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하다간 ‘유착 의혹’ 또는 ‘문화계 이권 개입’으로 보여질 수 있어…
이번 선거에선 연예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일요신문 DB
지난 17대 대선 막바지였던 2007년 12월 6일 이경호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이사장이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대중문화 발전과 국민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줄 이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면서 뜻을 함께하는 연예인 30여 명 이름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이덕화 이훈 변우민 독고영재 이지훈 소유진 김보성 등 유명 연예인이 참석했다. 이를 두고 이 후보 당선 가능성이 유력해지자 연예인들이 줄서기를 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했다.
18대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이순재 최불암 노주현 등 연예인들이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에서 활동했다. 문화가 있는 삶은 박 후보 문화예술 정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단장을 맡고 있던 단체였다. 배우 이서진과 방송인 송해, 박 후보 5촌 조카로 알려진 가수 은지원 등이 박근혜 후보 유세 현장에 모습을 보였다. 탤런트 송기윤 심양홍 정동남 송재호, 가수 김흥국 현미 현철 설운도 박상민 현진영 이주노, 개그맨 김종국 김정렬 이영자 등 약 120여 명 연예인으로 구성된 ‘누리스타’ 유세단도 박 후보를 위해 전국을 누볐다. 선거 막바지엔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 및 유세 지원을 위한 ‘연예인 특보단’도 만들어졌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연예인들도 있었다. 영화감독 김기덕은 “문재인의 국민이 되어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며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영화감독 40인도 문재인 지지 성명서를 냈다. 연예계 친노 인사로 통하는 문성근과 명계남은 전국 유세 현장을 다니며 문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가수 전인권 윤도현 신해철, 배우 문소리 권해효 최명길 등도 문 후보를 응원했다.
그런데 19대 대선 들어선 연예인들이 실종되다시피 했다. 우선 이번 대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급하게 치러진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윤상우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기 대선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 상황이 아니다. 연예인들도 선뜻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어떤 입장이라고 표명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차재원 부산카톨릭대 교수 또한 “조기 대선으로 짧게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외부에서 누군가를 데려와서 (유세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에서 밝혀진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연예인들의 경각심도 높아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워낙 (연예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블랙리스트로 어떤 정부든 간에 리스트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드러났다. 때문에 연예인들로 하여금 행동을 자제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누가 집권하든 간에 소위 찍히면 자기한테 손해다’라는 것이 심리적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괜한 지지가 ‘유착 의혹’ 또는 ‘문화계 이권 개입’ 등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도 “그동안 선거 때마다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하면 영화나 드라마 등 연예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또 선거에 얼굴을 내밀어 혹시 정치를 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등 그런 연예인을 보는 시선도 좋지만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체가 드러났으니 더욱 더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했다.
SNS 파급력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상우 교수는 “예전 같으면 입장 표명한 뒤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파장이 있거나 문제가 생길 때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상황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SNS에선 즉각적인 반응이 오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 섣불리 말을 했다간 비난이 쏠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탄핵 정국 전후해 촛불과 태극기 간의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 이념적으로 치열한 대립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입장 표명이 어려워졌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이 지난 대선처럼 진보와 보수가 격렬한 대립을 보이는 양상이 아니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차재원 교수는 “이번 대선은 여·야 대결이 아니다. 야·야 대결이다. 진보 진영 지지 연예인들은 어느 한 쪽 편을 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라고 했다. 차 교수는 “연예인 동원은 보수 세력들이 많이 하던 방법이다. 진보 진영을 지지하는 연예인들은 이미 촛불 집회를 통해서 할 만큼 다 했다”라고도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