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타이어 컨소시엄’ 불허 방침서 산은 급선회 조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일요신문 DB.
앞서 산업은행 등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중국 자본인 더블스타(청도성미국제투자유한공사)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보유 지분 42.01%를 9550억 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변수는 현 금호타이어 대표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지 여부다. 채권단 약정에 따라 SPA가 체결된 3월 13일부터 30일 이내에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더블스타는 금호타이어의 최대주주가 된다.
2010년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경영 정상화의 일환으로 금호타이어 지분을 사들이면서 당시 오너인 박 회장과 우선매수권 계약을 맺었다. 박 회장은 이번 인수전에서 더블스타가 제시한 9550억 원보다 단돈 1원이라도 높은 가격을 써내면 금호타이어를 되찾을 수 있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를 금호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로 보고 있다.
그런데 채권단은 앞서 우선매수권 계약 과정에서 단서조항을 달았다. ‘경영 실패’에 따른 일부 책임을 물어 박 회장 소유 계열사 및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자금 조달을 금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박 회장은 1조 원에 육박하는 재원을 오로지 개인 자격으로 마련해야 했다. 금호그룹 지주사인 금호산업 인수 과정에서 이미 차입 부담을 진 박 회장에겐 여윳돈이 없었다. 기댈 곳은 외부 투자자뿐이었다. 금호그룹은 지난 2월 “FI(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1조 원을 확보했다”며 이번 인수전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채권단은 금호그룹이 유치한 FI를 인정하지 않았다.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자금 조달을 금지했는데 박 회장이 룰을 어겼다고 본 것이다. 금호그룹은 즉각 반발했다. 더블스타가 컨소시엄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으므로 박 회장 또한 동일 조건 하에 FI를 인정해달라는 논리였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그동안 수차례 채권단에 관련 안건을 부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산업은행 등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금호그룹 내부에선 ‘최악의 경우 소송까지 검토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이때만 해도 채권단은 꿈쩍하지 않았다.
더블스타로 향했던 이번 인수전의 ‘시계추’는 정치권이 움직이면서 미묘한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 3월 19일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각각 자신의 SNS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인력 구조조정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금호타이어 매각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주승용 원내대표도 가세해 “불공정한 매각”이라며 반발했다. 더블스타가 지난 3월 21일 입장자료를 통해 임직원 고용승계와 지역인재 추가 채용을 약속했지만 설비 공장이 있는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먹튀’ 우려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정작 타이어업계에선 “정치권의 우려가 일부 과장됐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금호타이어가 방산업체긴 하지만 연간 납품 규모가 40억여 원에 불과하고, 경쟁업체인 한국타이어가 충분히 금호타이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금호타이어의 연 매출은 3조 원 규모며, 세계 타이어 시장 점유율은 한국타이어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광화문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일요신문 DB.
기술 유출 우려도 ‘어불성설’이란 반론이 제기된다. 이미 금호타이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현지에 생산 설비를 두고 있으며, 금호타이어의 기술력은 미쉐린 등 세계 상위권 업체와 비교해 우월한 편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기술 유출 프레임으로 채권단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한·중관계 악화로 ‘반중(反中) 정서’가 확대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채권단은 결국 3월 22일 금호그룹의 요구대로 박 회장의 컨소시엄 허용 여부를 각 은행에 서면 부의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지분 13.51%)과 우리은행(14.15%)이 키를 쥐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정치 논리는 배제하고 오직 경제 논리에 입각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산업은행이 정치권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그간 대우조선해양 지원 사례에서 보듯 정치권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더구나 좌우를 넘나드는 박삼구 회장의 정계 인맥은 그간 여러 어려움 속에서 금호그룹을 지탱해 온 힘으로 평가 받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의 인수를 일관되게 전망하고 있다”고 했으며, 재계 관계자는 “박 회장의 정계 인맥이 상당하다”고도 했다. 같은 광주일고 출신으로 가장 먼저 금호타이어 매각에 반대한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은 물론이고, 최근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까지 금호그룹 계열사에서 사외이사를 역임하며 박 회장과 인연을 쌓은 바 있다.
금호타이어 사외이사진을 보면 산업은행 계열사 사장, 국회사무총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전국은행연합회장 출신이 포진해 있다. 상황에 따라 채권단을 설득할 수 있는 ‘전관’인 셈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만약 박 회장에 대한 컨소시엄이 허용되지 않더라도 산자부가 승인을 불허하거나 SPA를 취소하는 등의 조치로 매각 절차를 지연지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더블스타 측은 “SPA가 (비정상적인 이유로) 취소되면 채권단에 소송을 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