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 후보 옹립 즉시 ‘반문연대’ 추진…김종인 주도 ‘단일화‘ 나설 수도
딱 거기까지였다. 주연도 조연도 3월 정국의 반환점인 15일 김 전 대표가 주도한 ‘국난극복과 개혁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 조찬 회동 무산을 끝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 전 대표가 3월 23일 조찬회동을 재개했지만 제3지대 정계개편이 동력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미완성에 그친 3월 빅뱅이 4월 정계개편의 물꼬를 텄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4월 둘째 주를 눈여겨봐라.” 제3지대 관계자는 4월 빅뱅의 분기점을 이같이 전망했다. 이 시기는 각 당 최종 대선 후보 선출이 끝나는 시점이다. 각 당은 3월 18일 바른정당을 시작으로, 자유한국당 3월 31일, 더불어민주당 4월 3일(결선투표 땐 4월 8일), 국민의당 4월 4일(결선투표 땐 4월 6일)을 끝으로 경선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후 제3지대 정계개편도 본격화할 것이란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사실상의 본선인 민주당 대선 경선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것도 제3지대 움직임을 둔화하는 데 한몫했다. 김 전 대표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도 3월 23일 서울 중구 한정식집에서 가진 양자 회동에서 “4월 15일 전에 결실을 맺도록 하겠다. 뜻이 같다면 시간은 충분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현재 4월 빅뱅을 아우르는 정계개편은 ▲제3지대 비패권지대 구축 ▲자유한국당 중심의 보수단일화 ▲중도 연대 등이 있다. 비패권지대는 김 전 대표를 비롯해 손 전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보수 단일화는 한국당과 바른정당, 중도 연대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이 각각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한국당 대선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3월 15일 회동에서 ‘대선 후 통합’까지 포함한 보수 단일화를 논의했다. 한때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갈등을 빚은 김 의원은 경우에 따라 보수 단일화를 고리로 유 의원과 전략적 휴전을 맺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유 의원은 보수 단일화, 남경필 의원은 중도 단일화를 각각 주장했다.
여기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은 4월 초중순께 합당까지 포함한 연대 논의에 착수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은 영호남 화합이다. 영남당인 바른정당과 호남당인 국민의당이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신군부에 저항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모델로 새판 짜기에 나서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자강론’의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측근들에게 “또 (연대) 얘기가 나오면 책임을 묻겠다”고 격노했다. 다만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연대론에 선을 그으면서도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구심점 없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 4월 빅뱅이 사실상 신기루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실제 김 전 대표는 ‘대선후보 감별사’를 자처하며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회동 정치에 나섰지만 시국회의 첫 회의조차 열지 못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이 불참을 통보, 사실상 반쪽짜리 모임으로 전락해서다. 또한 김 전 대표는 손 전 대표와 남 지사, 정 이사장 등과 대연정 토론회를 열기로 뜻을 모았지만 막판 남 지사가 일정을 틀면서 이마저도 무산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초 3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네 분이 대연정 토론회를 할 예정이었지만, 남 지사가 빠지면서 무산됐다”며 “회관 장소를 잡은 것도 남 지사 측이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남 지사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손 전 대표 측도 “예정돼 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산으로 가는 제3지대 빅텐트 내부의 민낯이다. 김 전 대표는 3월 22일 서울 중구 한정식집에서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조찬회동을 했으나, 이 자리에는 손 전 대표 등 핵심 인사들이 빠졌다.
변수는 있다. 이른바 ‘반문(반문재인)’ 구도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확인되는 순간, 제3지대 정계개편을 시작으로 4월 빅뱅의 막이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안희정 바람’이 불면서 제3지대가 힘을 못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재인 전 대표로 후보가 확정되면 상황 자체가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은 ‘세력 간 연대’에 방점을 찍었던 4월 빅뱅이 ‘인물 간 연대’로 전환할 가능성을 크다는 점이다. 세력 간 연대의 전제조건에는 ‘개헌’이 깔렸다. 그러나 개헌 동력은 3월 정국 막판 가속페달을 밟지 못했다. 김 전 대표의 행보도 시국회의 무산 이후 사실상 좁아진 상황이다. 자유한국당부터 바른정당, 국민의당, 비패권지대 등으로 분할된 넓은 반문 구도도 한몫했다.
그 사이 ‘홍럼프(홍준표+트럼프)’가 범보수 대안으로 떠올랐다. 홍 지사는 3월 22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주일 전 김무성 의원과의 회동 사실을 알리면서 “‘(대선 전) 후보 단일화하는 게 옳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선 보수단일화-후 통합’인 셈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일부 인사들도 연대·통합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대주주격인 김무성 의원은 그간 국민의당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해왔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보수단일화를 주장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안 전 대표와의 연대에 긍정적이다. 정계개편에 따라 ▲홍준표-유승민 등 한국당과 바른정당 후보 ▲안철수-유승민 등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후보 간 ‘인물 연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 안팎에선 김 전 대표가 정계개편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가, 각 진영의 후보가 옹립하는 즉시 반문 연대 시나리오를 추진할 것이란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예컨대 ‘홍준표-유승민-안철수’ 등이 정계개편의 장으로 나올 경우 김 전 대표가 제3지대 인사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김병준 국민대 교수,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을 이끌고 대선 판에 등판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가 대선에 직접 등판한 뒤 후보단일화를 전제로 사퇴하거나, 독자 완주를 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문재인만은 저지하라’는 이른바 반문 진영의 특명인 셈이다.
여기에 최근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리셋 코리아’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전 회장도 4월 빅뱅에 합류할 수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홍 전 회장이 ‘문재인’도 ‘안희정’도 아닌 상황에 대비해 나온 것으로 안다”며 비패권지대 가능성을 점쳤다. 홍 전 회장은 DJ정부 당시 국무총리와 대통령 후보군에 오른 바 있다. 박지원 대표도 ‘세대교체론’을 언급하며 “(홍 전 회장을) 국무총리로 검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문 전 대표의 ‘섀도 캐비닛’(예비내각)과 홍 전 회장의 ‘리셋 코리아’ 등 비패권지대 예비내각이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4월 빅뱅의 마중물인 김 전 대표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때쯤, 임기단축 개헌이 다시 전면에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4월 빅뱅의 마지막 단추의 명분으로 임기단축 개헌을 던진 뒤 연립정부 구성을 골자로 하는 연정 모델로 호헌파인 문 전 대표에 대한 고립 작전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다.
전계완 평론가는 “3년 임기단축 개헌으로 협치와 연합정부 구성을 통해 문 전 대표에 대항하는 세력을 만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부터 안 전 대표까지 비패권지대를 총망라하는 반문 진영의 구축이 4월 빅뱅의 핵심인 셈이다. 현실화 되면 양자 구도, 불발되면 다자 구도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