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소환엔 응하고 혐의는 부인’…전두환 ‘골목성명 내고 소환 거부’ 결국 압송당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일요신문DB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재단 사유화, 삼성 등 대기업 뇌물 수수, 최 씨의 각종 이권 챙기기 지원 등 국정농단 의혹 전반에 대해 추궁했다. 조사는 중앙지검 1001호 조사실에서 이원석 특수1부장과 한웅재 형사8부장 주도로 진행됐다.
앞서 검찰에 소환됐던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의 경우 소파와 침대 등이 구비돼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중수부가 폐지돼 박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에 위치한 일반조사실에서 받았다.
또 박 전 대통령은 검찰 간부들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 대신 일반 피의자들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사실로 향했다. 이를 두고 검찰 관계자들은 “박 전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분임을 명확히 알리기 위한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탄핵 직후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 조사 준비와는 별개로 전직 대통령들의 검찰 소환 과정을 면밀히 분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소환 조사엔 응했지만 혐의는 부인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긴 21시간 30분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가 종료된 뒤 피의자 신문 조서를 7시간가량 확인한 뒤 다음 날인 3월 22일 오전 6시 55분 서울지검을 떠났다. 변호인단은 진술 조서 내용이 방대해 이를 살펴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시간 22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시간 50분 동안 조서를 열람했다.
박 전 대통령은 조서에서 단어, 문구와 문맥 등을 최대한 수정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서가 향후 법정에서 핵심 증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는 “피의자 신문 조서는 속기사가 그대로 타이핑하는 것이 아니고 요약해서 적게 된다. 그렇게 되면 뉘앙스가 차이가 나게 된다. 가령 시인을 안 했는데 시인한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말이다. 영상 녹화를 했으면 상관이 없는데 조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도 꼼꼼하게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직 대통령들은 왜 검찰 앞에 서게 됐을까.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1일 수천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그는 당일 오전 9시 45분에 대검찰청에 도착해 조서 검토 등을 거쳐 다음 날 새벽 2시 22분 무렵 귀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2주 뒤인 11월 15일 검찰에 또 다시 소환돼 10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결국 11월 16일 재벌 총수 등 36개 업체 대표로부터 2385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어 검찰은 1995년 12월 1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진상 규명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소환 예정일이었던 12월 2일 연희동 집 앞에서 “검찰 소환 등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이에 검찰은 곧바로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밤늦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결국 다음 날 검찰 수사관이 합천으로 내려가 전 전 대통령을 안양교도소로 압송했다. 전 전 대통령은 안양교도소에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12시간 40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면목 없다”고 소회를 밝힌 뒤 봉하마을에서 청와대 경호실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대검 중수부에 출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30분쯤 도착해 조사와 조서 열람 등을 거쳐 다음 날인 새벽 2시 10분 최종 귀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판사 출신 변호사답게 조사가 끝난 뒤에도 피의자 신문 조서를 꼼꼼히 검토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에 시선이 모아진다. 법조계에선 구속 사유는 충분하다는 게 중론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더라도 구속 기소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장미 대선’이 변수로 꼽힌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음은 노영희 변호사 말이다.
“뇌물죄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뇌물을 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재 구속돼 있다. 원칙적으론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맞다.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영장 청구를 하지 않고 버틸 이유가 없다. 일단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에 공이 넘어가기 때문에 검찰로선 손해 볼 게 없다. 게다가 수사 받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의 버티는 모습이 국민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영장을 청구하는 쪽으로 무게감이 바뀌고 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 또한 구속 영장 청구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허 평론가는 “전직 대통령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동정론 또한 우세하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선 파면됐는데 처벌까지 해야 되냐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여론 조사만 보더라도 구속을 해야 된다. 구속 이후 부작용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검찰에선 위법 사실에 따라 판단 하는 게 맞다. 정치적 판단을 해선 안 된다. 누구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법대로 하는 것이 대한민국 법치를 세우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