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10층만 딴세상…조용한 일상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22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일요신문 DB
이제껏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한 사례는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고향 합천에서 체포돼 구치소로 이동됐고 노태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는 VIP용 특별조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중수부가 폐지되고 특별조사실도 사라졌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특별수사본부가 만들어진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했다. 일반 피의자가 조사 받는 청사 10층 1001호실에 전직 대통령이 들어섰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외 어떤 수사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다른 사건 조사와 피의자 소환 역시 모두 중단됐다. 오전부터 대부분 검사와 검찰청 관계자는 TV 앞에 모였다. 그 누구도 일을 지시하지도, 하지도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자택을 떠나는 순간부터 모두 TV 화면에 집중했다. 검사도 사무관도 시청자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만 제외하고 다른 엘리베이터는 모두 가동이 중단됐다. 계단으로 이동이 가능했지만 유독 10층은 단단히 잠겼다고 전해졌다. 관심이 발동한 누군가가 기웃거리며 10층을 방문할 가능성조차 검찰청은 모두 사전에 차단했다.
검찰청 입구도 박근혜 관련 취재진 등의 움직임이 다 끝날 때까지 수시간 동안 차단됐다고 알려졌다. 점심 때가 돼서야 이내 신분증 패용한 사람에 한해서 간간히 움직임이 보였을 뿐이었다. 입구는 적막이 휩싸였다. 입구 양쪽에서 격한 시위가 끊임 없이 계속됐지만 안에서는 시위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오전까지만 해도 검사를 포함, 모든 직원에게 내려진 ‘야근하지 말고 일찍 집에 가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출석일 내부 주문은 유효했다. 하지만 의외로 오후 들어서도 적막한 분위기가 지속되자 차츰 검찰 내부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부 부서는 평범한 날처럼 야근까지 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던 10층은 계속 삼엄한 경계 속에 다음날까지 거의 폐쇄조치 됐다고 전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조사는 21일 오후 11시 40분쯤까지 계속됐다. 곧 조서 열람에 들어갔다. 당초 오전 3시쯤에 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을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조서 열람은 늘어졌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서 추가 검토를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결국 약 22시간가량 검찰 조사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은 이튿날인 22일 오전 7시 7분쯤 삼성동 자택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소동 없이 조용한 하루였다. 이런 반응에 검찰 측 관계자는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원한 한 관계자는 “사실 전날만 해도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야근도 하지 말고 그냥 다 집에 빨리 가라는 느낌의 주문이 내려왔다. 그런데 막상 점심이 지나니까 생각보다 모두 조용해서 다들 놀랐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며 다들 예전처럼 돌아왔다. 10층을 제외한 공간은 다 제자리를 찾아 갔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호인단은 전날 밤을 샜다고 전해졌다. 검찰은 이번 조사에서 뇌물수수·직권남용·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개 혐의 가운데 삼성 특혜 관련 433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집중한 탓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사가 이 부회장의 앞날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는 이날만 가능하다는 점을 변호인단을 잘 알고 있었다. 소환 전부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나 정치적 후폭풍을 고려해 박 전 대통령 수사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예측이 이미 법조계에서 파다했다. 변호인단은 귀를 열고 날이 새도록 서울중앙지검에 주파수를 맞췄다. 사법연수원 20기 대인 파트너 급 변호사 역시 이날만은 밤새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