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실적은 좋지 않은데 인건비 상승·유럽수출량 감소 악재 만나
오펠과 복스홀은 한국GM의 유럽 수출 기지 역할을 해왔다. GM이 오펠을 매각한 이유가 계속되는 적자 때문이니만큼 향후 PSA가 오펠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GM의 대유럽 수출량 감소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GM의 연간 수출 중 유럽의 비중은 33%로 14만 대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며 “과거 GM의 위기 때마다 한국 철수설이 불거졌던 점을 감안할 때 한국GM의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오펠처럼 철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위치한 한국GM 부평공장 앞.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한국GM의 철수설은 2009년 GM이 파산하고 미국 정부가 GM을 인수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한국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GM에 대응하는 등 한국GM(당시 GM대우) 살리기에 나섰다. TF 소속이었던 한 인사는 “당시 생산라인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등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며 “정부가 직접 나서 GM 본사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소형차 생산 위주의 전략을 세워 큰 구조조정 없이 버틸 수 있었다”고 전했다.
2012년 초 한국GM 근로자들이 통상임금 인상을 요구했을 때도 철수설이 따라다녔다. 앞의 인사는 “2015년 통상임금문제로 GM 미국 본사를 방문해 부회장급 고위직 인물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호주의 사례를 참고하라고 전했다”며 “철수하겠단 이야기는 안 했지만 호주 사례를 보라는 건 적자가 계속되면 자기들은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GM은 2013년 호주시장 철수 계획을 밝혔고 오는 10월부터 호주 내 자동차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
2015년 11월에는 대법원이 한국GM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줘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에 반영케 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몇 년간 한국GM의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 인건비 상승에다 유럽 수출량 감소라는 악재를 만난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GM은 2014년 3332억 원의 순손실을 시작으로 2015년 9930억 원, 2016년 6315억 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한국GM의 철수설이 다시 불거진 이유는 부진한 실적과 전망 때문만은 아니다. GM을 둘러싼 내·외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GM은 지난달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또 부평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었던 엔진 물량 중 24%를 6월부터 감산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업계 관계자는 “GM은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자동차 기술 연구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연구비를 계속 충당하기 위해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생산을 미국 내에서 진행하길 원해 GM에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GM은 철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국GM 관계자는 “한국GM의 디자인센터와 연구소는 글로벌GM과 협업하며 GM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실적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이며 희망퇴직은 직원들의 요청을 일부 반영해서 진행한 것으로 GM의 한국 철수설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GM의 한국시장 철수 결정은 미국 본사의 뜻에 달려 있어 한국GM 내부에서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2010년 5월 유기준 전 한국GM 사장이 물러난 이후 한국GM의 고위경영자들은 대부분 미국인들로 채워졌고 이전에 한국GM 임원들이 미국 본사와 한국GM의 가교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본사의 의견을 듣고 따르기만 할 뿐”이라며 “현재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실무직 직원들도 한국GM 고위층의 동향 파악이 어려워 설명하고 싶어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GM의 한국시장 철수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한국GM이 보유한 공장 매각이 쉽지 않다. 한국GM은 인천광역시, 창원시, 군산시, 보령시, 4곳에 공장을 갖고 있는데 GM이 해당 공장들을 처분하지 않고 브랜드만 매각하면 수조 원의 손해를 본다. 인천 부동산정보조회 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GM 인천공장의 공시지가는 ㎡당 114만 2000원.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인천공장 부지(99만 1740㎡)의 가격은 1조 1325억 6708만 원이다. 앞의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려는 기업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한국GM 공장이 대부분 노후된 상태라서 수조 원을 지불하고 공장을 인수할 업체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도심지역에 공장이 있으면 물류운송과 같은 효율성이 굉장히 떨어져 지금 상태로는 큰 금액을 받고 매각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GM 2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자세도 중요하다. 한국GM의 지분은 GM과 그 자회사가 76.96%, 산업은행이 17.02%, 중국 상하이기차가 6.02%를 갖고 있다. 2010년 12월 산업은행은 GM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한국GM의 주주총회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갖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GM은 산업은행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한국GM의 매각·합병·분할 등의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없다.
KDB산업은행은 한국GM의 2대주주지만 적극적으로 한국GM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진은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하지만 산업은행의 거부권은 오는 10월 종료된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적극적으로 한국GM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지분 15% 이상 보유한 비금융 자회사들은 모두 매각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한국GM 지분도 매각할 계획이지만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매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GM 내부에서는 상하이기차가 산업은행 지분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관계자는 “상하이기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이후 내용물만 쏙 빼먹고 먹튀한 회사”라며 “이러한 전적을 갖고 있는 회사가 지분을 인수한다는 소문조차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노조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GM 관계자는 “지분 매각에 대해 고지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이메일을 통해 상하이기차에 관련 내용을 질의했으나 21일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