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K예능·K드라마…중국발 한한령 피해 홍콩·대만으로 우회
요즘 한류 시장을 바라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지난해 중순 국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한중 갈등이 고조되며 전방위적 압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라는 핑크빛 전망은 중국발 황사로 인해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든 한반도 하늘처럼 흐릿해졌다. 이제는 사드 사태가 해결돼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이 해결되더라도 또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중국발 악재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중국 본토와 주변국들의 온도차는 상당하다. 중국령인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여전히 한류 스타와 콘텐츠를 좇고 있고,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것과 달리 독자적인 행보를 고수하고 있는 대만 역시 한류 스타들을 반긴다. 여기에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이 한류 시장에서 점점 더 영향력과 점유율을 확대해가고 있다.
한한령이 최고점을 찍은 지난 2월부터 오는 5월까지 4개월간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서 열렸거나, 향후 진행될 예정인 한류 관련 행사는 20건 안팎이다. 중국에 정식 수출되지 못했지만 중국 최대 SNS 웨이보에서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tvN 드라마 <도깨비>의 주역인 공유와 이동욱은 4~5월 대만과 홍콩에서 연이어 팬미팅을 연다.
‘도깨비’ 주연 배우 공유의 첫 대만 팬미팅 티켓 5500석이 이례적으로 오프라인 판매 10분 만에 매진됐다.
또 다른 한류스타인 소지섭 역시 3월 일본 팬미팅을 시작으로 4월 2일부터 대만, 인도네시아, 홍콩 등을 돌고 지창욱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유리와 서현 역시 각각 팬미팅을 열며 한한령을 정면 돌파한다.
K-팝 콘서트 역시 중국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동안 K-팝 가수들은 중국 내 각 성(省)을 돌며 투어를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중국 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류 콘서트가 전면 중단되며 대만, 홍콩 등 중국어권과 동남아시아로 활동 무대를 갈아탔다.
지난 2월 홍콩에서 열린 아이돌 그룹 엑소의 콘서트에는 무려 2만 명의 팬이 몰렸다. 이 공연에는 홍콩팬에 외에도 중국 본토에서 비행기를 타고 건너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중국 정부의 한류금지령과는 별개로 한류 콘텐츠에 목마른 중국인들이 아예 해외 공연을 찾아다니는 ‘풍선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지난해 말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그룹 JYJ의 멤버 김재중은 홍콩, 대만, 마카오 등에서 잇따라 콘서트를 열고, 현재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도 중국 외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중국 방송사의 단골 리메이크 대상이었던 K-예능 역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한류 콘텐츠 포맷 수입조차 금지한 뒤 대놓고 짝퉁 프로그램을 남발하는 중국을 뒤로하고 각 방송사들은 이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예능의 선두주자였던 <런닝맨> 멤버들도 중국을 제외하고 홍콩, 마카오, 대만,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6개 지역을 도는 팬미팅을 진행하며 한류 확산에 이바지하고 있다.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서양 자본 역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은 호재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업체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인 <옥자>를 선보인다. 봉 감독은 전작인 <설국열차>를 통해 전세계 영화인과 영화팬들에게 ‘거장’으로 각인된 만큼 글로벌 유통망을 가진 넷플릭스를 통해 한류 확산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는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와 영화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합작품인 <킹덤>에 투자한다.
한 연예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또한 아시아 시장에서 한류 콘텐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아예 한국의 우수한 인력을 활용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런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가 중국 시장의 공백이 생긴 한류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류 콘텐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창구를 닫으며 중국 측과 사업을 진행하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도 노선을 바꾸고 있다. 웹드라마 <마이 온리 러브송>을 제작한 FNC애드컬쳐는 당초 중국 소후닷컴에서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여의치 않자 넷플릭스에서 방송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 외에도 CJ E&M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제2 거점으로 삼고 지난해 10월 태국, 베트남 법인을 설립하고, 지난 1월에는 한국영화만 24시간 방송하는 한국영화 전문채널인 ‘tvN Movies’를 싱가포르에 론칭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SBS 역시 인도네시아에 한류 콘텐츠 전문채널인 SBS-IN을 개국하며 시장 선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한류 콘텐츠 관계자는 “13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 시장을 완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한류 콘텐츠의 나아갈 길”이라며 “결국은 전세계 시장이 대상이 돼야 한류가 지속 가능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