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우적·오물오물…문도 안도 ‘MB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 국밥 CF 장면 캡처. 아래는 문재인 전 대표가 어묵을 먹는 사진.
하지만 이제는 유명 연예인 먹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배우 하정우 씨가 영화 속에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사진이나 영상은 누리꾼들이 꾸준히 소비하는 대표적인 먹방 콘텐츠다. 최근엔 일반인들도 자신이 음식을 먹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SNS에 올린다. 먹방 콘텐츠를 스스로 생산하는 시대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먹방’ 사례는 여러 번 등장했다. 17대 대선 때 이 전 대통령 국밥 CF 영상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영상 속에서 욕쟁이 할머니는 국밥집을 찾은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오밤중에 웬일이여. 배고파? 맨날 쓰잘데기 없이 싸움박질이나 하고 우린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겄어”라면서 국밥 한 그릇을 내놓는다.
이 전 대통령은 욕쟁이 할머니를 향해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는다. 단지 영상은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경제대통령 이명박”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 전 대통령이 숟가락으로 국밥을 떠서 먹는 장면만을 연속으로 보여준다. 대박을 터뜨린 이 영상은 이 전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 회장은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이 국밥을 먹는 모습은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처럼 성공한 사람이 국밥을 우걱우걱 먹으면 소탈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국밥 ‘먹방’이 이 전 대통령의 가난한 어린 시절과 맞물리면서 대통령 당선에 필요조건 중 하나인 서민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장미 대선을 앞둔 후보들에게도 먹방은 빼놓을 수 없는 선거 전략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먹방은 억압적 욕구를 자극한다. 정치인들이 복스럽게 먹는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 재래시장을 찾은 정치인들이 주로 순대나 국밥을 즐겨 먹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먹방으로 자신들이 일반 서민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모습이 자연스레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먹방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 유튜브 공식채널에는 ‘문재인의 장위시장 먹방투어’라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2017년 1월 4일 성북구 장위시장을 찾은 문 전 대표는 입을 크게 벌려 어묵을 베어 문 뒤 “정말 맛있다. 다 먹은 꽂이 숫자를 잘 세야 한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대선 때 국수를 깨작깨작 댔던 문 전 대표가 화끈한 먹방을 시작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전 대표는 ‘족발 애호가’를 자처하면서 특유의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2월 23일 서대문구 영천시장을 방문한 문 전 대표는 “족발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다”며 새우젓이 담긴 종지에 족발을 푹 담갔다가 먹었다. 영상을 분석한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 회장은 “잘 먹는 정치인은 선거에 유리하다. 족발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문 전 대표가 족발을 맛있게 먹으면 그만큼 유권자들도 친근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족발 먹방은 철저히 계산되고 연출된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먹방을 통해 ‘귀공자’ 이미지를 벗는다는 전략이다. 최근 안 전 대표의 ‘오물오물’ 먹방도 그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영상엔 측근들과 함께 대구 칠성시장을 찾은 안 전 대표가 분식집 상인이 건넨 토스트를 입을 쭉 내밀어 받아먹는 장면이 담겨 있다. 안 전 대표 등 뒤쪽에서 “왜 혼자만 먹나요”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을 포함한 안 전 대표 측근들도 김밥과 토스트를 입에 물었다.
한 이미지컨설턴트는 “사진이나 영상을 자세히 보면 안 전 대표가 의도적으로 아이들처럼 상인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있다. 곱게 자란 부짓집 아들 느낌을 살리면서 동시에 귀엽고 인간적인 이미지도 어필할 수 있는 전략이다. 안 전 대표에게 이 전 대통령처럼 게걸스럽게 국밥을 먹는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 전 대표는 이튿날 경기 하남의 신장 전통재래시장을 찾았을 때도 상인이 건네주는 김치를 먹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어묵 먹방도 주목을 받았다. 누리꾼들은 20대 총선 유세 당시 유 의원의 어묵을 먹는 사진에 대해 “유 의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먹방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며 호평했다. 그러나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 회장은 “유 의원은 이 전 대통령처럼 먹는 연습을 더욱 해야 한다. 유 의원은 약간 새침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시원하게 먹는 식습관이 필요하다. 유 의원의 소탈한 모습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먹방 관련 콘텐츠가 적은 편이다. 홍 지사와 심 의원은 각각 칼국수와 떡만둣국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 의원 측근은 “심 의원은 떡만둣국 그릇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먹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의도적인 먹방 영상은 앞으로도 찍지 않을 계획이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먹방은 역효과를 줄 여지가 있다”고 조언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먹방이 훗날 특정 정치인의 실제 이미지와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혐오감을 줄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의 국밥 CF가 철저하게 연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대중들이 느낀 실망감이 상당했다. 청와대에서 캐비어와 송로버섯을 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밥은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다. 먹방이 자연스럽게 와닿으려면 탈권위적인 모습 등 정치인의 평소 생활 패턴이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