지분은 각각 1.62%, 1.4%의 미미한 수준으로 대주주들의 지지가 절실하다. 그간 종업원지주회를 비롯한 롯데홀딩스의 주요 주주들은 신 회장을 지지해 왔다. 반면 신 전 부회장의 우호지분은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광윤사뿐이다.
광윤사를 제외한 롯데홀딩스의 주주들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지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롯데그룹의 경영비리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는 신동빈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신 전 부회장의 우호지분이 적은 탓에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의 승자는 항상 신 회장이었다. 2015년 7월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3번의 롯데홀딩스 주주총회가 있었다. 신 전 부회장은 그동안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 해임을 안건으로 내걸었지만 매번 부결됐다. 반면 신 회장이 내건 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은 가결됐다.
신 전 부회장은 우호지분 확대를 위해 종업원지주회를 설득해 왔다. 종업원지주회는 롯데홀딩스 과장급 이상 직원 130여 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금까지 신 회장을 지지해 왔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3월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종업원지주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 1인당 25억 원 이상의 이익을 챙겨주겠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신 전 부회장은 최근 신 회장이 뇌물공여 혐의 등 구설수에 휘말린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종업원지주회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신 전 부회장의 회사인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일본 롯데 직원들도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며 “롯데가 현 위기를 돌파하려면 (신 회장 혼자 경영하는 것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 전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해 오너 일가가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신 회장의 잘못된 부분을 이용해 종업원지주회를 설득한 건 계속 해오던 일”이라며 “결정은 주주들이 할 것이고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해 신 전 부회장 측 주장에는 변화가 있다. 신 회장의 해임을 주장해 온 신 전 부회장이 지금 와서 오너 일가가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을 몰아낸 롯데홀딩스 이사진 6명을 해임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이사진 전원을 해임하는 안건을 올리는데 신 회장만 빼놓을 수 없었다”며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을 용서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신 총괄회장만 자리를 되찾으면 오너 일가가 뭉치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심리로 열린 ‘롯데그룹 경영 비리’ 첫 재판에서도 신 전 부회장 측은 비리의 책임이 신 회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과 공모해 총수 일가에 508억 원의 ‘공짜 급여’를 주게 하고 롯데시네마 영화관 매점 운영권을 헐값에 넘겨 롯데쇼핑에 774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롯데 총수 일가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신 총괄회장 측 변호인은 재판에서 “롯데그룹 정책본부에서 시행한 사안들이고 신 총괄회장은 고령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라며 “신 총괄회장이 한 일은 ‘적정하게 처리하라’고 하고 보고를 받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신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결정권을 쥐고 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어 경영을 하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며 “신 총괄회장이 단독으로 일을 진행했다면 신 회장의 주장에 모순이 생긴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롯데홀딩스는 오는 6월 중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어떤 안건이 올라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신 전 부회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업원지주회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은 지난 3번의 주주총회에서도 신 회장 흠집내기에 나섰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종업원지주회는 신 회장에게 굳건한 지지를 보여 왔기에 이제 와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관측했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는 시나리오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기소만 돼도 이사직에서 해임되는 게 관례”라며 “신 회장의 범죄 사실이 증명되면 그때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36년 만에 등장한 서미경 씨 알고 보면 오너 일가 중 롯데홀딩스 최대주주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심리로 열린 ‘롯데그룹 경영 비리’ 첫 재판에서 서미경 씨가 36년 만에 모습을 나타냈다.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서 씨는 1981년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고 발표했다. 이후 그는 신 총괄회장 사이에서 딸 신유미 씨를 낳는 등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사실혼 관계로 지냈다. 서 씨는 이날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서 씨는 그간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수차례 불응했다. 재판부가 첫 공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고 밝힌 뒤에야 서 씨의 출석이 이뤄졌다. 취재진의 “그동안 왜 검찰 소환에 불응했느냐”는 질문에 서 씨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내연녀인 서미경 씨가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롯데그룹 사건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서 씨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가 보유한 지분도 주목받고 있다. 서 씨와 그의 딸 신 씨가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총 6.88%로 알려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0.4%),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1.62%),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4%)보다 많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 모두 서 씨의 지분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종업원지주회에서만 신 전 부회장을 지지하면 우호지분이 50%가 넘는다”며 서 씨 지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한국 롯데에서는 서 씨 지분에 대해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