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열려 있어도 문턱이 너무 높아…
국내 유일의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1978년 대한재보험주식회사로 전환되며 민영화됐다. 이종현 기자
국내 재보험 시장은 외관상으로는 완전경쟁 형태를 띠고 있다. 국내 재보험 시장에 외국계 기업 8개 사의 지점이 들어왔으며 국내 기업들이 직접 영국 등 해외 재보험사와 거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기관이나 기업이 해외 재보험사와 직접 계약하는 것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코리안리의 국내 재보험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60%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보험시장이 독점체제로 운영되다보니 재보험사의 주 고객인 손해보험사는 재보험사가 제시하는 보험 요율(보험계약 체결 시 보험료를 결정하는 비율)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보험사가 보험 요율을 스스로 평가하고 산출해내기보다 재보험사가 제시하는 보험 요율을 수용하는 것이다. 손해보험사는 수요자임에도 가격결정권이 약한 것이다. 다시 말해 코리안리의 가격협상력이 수요자보다 뛰어나다는 것.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수요자인 일반 손해보험사가 재보험사가 제시한 협의 요율을 적용한 비중이 2013~2015년 3년간 78.7%에 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국내 재보험사가 더 생기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을 수밖에 없다”며 “그 경우 보험사의 가격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만성적인 재보험거래 무역 수지 적자도 국내 재보험사 추가 설립 필요성에 힘을 싣는다. 코리안리의 담보력은 1월 기준으로 2조 3762억 원 수준으로, 국내 재보험 물량을 다 소화할 만한 담보력을 갖고 있지 못해 국내 물량이 해외 재보험사로 유출되기도 한다. 보험개발원의 손해보험 재보험 거래 수지차(국내 보험사가 국외 재보험에 가입하면서 발생한 국외수지 적자) 통계를 살펴보면 재보험거래 수지 적자는 2013년 2619억 원, 2014년 1678억 원, 2015년 1320억 원으로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간 1000억 원 이상 발생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잇단 재보험 거래 수지 적자에도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준필 기자
실제로 재보험사의 설립과 관련해서 인허가 과정이 특별히 복잡하지는 않다. 하지만 상당한 자본력과 신뢰도 있는 신용기관 등에서 필수 신용등급을 확보해야 하고 단기간에 수익을 보기 힘든 업종이라는 것이 걸림돌이다. 금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국내에서 재보험사 설립 시도가 수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2014년에도 재보험사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설립 자본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민간기업이 거금을 들여 진입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재보험사를 설립하는 데 인허가 과정이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규모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재보험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본력과 S&P 등에서 필수적인 신용등급 확보가 필요적이다. 자본금이 곧 재보험 물량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담보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 재보험은 단기간에 수익을 보기 힘든 사업이라, 비록 자본이 있다 해도 기업들이 쉽게 진입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정부에서도 국내 손해보험사들에 제2의 재보험사 설립을 몇 차례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보험사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에서 알게 모르게 재보험사를 설립하라는 압박이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공교롭게도 불경기나 금융위기 등과 맞물려 재보험사 설립이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재보험업 독점 논란과 관련해 우리가 인허가를 막는다느니 여러 뒷말이 나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시장은 열려 있으나 전문 인력을 갖추고 요율 산출 노하우를 쌓는 등 인프라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려 재보험업에 진입하지 않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