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 시스템 목표” 꿈은 크고 갈 길 멀다
2015년 11월 금융위원회(금융위)는 K뱅크와 카카오뱅크에 인터넷전문은행 허가를 내주면서 ‘은행업을 전자금융거래의 방법으로 영위해야 한다’는 부대조건을 내걸었다. 즉 인터넷전문은행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컴퓨터 등 전자적 장치를 통해 금융상품·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은행 직원과 대면 없이 자동화된 방식으로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하면 법인 역시 비대면 방식으로 K뱅크에서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K뱅크 사무실이 위치한 더케이트윈타워 건물 전경.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금융위는 지난 1월 비대면 실명확인 제도의 적용 대상을 개인에서 법인까지 확대해 원칙적으로는 법인의 비대면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하지만 4대 시중은행인 신한·국민·우리·하나은행 중 비대면 법인계좌 개설 서비스를 하는 곳은 우리은행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부 정책상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면 금융사고나 대포통장 방지를 위해 하루 출금·송금액이 제한되고 이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영업점을 방문해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며 “법인계좌는 금액이 큰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업고객 입장에서도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다시 영업점을 방문하는 번거로운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비대면 법인계좌 개설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루 출금·송금 제한액은 은행별로 다르지만 대부분 30만~100만 원 수준의 소액이다.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비대면 법인계좌 개설이 가능한 우리은행에서 비대면으로 법인계좌를 개설하려면 법인 대표의 인증이 필요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법인 대표와 영상통화를 통해 대표의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 등을 확인해 본인 인증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루 출금·송금 한도가 100만 원에 불과해 비대면 법인계좌 개설이 그리 활성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심성훈 K뱅크 행장. 사진출처=K뱅크 홈페이지
거액이 오가는 만큼 철저한 보안도 요구된다. K뱅크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법인을 인증할지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지만 아직 정해진 건 없고 비대면 채널밖에 없기 때문에 실험적인 서비스보단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 서비스할 것”이라며 “한도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 결정된 게 없고 법인 인증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기업 실사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은행권에 대출을 요구하면 은행은 해당 기업을 방문하고 면담하는 등 실사를 거친다. 하지만 비대면을 원칙으로 하는 K뱅크가 실사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인가할 때 모든 금융업무를 전자로 한다는 조건을 달았기에 조건 내에서 업무를 해야 한다”며 “실사는 대면으로 할 수 있다는 등 예외조항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비록 호기롭게 외쳤지만 K뱅크는 당장 기업금융에 진출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 K뱅크 관계자는 “우선 법인계좌 개설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고 실사 방안 등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아직 기업금융 서비스는 먼 이야기”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법 개정해야 실탄 채운다…‘은산분리 완화’도 고민 K뱅크가 기업금융시장에 진출하는 데 또 다른 장애물은 자본이다. 대규모 여신을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K뱅크는 2500억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지만 인프라 구축에 자본금 절반 이상을 소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자본 문제로 수백억~수천억 원 규모 여신의 기업금융은 현재로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자본금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주주들의 유상증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로 산업자본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의 지분은 최대 10%(의결권 있는 지분 4%)로 제한된다. K뱅크의 주요 주주인 GS리테일·한화생명·다날 등이 이미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K뱅크가 유상증자를 하려면 모든 주주가 지분과 동일한 비율로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소액주주인 에잇퍼센트, 인포바인 등은 자본금이 수백억 원대에 불과해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심성훈 K뱅크 행장 역시 지난 3일 K뱅크 출범식에서 “주주사마다 상황이 달라 증자가 쉽지 않다”며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K뱅크 관계자는 “2015년 6월 금융위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을 발표하면서 현행법 하에서 만들되 향후 법 개정을 추진해 ICT기업이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며 “당장 내일이나 모레 증자를 할 건 아니지만 시급한 문제인 것은 맞다”고 전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와 협조해 노력하겠다는 말은 했지만 법 개정을 전제로 인가를 내준 건 아니다”라면서도 “빠른 시일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열심히 의견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금융위에서 기업을 담보로 법의 통과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애초에 법 개정을 명확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불확실성을 전제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내준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