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거래 의혹부터 기술유출 방관 의혹까지...전관 예우성 계약 특혜 논란도
삼성전자의 불공정거래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일요신문]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기업인 삼성전자가 거래처 선정 과정에서 기술유출 및 불공정거래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 애플 등 해외 경쟁 업체와 장기간 특허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삼성전자가 특허침해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계약을 강행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더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기소 등 총수 부재 속에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전자의 불공정거래 의혹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 2014년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사업부 CMP부서는 반도체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슬러리 분사장치를 도입하기 위해 공식제안 절차(일명 WRS)를 진행했다.
슬러리는 반도체 제조의 CMP(Chemical Mecanical Polishing) 공정에서 사용하는 연마제의 일종으로 소모성 제품이다. 1개당 가격은 다른 반도체 설비 제품보다 싼 편이지만, 현재 삼성전자 내 반도체 사업부의 연간 슬러리 사용량은 약 1000억 원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메모리사업부 등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슬러리 분사장치는 미국의 AMAT가 특허를 보유한 제품으로 개당 가격이 국내제품의 몇 배를 호가한다. 삼성으로선 원가절감 차원에서 제품 공급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 과정에서 슬러리 분사장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연구개발업체인 A 사의 제품을 B 사를 통해 2015년 4월 기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한다. 다만 A 사가 소규모 업체인 관계로 삼성전자 거래처로 등록돼 있던 B 사와 제휴해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15년 8월 17일 내부보고서를 제출한 뒤 2015년 9월 8일 삼성전자는 제품에 문제가 있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A 사와 B 사는 삼성전자의 불공정거래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삼성전자가 문제 삼은 부분은 기술적으로 경미한 것으로 재질만 변경하면 문제가 없었음에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B 사와 계약 해지 후 2016년 9월경 비메모리사업부와 슬러리 분사장치 구매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NDA 체결 당시 B 사의 직원이었던 C 씨가 만든 회사였다는 점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C 씨가 전직 삼성전자 직원 출신이란 사실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B 사와 약 1년 반 동안 진행되던 계약 건을 무시하고 C 씨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전관 예우성 거래 계약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또한, C 씨의 실용신안 및 발명기술이 A 사의 기술을 도용한 것이라는 의혹도 불거졌다.
A 사가 감정 의뢰한 변리사 감정서에 따르면, C 씨의 회사 제품은 A 사 제품의 등록특허 권리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A 사 제품의 권리자 허락없이 실시하는 것은 등록특허의 권리범위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감정했다. 이어 C 씨의 제품은 삼성전자 기존 거래처인 AMAT사 제품의 특허에 저촉된다는 감정결과도 도출됐다.
A 사는 이를 토대로 C 씨가 B 사 명의로 본건 기술을 삼성전자에 제안하는 과정에서 본건 기술의 핵심 내용을 알게 됐고, 본건 기술과 유사한 내용의 발명을 출원한 상태인 점을 꼬집었다. 만약 C 씨가 NDA계약에 참여하고도 기술 등의 비밀을 도용한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A 사와 B 사는 삼성전자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계약은 물론 C 씨와의 계약 체결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A 사는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측과 C 씨 간의 모종의 거래 의혹과 계약 위법성을 재차 의심했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 반도체 구매팀은 2016년 3~5월 경에 C 씨 회사가 제안한 제품이 AMAT사에 대한 특허 침해를 우려해 AMAT사에 특허 침해 여부 판정을 요청했다. 그 결과 특허 침해에 해당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A 사는 주장한다. 향후 AMAT사와의 지적재산권 분쟁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C 씨 회사와 구매 계약을 체결한 점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C 씨 회사로부터 구매한 제품을 여전히 생산라인에 사용하지 않은 점도 의아한 대목이다. 기술 유출로 만든 제품에 하자까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불공정거래 의혹 등에 대해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협력사 선정은 엄격한 품질관리와 공정한 비딩(입찰) 절차를 통해 진행하고 있으며, 특정 업체를 위한 특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측은 통상적인 물품 구매 계약 사항일 뿐 특이할 점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삼성전자 측은 “2014년경 메모리 사업부 CMP 설비용 슬러리 분사노즐의 국산화를 위해 국내 업체를 대상으로 비딩을 진행한 것은 사실이다. 몇 차례에 걸친 검증 과정에서 B 사의 공급품에 품질 불량이 발생해 2015년 9월 NDA를 파기하고 2차 비딩을 통해 다른 업체를 선정하고 현재까지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B 사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C 씨 회사와 새롭게 계약을 맺은 것은 B 사의 경우 메모리 사업부와 관련된 것이고, C 씨 회사와는 별개로 삼성전자의 구매 협력사로 등록된 업체가 아닌 현업 부서에서 1회성으로 구매한 이력만 있다는 것이다.
A사가 감정 의뢰한 감정서 내용 중 일부. 감정서에는 A사의 제품을 C씨의 회사 제품이 특허를 침해했다는 감정 결과가 적혀있다.
타 회사와 특허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사용한 의혹에 대해서는 특허 침해 여부는 통상 내부 평가가 완료된 이후 구매진행 전에 특허 검토를 진행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C 씨 회사의 타 회사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해 특허 관련 부서에서 타 회사 측과 특허 관련 협의를 한 바 있으며,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없음’을 확인 받은 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A 사는 삼성전자가 자신의 제품 계약 해지 후 B 사에 다시 연락해 AMAT사 관련 제품 공급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특허 침해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제품 공급을 요청한 사실과 삼성전자가 해명한 C 씨 회사와 B 사의 계약건은 전혀 다른 제품이라고 한 점은 석연치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두 계약건의 제품 기술방식은 차이가 없으며, 같은 공정으로 보고 같은 성능을 요하는 기본적인 CMT과정이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물품으로 봐도 무관하다는 의견을 냈다. AMAT사는 SEMES, TEL, LAM과 함께 글로벌 반도체 장비 4개사로 불리는 삼성전자의 주거래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AMAT와 많은 거래를 하는데 크지 않은 금액 때문에 특허 침해까지 하면서 불화를 만들겠냐는 반응도 보였다.
이에 A 사와 B 사는 국내 중소기업의 원천기술이 도용되고 사장되는 데에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의 불공정거래가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기술유출 1건 당 피해액은 2009년 10억 원에서 2014년 25억 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 액수는 연평균 50조 원가량으로 추정되는 등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가 지난 6일 ‘중소기업 기술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키로 한 것은 기술유출·탈취 행위를 방치할 경우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더 이상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국내 1위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글로벌 대표기업이다. 삼성전자가 밝혔듯이 이번 의혹은 국산화 및 국내 중소기업들을 위한 구매정책에서 벌어진 업체 간의 마찰일 수도 있다. 다만 중소기업들에 대한 생색내기용 정책으로 변모된 채 전관예우 특혜 의혹이나 가격 경쟁만 부추겨서는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