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6월 항쟁보다 더 큰일 해···촛불 전후 태도 변화 인상적”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10시간 넘게 진행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촛불 전후 청년들 태도 변화 인상적…청년들 기 살리는 것이 최우선”
은 전 의원은 20대 총선 이후 전국을 다니며 청년들과 소통을 했다. 100여 번이 넘는 강연에서 청년들과 나눈 대화를 최근 펴낸 책 <은수미의 희망마중-알바가 시민이 될 수 있나요?>에 담아냈다. 노동전문가인 그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느낀 바가 남달랐다. 강연을 듣고 눈물을 보이는 청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그의 사과를 들은 청년들의 반응은 11월을 전후로 바뀌었다. 촛불이 타오른 것을 기점으로 청년들은 큰 태도 변화를 보였다.
“촛불 전에는 ‘세상이 바뀔 거다. 대변혁의 시기가 올 테니 힘내시라’ 말하면 청년들이 항의를 많이 했다. 솔직히 말해달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우리가 이 지경이 되도록 당신 같은 기득권은 뭐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 ‘강사님은 세상이 바뀔 것이라 생각 하지만 저는 죽어도 세상은 안 바뀔 것이라 생각 한다’고 말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세상이 바뀐다, 더욱 노력하겠다는 이야기에도 분노와 좌절을 느끼던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그랬더니 달라졌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필요 없다. 함께하면 된다’고 쿨 하게 이야기하더라.”
그는 청년들이 그간 느껴오던 좌절과 촛불집회를 통한 변화에 대해 ‘광장 조울증’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촛불이 타오르는 토요일이면 세상이 바뀔 것 같다가도 월요일 출근을 하거나 알바를 하면, 취업준비를 하면 다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조증과 우울증을 오가며 불안감을 표현한다. 자신이 촛불을 들고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앞서의 좌절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연에서 솔직하게 ‘저도 불안해요. 우리 모두가 불안합니다. 좌절, 두려움, 절망, 그런 것은 아무리 행복해도 사라지지 않고 살갗 밑에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으십시오. 정치가 충분히 싸우고 있으므로 희망이 있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은 전 의원은 청년 정책에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은 ‘청년 기 살리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사회구조에 눌려 기죽어 있는 청년들이 기를 펴고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청년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일화도 소개했다.
“지금 청년들은 6월 항쟁보다 훨씬 큰일을 했으나 ‘내가 이뤘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우리세대는 우리가 했을 때 믿었다. 기가 살아있는 세대였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을 들으면 ‘그 바위를 낙숫물이 뚫는다’고 받아쳤다. 청년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청년들이 모여 ‘김대중-김영삼 단합하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갔다. 말씀을 드리니까 노하셨지만, 나는 그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당신도 대통령병 환자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정도로 기가 살아있는 세대였다. 청년정책은 흙수저를 입증하거나 가난을 입증하게 하면 안 된다. 청년이 주인이자 주체라고 알려주는, 기를 살려주는 정책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믿고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주체가 되십시오’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청년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정책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486세대인 우리는 디지털 세대인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깔아주어야 한다. 디지털 혁명, 앞으로의 미래, 새로운 인권과 존엄, 새로운 민주주의. 이것은 이 시대의 주인인 디지털 세대 20·30대의 몫이라고 본다. 우리 세대는 당연히 지원과 응원을 해야 한다.”
청년의 도전을 위한 ‘국민기본선’…차기 정부는 ‘멋진 정부’ 아닌 ‘징검다리 정부’ 되어야
그는 청년들이 꿈을 갖고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기본선’(national minimum)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데 실패가 두려워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 원인 일자리가 있고, 그 일자리를 못 구해도 평균 3~6개월간 최대 최저임금의 90%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도전하시겠습니까?’ 물었을 때 청년들의 대답은 ‘예스!’였다. 국민기본선은 도전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예산 400조 가운데 1프로만 있어도 된다. 4조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많은 것을 해드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청년은 실패하는 시기이고, 불안한 시기다. 이카로스처럼 날아올랐다가 떨어지고 실패해도 괜찮은 토대를 만들어드리겠다는 것이다. 그게 보장이 된다면 청년들이 꿈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은 전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차기 정부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차기 정부가 ‘멋있는 정부’가 되기보다는 ‘징검다리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기정부가 기본적인 것들을 우선시해 정상적인 사회구조를 만들고, 차차기 정부가 ‘멋진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시적으로 재벌대기업에 청년고용할당제를 해야 한다. 오래 보는 것도 아니다. 5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긴급 처방’을 해 꽈배기처럼 꼬여있는 사회구조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끔 하자는 거다. 그렇게 하면 1년에 약 7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민간에서 만들어진다. 공공분야까지 합하면 더 꽤 많은 일자리가 더 만들어진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철저한 감시도 필요하다. 현재 일터의 경찰관이랄 수 있는 근로감독관이 1000명 정도 된다. 두 배가량 증원해 부당노동행위를 없애야 한다. 기업이 청년이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만 없게 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기본인데, 지금은 기본이 긴급 처방이 됐다. 공약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하려는 의지도 중요하다. 정책이 없고 예산이 없어서 못 하는 것 아니다. 이것을 하면 재벌 대기업과 언론에 뭇매를 맞는다. 다시는 정치를 못 할 정도로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를 실천해서 청년에게 징검다리를 만들어 주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다음 정부는 멋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차기 정부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멋있으려고 하지 마십시오’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