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장전하고도 ‘대주주 적격성’ 족쇄 되나
요즘 증권가는 코앞에 다가온 초대형 투자은행(IB) 인허가에서 누가 금융당국의 ‘간택’을 받을 것인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국내 금융권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IB는 이르면 이달 업무승인과 인가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금융당국의 로드맵대로라면 IB는 오는 6월께 업무가 개시될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5개 증권사가 IB의 기준인 자기자본 4조 원을 넘겨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자기자본이 6조 6000억 원에 달해 가장 앞서 있고,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이 4조 원을 넘어 후보군에 합류해 있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의 초대형 투자은행(IB)에 대한 꿈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일요신문DB
이 과정에서 증권사가 거액의 자금을 예치할 경우 증권금융이 ‘특별이자’를 지급하게 되는데, 이 특별이자를 고객에게 돌려주지 않고 미래에셋대우가 중간에서 특별이자를 취한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이 4조 680억 원으로 5개 증권사 가운데 가장 적다. IB의 기준인 4조 원에 턱걸이를 하고 있는 한국투자는 M&A 등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배당과 증자 등을 통해 가까스로 요건을 맞춰놓은 상태다. 여유롭지는 않아도 자기자본 요건은 충족한 만큼 한국투자는 IB 인가 획득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에서 불안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투자의 과거 전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015년 자회사였던 코너스톤에퀴티파트너스의 파산을 신청했다. 코너스톤에퀴티는 2006년 자본금 15억 원으로 설립된 사모펀드(PEF) 전문 운용사로,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분의 100%를 갖고 있었다.
코너스톤에퀴티는 설립 직후인 2007년 메가스터디, 2008년 대선주조 등에 투자했지만 잇달아 손실을 입었고, 2013년에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파산 절차를 밟았다. 문제는 코너스톤에퀴티가 2004년 PEF 제도가 도입된 이래 첫 파산 사례였고,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며 물의를 빚었다는 점이다.
금융권은 코너스톤에퀴티의 사례가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 인허가 조항과 금융투자업규정에 명시된 ‘사회적 신용요건’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금융투자업 규정 중에는 ‘대주주의 요건’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은 최근 5년간 파산·채무자 회생절차 대상 기업의 최대주주 또는 주요주주로 직·간접 관련된 사실이 있으면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한국투자증권은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자회사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투자업자가 신규 업무 인가를 받으려면 본인뿐 아니라 그 회사를 지배하는 대주주 역시 일정한 요건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투자의 경우 이 규정을 적용할 경우 인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신규 업무 인가를 위한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코너스톤 파산에 한국금융지주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소명하지 못하면 2020년까지 신규 업무 진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한국투자는 IB로 가는 첫 단계인 단기금융업무(1년 이내 어음 발행) 인가를 받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는지 법률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만약 한투증권이 어음 발행 등 투자은행업을 추가하지 못할 경우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와 시너지 전략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지분 58%를 보유한 카카오뱅크 역시 수표나 어음을 발행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어음 발행이 허용되면 자기자본 2배까지 어음 발행이 가능해져 8조 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지난달 4조 원 기준을 채운 삼성증권 역시 대주주 삼성생명이 자살보험금 제재를 받으면서 단기금융업무 승인이 1년 간 미뤄질 변수가 생겼다. 이에 대한 유권해석은 오는 6월께 내려진다.
자본시장법 금융투자업규정상 ‘최대주주가 최근 1년 간 기관경고 조치 또는 최근 3년 간 시정명령이나 중지명령, 업무정지 이상의 조치를 받은 사실’이 있을 경우 대주주 결격 사유에 해당된다. 삼성생명이 지난 3월 기관경고 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 3~4월까지는 신규사업 인가에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삼성증권은 지난 1월 헤지펀드 운용업 인가 신청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삼성 측에서는 계열사인 삼성헤지자산운용사와 업무조율 필요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권은 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자살보험금 제재를 앞둔 부담감에 신규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느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증권은 해당 법규의 예외조항을 주목한다. 상위 조항에 ‘그 사실이 영위하고자 하는 업무의 건전한 영위를 어렵게 한다고 볼 수 없거나 금융산업의 신속한 구조개선을 지원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는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초대형 IB로서의 걸림돌이 없는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3곳에 불과한 셈이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대주주의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 대주주의 행위와 IB사업의 관련성이 얼마나 높은지 등을 살펴볼 예정인 것으로 안다”면서 “이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는 인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