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보다 내 게임 집중…마지막 퍼즐 맞췄다”
유소연은 이번 대회에 앞서 출전한 4개 대회에서 준우승 2회, 공동 5위, 공동 7위를 기록하며 꾸준히 톱10 안에 들었다. 더욱이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60경기 연속 컷 통과 기록을 세우며 어느 때보다 우승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일요신문>에선 창간 25주년을 맞아 한국 여자 골프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증명해낸 유소연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유소연은 대회를 마친 후 미국 LA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다음 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유소연과의 전화 인터뷰를 정리해본다.
―비로소 마지막 퍼즐을 맞춘 느낌이 든다. 그동안 수차례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그 턱을 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됐는데 말이다.
“말 그대로 마지막 퍼즐을 끼워 넣은 것 같다. 마지막 라운드에선 전반 내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샷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감히’ 우승을 다툴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승보다는 엉켜 있는 골프를 잘 풀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내 성적이 얼마나 되는지, 다른 선수들은 어떤지, 내가 몇 위에 올라 있는지, 전혀 체크하지 못했다. 그러다 후반 들어 샷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하더라.”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컵 차지한 유소연. 연합뉴스
―그때부터 우승을 염두에 두고 라운딩을 한 건가.
“그렇지는 않다. 우승보다는 한 타라도 줄이는 데 집중했다. (박)인비 언니랑 같은 조에서 쳤는데 인비 언니가 렉시 톰슨이 잘 치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후반 들어 렉시가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렉시 톰슨이 4벌타를 받았다는 건 언제 알게 됐나.
“16번홀 티샷 직전에 렉시한테 발생한 안타까운 일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몇 개의 벌타가 주어졌는지 전혀 몰랐다. 렉시가 벌타를 받았다는 것 정도만 들었고, 순위가 어떻게 뒤바뀌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른 선수의 상황에 신경 쓰지 말고 게임에만 집중하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나갔다.”
렉시 톰슨은 마지막 라운드 12번 홀까지 3타차 단독 선두를 달렸다. 그러다 전날 3라운드 17번 홀에서 50cm도 안 되는 파 퍼트를 앞두고 마크를 했다가 원래 지점보다 약 2.5cm 가까운 곳에 공을 놓고 퍼트한 것이 시청자 제보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마지막 라운드에서 4벌타를 받았다. 4벌타는 오소 플레이 2벌타+스코어 카드 오기 2벌타.
―결국 렉시 톰슨과 연장전을 치렀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했는지 궁금하다.
“연장전에 나가게 된 것을 보너스라고 생각했다. 보너스처럼 찾아온 행운을 재미있게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경험 때문에라도 긴장을 줄이고 편하게 치고 싶었다.”
―2011년 비회원 자격으로 출전했던 US오픈 대회도 기상 악화로 대회가 연기된 데다 서희경과 연장전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었다.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도 연장전 승부였다.
“그래서 대회 관계자 분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들 기가 센 여자들이 모여서 그런지 대회 마지막 날엔 본의 아니게 날씨도 안 좋고, 생각지도 못한 이슈(렉시 톰슨의 4벌타)가 터진다고(웃음).”
―렉시 톰슨과는 2012년 LPGA 신인왕을 다투기도 했었는데.
“그때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도 일대일 매치업을 벌인 적이 있었다. 렉시가 이번 대회에서 4벌타를 받으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일부에선 렉시한테 가해진 규정이 부당하다며 내가 연장전에서 기권했어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잡음 없이 연장전을 치렀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렉시 톰슨은 대회 직후 유소연 선수의 우승이 자신의 일로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인터뷰했다.
“나도 그 기사를 봤다. 힘든 상황이었을 텐데 나를 배려해주려고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고 생각한다. 정말 고마웠다.”
―렉시 톰슨의 4벌타 사건을 두고 팬들과 선수들 사이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플레이가 시청자의 제보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로선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이건 말하고 싶다. 시청자의 제보를 떠나 아무리 카메라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카메라 앵글에 따라 사실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펜싱이나 배구는 어디를 찔렀는지, 선을 넘었는지를 기술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골프는 다르다. 룰은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피해를 주기 위한 게 아니라. 그 점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유소연 선수도 한국에서 투어 생활할 때 벌타에 대한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당시엔 그런 일을 겪는 것 자체가 엄청난 악몽이었는데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또한 배우면서 성장하는 시간들이었다고 본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가 어떤 소신을 갖고 양심적으로 골프를 쳤느냐이다.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린다고 해도 내가 양심적으로 깨끗한 플레이를 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모르고 저지른 일도 규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더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프로는 완벽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프로’란 타이틀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 앞서 출전한 4개 대회에서 모두 7위 안에 들었다. 이 정도의 성적이라면 대회를 앞두고 내심 우승을 기대했을 것 같다.
“개인 종목의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한 가지이다. 우승하느냐, 못 하느냐. 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꾸준함의 대명사’이다. 꾸준히 치긴 하지만 결국 우승을 못한다는 지적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한 번도 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를 응원하는 가족들, 6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캐디, 그리고 후원사와 매니지먼트사, 심리 상담을 돕는 조수경 박사님 등의 도움 덕분에 내가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있고,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내게 우승이란 선물이 안겨지리라 믿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만족할 만큼 연습을 했는지, 그리고 훌륭한 선수가 되려고 노력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물었다. 그런 가운데 이번 대회에서 정말 선물처럼 우승컵을 품에 안은 것이다.”
―2011년 US오픈 우승 이후 2012년부터 LPGA에서 투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생활이 어렵진 않았나.
“한국에서 골프를 칠 때는 어린 나이였고, 당시 감당하기 어려운 관심과 시선을 받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를 돌아봤을 때 내 의지보다는 사람들의 바람대로, 의견대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변해가는 내 모습이 싫었고, 골프를 치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입학 후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학교 수업에 매달렸다. 나름 은퇴 후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힘든 여건에서도 수업과 투어 생활을 병행했다. 4학년 때 미국에 오면서 골프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이뤘다. 이곳에선 타인의 시선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소신을 갖고 투어 생활을 해나가느냐가 중요했다. 물론 어려운 적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골프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우승 유무를 떠나 골프가 재미있었다. 그게 한국과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유소연은 대학 수업을 위해 한국에 있는 동안 월요일, 화요일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고, 2학년까지는 학과 학생회 활동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학 없이 8학기 만에 졸업했을 정도로 대학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박인비 선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비 언니랑은 마음이 잘 맞는다. 언니도 그동안 슬럼프 등을 겪으며 많은 아픔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아픔을 공유했다.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인비 언니가 내 아픔을 공유했다.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기보단 서로의 장점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줬다. 가치관, 사물에 대한 시각 등에서 비슷한 면이 많다. 언니이지만 좋은 동료,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그동안 후원사였던 하나금융그룹과 계약 관계를 정리하고 메디힐이란 새로운 스폰서를 만났다.
“그동안 우승이 없어서라기보단 후원사가 생각하는 방향과 내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이 정리됐다고 받아들였다. 나 또한 회사가 생각했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런 상황이 속상하진 않았다. 단, 올 시즌에는 내가 겪었던 좋지 않은 시간들의 고리를 하루 빨리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우승일 수도 있다. 결국 새로운 후원사를 만났고, 성적에 대한 부담을 갖지 말고 즐겁게 골프를 했으면 좋겠다는 권오섭 대표님(엘앤피코스메틱)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메이힐을 운영하는 엘앤피코스케틱은 지난 1월 국내 스포츠 산업 활성화와 미국, 유럽, 중국 등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스포츠 마케팅 강화의 일환으로 유소연, 김나리 등 한국 여자 골프 선수와 시유팅, 장웨이웨이 등 중국 여자 골프 유망주들로 구성된 ‘메디힐 골프단’을 창단했다.
―이번 우승 이후 가족과 함께 ‘포피 폰드(Poppie‘s Pond)’에 입수하는 세리머니로 기쁨을 만끽했는데 아버지는 보이지 않더라.
“아버지가 한국에 계셔서 함께할 수 없었다. 동생이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 직접 경기를 보겠다며 이틀 전에 대회장에 도착했다. 캐디는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이고, 매니지먼트사 대표님도 10년 넘게 인연을 맺었다. 그 연못에 함께 뛰어든 분들은 모두 내가 꿈을 포기하지 않게끔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다. 그 분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연못에 뛰어드는 세리머니를 경험하며 골프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이 대회가 골프 선수들에게 왜 사랑을 받는지 제대로 느낀 시간들이었다.”
‘연못에 풍덩’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유소연. 연합뉴스
―그동안 LPGA는 리디아 고와 태국 아리야 주타누간의 양자구도였다. 유소연 선수가 이번 우승으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 때문에 내 소신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비교에 날 집어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경쟁은 필요하다. 그런 경쟁이 날 발전시키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부분이다. 내가 평가하는 내 모습이 나한테는 더 중요하다.”
―최나연, 박인비 선수와 함께 어느새 베테랑 대우를 받고 있다. 이제 겨우 1990년생의 선수인데 말이다.
“나도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 어느새 프로 10년 차다. 한때 10대 돌풍의 주역으로 꼽혔는데(웃음). 전인지, 박성현 등 후배들의 성장 덕분에 우리는 베테랑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얼마 전 호주의 캐리 웹(43)이 내게 나이를 묻더라. 스물여섯이라고 하니까 ‘베이비’라고 말해 한참을 웃었다.”
―지난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임종까지 함께했었다. 이번 우승으로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할머니가 골프는 잘 몰라도 가족 단톡방에 항상 ‘소연이 이겨라’하는 메시지를 남기곤 하셨다. 그때 우승을 갈망하셨는데 그 우승하는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게 가장 마음이 아팠다. 이젠 할머니한테 자랑할 게 생겨서 다행이다.”
인터뷰 말미에 유소연에게 결혼 계획에 대해 물었다. 유소연은 “골프 때문에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서 “정말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결혼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소연은 2007년 KLPGA 입문 후 통산 9승을 이뤘고, 2011년 US오픈 우승으로 2012년 LPGA 데뷔해선 2012 제이미 파 토레도 클래식 우승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2014 캐네디언 퍼시픽 위민스 오픈에서 우승 후 2년 8개월여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