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완화법 통과 난항…예상했던 ‘암초’ 출항하자마자 발목
지난 3일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했다. 사진제공=케이뱅크
최근에는 대부업체들의 모바일·인터넷 영업 비중도 늘고 있다. 동일한 이용 형태를 지닌 인터넷전문은행이 중금리 대출상품을 제공하자 가입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가입자와 계좌 개설이 급속히 증가하는 것은 고무적이겠지만, 케이뱅크로서는 대출 신청이 많아지는 것은 부담스러울 만하다. 산업자본 대주주의 투자를 전제로 출범한 것이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를 허용하는 법률안 통과가 늦어질수록 자본잠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케이뱅크의 출자금은 2500억 원이다. 이미 절반 이상을 시스템 구축 등에 사용한 상태다. 자본 확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초 대출영업을 중단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법률안 통과를 촉구하는 입장인 여당과 금융위원회가 하는 얘기다. 따라서 영업 중단 시기가 내년 초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예상보다 대출 신청자가 많을 경우 영업중단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관련법의 국회 논의 상황을 보면, 상임위 통과조차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인터넷전문은행 관련 법안은 5건이다. 강석진 의원안(자유한국당, 6월 16일 발의), 김용태 의원안(바른정당, 7월 8일 발의), 정재호 의원안(더불어민주당, 11월 4일 발의), 김관영 의원안(국민의당, 11월 11일발의), 유의동 의원안(바른정당, 11월 16일 발의) 순으로 발의됐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금융위원회는 쟁점이 정리돼 당장이라도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세부 쟁점에서 필요한 규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통과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장 최근의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이들 쟁점이 쉽게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 은행법 개정안 vs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관련 법률안 중 최초 2개 법안은 은행법 중 일부개정안, 이후 나온 3개의 법안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안이다. ‘개정안’은 기존 은산분리법을 준수하면서 허용하자는 것이고, ‘특례법’은 은행법의 은산분리원칙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은산분리법이란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활용하지 못하도록 지분을 10%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의결권은 4%로 제한) 하는 법이다.
2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하 금융위원회)은 ‘개정안이냐, 특례법이냐’에 대해 “은행법이나 특례법이나 모두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이냐, 특례법이냐는 것보다는 쟁점별 내용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 산업자본의 한도 34% vs 50%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관련법의 핵심은 산업자본이 은행의 1대 주주도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관련 법률안은 산업자본의 지분 한도를 34% 또는 50%까지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34%는 통상적으로 주주총회의 특별결의(3분의 2)를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법안은 50%,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34%를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50%가 바람직하지만 34%도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 대주주로의 대출 여부 및 주식 매입 여부
은산분리 원칙의 목적은 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를 늘릴 경우 대주주에 대한 대출을 막을 장치가 필요해진다. 관련 법안들은 ‘금지’, ‘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 ‘언급 없음’ 등으로 나뉜다.
금융위원회는 “정재호 의원안처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담보권 실행 등 불가피한 경우 예외를 허용하되 1년 내 해소하도록 하는 내용이 저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 야당, 2019년까지 한시적 인가, 5년마다 재심사 요구
정재호 의원안에는 2019년 말까지 기존에 인가받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한시적으로 허가를 해 주자는 내용과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가중평균 대출 금리 초과 금지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김관영 의원안은 인가 요건 충족 여부를 5년마다 심사해 미충족 시 인가를 취소하자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2019년까지 한시적 허가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중평균금리라는 것은 산정하기 어렵고, 가격에 대해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5년마다 재승인하는 것은 어떤 금융 관련 법령에도 없는 것으로, 미흡한 부분은 사후 조치를 통해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가 취소 시 소비자에게 불가피한 손해가 일어날 수 있어 합당하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률안에 담긴 내용을 금융위원회는 불가하다고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무위 소속 정태옥 의원(자유한국당)은 “야당에서 이야기하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우려는 많은 부분에서 이미 통제 장치가 들어가 있다”라며 반박하고 있다.
# 이학영 의원, “금융기관 신뢰가 우선” 법안 통과 반대
한편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시행되고 금융기관들이 이를 잘 시행하는 등 국민적 신뢰가 쌓인 상태라면 몰라도, 그런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물꼬를 터주게 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일단 인터넷은행을 풀어줬으면 참여하는 기업은 최소 1년은 책임지고 운영을 해봐야지, 이제 막 인가를 받은 상태에서 법을 바꿔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법 개정과 상관없이 1년 이상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보려달라는 얘기다.
이후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3월 22, 23일에도 개최됐으나, 인터넷전문은행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2월 22일 회의 이후 진전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권은 대선 준비에 한창이다. 대권의 중심이 야권으로 기울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은산분리 원칙론은 더욱 힘을 받게 된다. 최악의 경우 케이뱅크가 영업을 접고 카카오뱅크가 허가를 반납하는 시나리오가 허황된 얘기만은 아닌 이유다.
우종국 비즈한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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