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대 대선 때부터 활약…수화통역사가 전하는 생생한 대선 토론 뒷얘기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수화통역사로 활약한 조성현 씨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방송국 로비에서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다섯 명의 대선후보가 나오는 TV토론이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관심을 받고 있다. 1인 5역을 맡다보니 후보자들의 말이 겹칠 때 당황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하다. 보통 두 후보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 제일 많았고, 후보자들 간의 멘트가 겹치는 몇 장면이 있어 힘들었는데 지금 우리나라 방송환경 실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시간가량 쉬지 않고 진행되는 토론에서 물 마실 시간이나 땀 닦을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구화라고 해서 후보자들의 발언을 입모양으로 따라하는 경우가 있다. 들숨날숨하며 구화를 하다보면 침이 고이는데 주로 옆에다 커피나 물을 놓고 마시면서 한다. 지난 대선 때는 후보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니까 사회자가 ‘물 좀 드시고 하시죠’라고 했다. 이 때다 싶어 저도 물을 마셨더니 ‘후보자보다 수화통역사가 물을 먼저 먹더라’ 이런 댓글이 달리더라.”
—다섯 명의 멘트가 동시에 겹칠 때 누구 말을 먼저 전하나.
“주도권 토론의 경우 주 질문자의 말을 우선 캐치하려고 한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발언을 먼저 전달하고 그 외의 얘기들은 ‘아니다’, ‘맞다’, ‘틀리다’와 같이 짧은 문장으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 오른손으로는 주 질문자의 이야기를 하고 왼손으로 상대방 이야길 전달한다. 그래도 저 혼자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 입장에선 전체를 다 이해하긴 어렵다. 동시통역이다 보니 후보자들의 입모양을 보다가도 저를 보면 저는 또 다른 말을 전하고 있으니까.”
—TV토론에 참석하고 있는 주요 대선 후보 다섯 명 중 말이 가장 빠른 후보와 가장 느린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사실 말은 빠르기하고 상관없이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조리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말을 하는지 내가 이해를 못하면 어떻게 통역이 되겠나.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의 경우는 진중하고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라 그분들이 조곤조곤 얘기할 땐 수화동작도 그에 따라 작아진다. 반면 홍준표 후보나 심상정 후보의 경우는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그 때는 수화 동작도 커진다.”
—수화통역사 입장에서 어떤 후보의 말을 전달하기 편한가.
“심상정 후보와 홍준표 후보다. 다들 대통령 후보가 되신 분들이니까 말씀을 다 잘해 사실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화자가 어떤 액션이나 제스처를 취해도 그에 감정이입을 해 전달해야 하는데 심 후보와 홍 후보의 경우 공격성 있는 멘트를 많이 하다 보니 느낌 자체가 다르게 느껴진다. 안 후보나 문 후보의 경우 토론 중 공격당하는 부분이 많다보니까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멘트가 많아 상대적으로 심 후보와 홍 후보의 말이 전달하기 편하게 느껴진다.”
—후보가 다섯 명이다 보니 각 후보마다 특징이 다를 것 같다. 말하는 방식과 속도가 확연히 다를 텐데 각자 어디에 중점을 두고 통역하나.
“각 후보들마다 보유한 정책·공약이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을 사전에 공부한다. 전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역하다보면 후보들의 정책을 거꾸로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먼저 이해하고 통역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면 다섯 후보들의 정책도 다 꿰고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면 제가 정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대선토론 방송 말고 평소엔 뉴스 통역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저기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통역하기 편해서 하루 종일 뉴스만 듣고 있다. 사실은 통역사들이 힘든 게 한 분야만 하는 게 아니라 다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경제·사회 뉴스도 알아야 하지만 병원, 법원 통역 등 통역 범위가 넓다. 그 때는 의학용어, 법원용어 같이 전문용어도 공부해야 해 어려움이 있다.”
—대선후보 토론 방송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했던 15대 대선부터 토론 수화통역을 맡아왔다. 대선후보 토론 같은 경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방송이 아닌 한 언론 인터뷰에서 황색 넥타이를 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는 내용의 항의를 받았다. 그 뒤로는 방송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이번 대선엔 15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15개 색깔을 피해 고르는 게 어렵기도 하다.”
—지난 18대 대선 때는 TV토론 후보자가 세 명이었는데 이번 대선에는 다섯 명이다. 지난 대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 대선 때는 이정희 후보가 숨을 안 쉬듯 빠르게 말하는 방식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사실 그렇게 (빠르게) 이야기하면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되는 말이 많다. 지난 대선 때는 말이 빠른 이 후보 때문에 통역에 힘든 점이 있었다면 이번 대선은 아무래도 후보자들이 다섯 명이나 되다보니 동시에 얘기할 때 통역에 고생하는 부분이 지난 대선과 다른 점 같다.”
—15대 대선까지 포함해서 이정희 후보가 가장 말이 빠른가.
“그렇다. ‘역대급’으로 말이 빨랐다. 지난 대선 때 이정희 후보 때문에 제가 고생을 좀 했다라고 인터넷에도 검색이 많이 된 걸로 알고 있다.”
—대선후보 토론 진행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가 유달리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편인데 이번 대선엔 홍 후보와 문 후보처럼 사투리 쓰는 후보들이 있다. 그분들의 말씀을 못 알아들어 순간순간 당황할 때가 있어 홍 후보, 문 후보 발언 땐 더 집중하게 된다. 며칠 전엔 선거연설방송을 준비하려고 원고를 보는데 문 후보의 연설문이었던 것 같다. ‘디비지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경상도 출신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알고 보니 부산에 문 후보가 연설을 갔는데 부산 시민들이 많이 몰려 ‘부산이 뒤집어졌다’ 이런 표현이더라. 서울말로 ‘죽었다’라는 뜻의 비슷한 표현이 있지 않나. 처음엔 그 말인 줄 알고 당황했다. 다행히 원고를 봤으니 망정이지 토론회 같이 원고 없는 생방송일 때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수화통역사 조성현 씨가 대선을 앞두고 ‘투표를 합시다’라는 말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이 ‘투표’, 오른쪽이 ‘부탁드린다’는 의미. 박정훈 기자
—대선후보 토론 방송을 보신 많은 사람들은 한 명이 여러 명의 후보를 전담하는 수화 통역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선 각자 한 후보당 전담 수화통역사가 있고, 독일의 경우엔 수화통역사의 방송화면이 토론자들보다 더 크게 나오는데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도 오늘(2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대선토론 방송의 수화방식 변경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정책적으로 이렇게 건의도 해야 하는데 국내 수화통역사 1500여 명이 모이는 조직이 그동안 없었다. 우리도 조직을 만들어 사단법인 ‘수화통역사협회’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도 인권위 앞에서 집회하는 내용을 보니 대선토론 방송에서 다섯 명은 아니더라도 최소 두 명 이상 수화통역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각장애인들이 방송을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건의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이번 토론회 생방송이 일곱개 채널에서 방송됐는데 제가 다 나왔다. 우리 통역사들이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채널 선택권이다. 제가 아무리 수화를 잘한다 해도 사실 저보다 뛰어난 분들도 많다. 일곱개 방송에 한 사람이 모두 나가는 것 보다는 일곱 명의 통역사가 각기 다른 채널에 나가서 청각장애인들이 채널을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제 수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청각장애인은 제 방송을 보면 되고, 그게 아니면 다른 채널에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통역사를 찾아서 보면 된다. 지금은 저 보기 싫은 분들도 강제로 절 봐야한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수화를 시작한지 얼마나 됐나.
“수화를 처음 배운 때는 1989년,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이었다. 당시 교회 친구가 수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 따라 수화를 배우기 시작해 청각장애인 복지센터에서 수화 기초과정을 배우고 자원봉사를 계속 하다가 어쩌다보니 첫 직장으로 수화를 배운 복지관에서 일을 하게 됐다. 나중에는 사회복지 공부를 따로 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게 됐고, 20년 정도 복지관 근무를 하면서 방송 수화통역을 병행하게 됐다. 복지관을 그만두고 방송만 한지는 지난 2007년부터 10년 정도 됐다.”
—지금도 방송 통역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고 있나.
“방송 외에는 하는 게 없다. 하루에 프로그램이 오전, 낮, 저녁, 밤에 하나씩 이렇게 하루에 네 번 방송이 있다 보니 방송국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사이사이 시간이 빌 때는 운동을 하러 나가기도 한다.”
—그럼 가족들은 거의 보기 힘들 것 같다.
“그동안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이제는 좀 쉬고 싶은 마음에 지난달부터는 월·화·수·목 4일 근무를 하고 있다. 금·토·일은 쭉 쉬고 싶어서 그렇게 결정했는데 또 선거철이 돼서 계속 밤낮없이 일을 하게 됐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인가.
“가끔 후배들을 만나면 ‘이제 그만해야지’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후배들이 말린다. 후배들은 제가 70살, 80살까지 해야 나중에 자신들도 그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거라면서 말이다. 어떤 부분에선 그 말이 맞는 것 같더라. 대신 프로그램을 조금씩 줄여가며 후배 양성과 전국 1500여 명의 수화통역사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힘쓸 생각이다. 지금 수화통역사협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