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희생’의 외침 따듯한 응답 원해
▲ 매일 밤 청계광장에 뜨는 수만 개의 ‘별’들을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도 편치 않을 듯하다. 사진은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대국민사과 후 돌아서는 이 대통령의 뒷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수입 쇠고기 협상 파문으로 야기된 촛불집회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시민들은 5일 저녁 7시부터 무려 72시간 연속 집회를 갖는 등 ‘촛불’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시민단체와 네티즌의 모임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도적으로 집회를 준비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매일 밤 서울 청계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까지, 매일 밤 초 하나씩을 손에 들고 나서는 이들의 마음속에 담긴 ‘민심’을 우리 정부는 제대로 읽고 있을까. 분노하고 있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멈출 줄 모르자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9일로 예정됐던 ‘국민과의 대화’를 연기한 것 역시 성난 민심을 달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청와대의 고육지책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과연 ‘촛불집회’에 담긴 국민들의 민심은 어떤 걸까. 심리학 전문의들을 통해 ‘촛불’에 담긴 민심을 들여다보고 ‘궁지’에 몰려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리상태에 대해 진단해 보았다.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된 것은 5월 초 무렵. 소규모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주도로 점점 그 세를 더해갔다. 그런데 초반 촛불집회의 주도적인 참가자들은 다름 아닌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5월 17일경 전국적으로 휴대폰을 통해 ‘동맹휴업’ 메시지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촛불집회 가세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0대들의 집회 참여를 두고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배후세력’이 있다면서 전교조를 그 배후로 지목한 것이 오히려 이들의 행동을 더 결집시킨 계기가 되었다. 또 경찰은 촛불집회를 주최해온 단체들의 대표·책임자·관리자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수사를 벌였으나 이는 ‘순수한’ 참가자들을 자극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일부 언론은 중고생들이 거리로 나온 데 대해 “10대들의 놀이문화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과연 이들의 집회 참여의 ‘심리적 동기’는 어떤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는 이에 대해 “처음 중고생들이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것은 불안한 심리상태의 표출”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 하는 정부가 자식(중고생)의 불안감을 해소해주지 않자 점점 더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로 변해갔다. 나를 보호해줘야 할 사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 때 가장 큰 분노를 느끼게 된다”는 것. 또한 동남정신과의원 여인중 원장은 “분노와 배신감, 정의감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심리상태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반 촛불집회 참가자들 중 70%가 중·고등학생이었고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386세대였던 부모로부터 과거 민주화 과정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서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김병후 박사 역시 “요즘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하는 ‘직접투표’ 세대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로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주부 대학생 직장인 예비군들의 행렬까지 가세하기 시작했다. 5월 25일경부터 가두시위가 시작되었지만 이들의 목적지는 그때마다 달랐다. 현장에서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 향로가 정해졌기 때문. 결국 ‘배후세력이 있다’고 의심한 정부의 발언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인 매체에 대한 반대시위까지 함께 벌이기 시작했다. 청계광장 옆에 있는 동아일보 건물을 향해 ‘소등’을 외치기도 했다.
일부 심리분석가들은 이번 ‘촛불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백상창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련의 사태를 보면 마치 유럽에서 르네상스 후에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품은 일부 사람들이 마녀사냥과 같은 행위를 한 것과 비교될 수도 있는 그런 일종의 흥분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백 소장은 또 촛불집회에 대해 “위기가 올수록 우리가 좀 더 사태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되는데 너무나 포퓰리즘에 날뛴다든가 국민들이 흥분되게 유도한다든가 하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촛불집회 반대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일부 네티즌들이 ‘여대생 사망설’과 같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에도 이와 같은 ‘극단적 심리’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병후 박사는 “일부 극단적 파괴심리를 가진 이들이 촛불 집회의 긍정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경우 마치 불구경을 하는 심리와 같은 상태라고 한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촛불을 들고 나온 대다수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이들의 행동을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박사는 “(극히 일부의 경우엔) 불구경을 하면서 사람이 다치고 피해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이 더 나길 바라는 심리와 같다. ‘죽은 자를 사랑하는 죽음 찬미의 심리’인 ‘네크로필리아’ 상태, 즉 파괴적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심리를 가진 이들은 정부와 국민들이 더 싸우고 대립해서 더욱 망가지는 상태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한 50대 남성이 분신을 기도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경우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제도에 의해 개인적 불만이 쌓여있을 경우 분노가 더해져 극단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촛불집회 분위기가 고조돼 가면서 ‘이슈’가 변화된 점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쇠고기파동’ 문제로 시작된 촛불집회를 고조시킨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경찰의 과잉진압과 그 와중에 일어난 여대생 군홧발 폭행사건, 버시바우 미 대사와 이상득 의원의 문제성 발언 등이 그것. 버시바우 미 대사는 “한국 국민들이 쇠고기 문제에 대한 과학을 좀 더 공부하길 바란다”고 언급했고 이상득 의원은 “거리에 나와 불평을 하고, 호소를 하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도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마 실직자, 일자리가 없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젊은이와 서민, 어려운 중소기업 대표들이 쇠고기 이외의 문제를 가지고도 참여하지 않았는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심리상태를 더 자극했다고 분석한다. 동남정신과 여인중 원장은 “집회 참가자들이 각목을 들은 것도 화염병을 들은 것도 아닌데 경찰이 특공대까지 투입해가며 대응한 것은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이로 인한 정의감이 더 확산되었다”고 설명했다. 여 원장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의 심각성을 정부가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국민들 대다수는 이번 사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촛불집회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CBS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선 ‘촛불집회가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이 64.5%로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31.1%)을 압도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